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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들에 대하여

[더 스피커] '미얀마의 봄' 꿈꾸는 망명자들의 지금

스프 더스피커 미얀마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5·18 민주화 운동'을 닮았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비중 있게 다뤄졌던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자국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미얀마인들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비록 지금은 온갖 뉴스의 홍수 속에 관심의 뒤편으로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한때 많은 한국인들에게 동지애를 느끼게 했던 미얀마인들의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지난 6일 서울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미얀마인 100여 명이 개최한 군부 규탄 집회
자영업을 하는 미얀마 출신의 정치적 망명자인 48살 쿳다운(가명)씨도 한국 언론의 뜨거웠던 관심을 기억합니다. 그는 한때 미얀마인 운동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연락을 받느라 일도 제대로 못 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최근 서울 옥수동에 있는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100명이 넘는 미얀마인들과 집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참석한 한국 언론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관중 없는 빈 객석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연극배우처럼, 쿳다운 씨와 미얀마인 동료들은 집회를 할 때마다 한국 언론의 무관심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민주화"... 민주진영이 미얀마 절반 이상 장악

"아쉬운 건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이 잘 되어가고 있고, 곧 머지않아 민주화가 쟁취될 것을 한국 사회가 모르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쿳다운씨의 담담한 답변에 미얀마의 봄이 곧 올 거란 확신이 담겨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얀마 쿠데타 발발 942일째인 8월 29일 기준, 미얀마에서 '비 군부 세력'인 민주 진영과 소수 민족이 장악한 지역이 미얀마 전체 국토의 절반 이상이 넘은 상태입니다. 즉, 군부와 반 군부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만 윈 카잉 딴 /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총리
미얀마의 민주 진영 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를 이끄는 만윈카잉딴 총리도 최근 SBS와의 인터뷰에서 "카친주, 카렌주뿐 아니라 카야주, 타닌타리주, 사가잉주 등에서도 군부가 지고 있다"며 "카렌주의 경우 분부가 아예 부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민주 세력에 힘을 확실히 실어준다면, 판세도 완전히 기울 수 있을 거란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측 설명을 토대로 만든 현재 반(反) 군부세력들 (민주진영과 소수민족)의 장악 지역

'미얀마의 봄' 위해서 지금 필요한 건

그렇다면 민주화를 열망하는 미얀마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현재까지 민간인 4천 명 이상을 살해하고 2만 명 이상을 체포·구금한 미얀마 군부의 돈줄을 차단하면 됩니다. 특히, 육지전에 취약한 군부가 현재 상공에서 민간 마을을 공습하기 때문에 군부의 항공유 사업을 우선 막으면 됩니다. 그리고 민주 세력에는 비살상 무기를, 수백만 명의 피난민들에게는 비상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해 주면 됩니다.

물론 이런 지원들이 경제성장률이 18% 넘게 떨어진 미얀마 경제를 곧바로 회복시키진 못하겠지만, 당장 굶어 죽거나 군부의 공습과 방화에 숨지는 미얀마인들의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서서히 군부의 패색(敗色)을 짙게 해, 미얀마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민주화의 봄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처럼 무기 지원만 해주면 3개월 내에 미얀마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쿳다운 씨의 말은 어쩌면 허황된 기대가 아닌,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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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장 노동일을 하는 29살 표 씨와 38살 아이씨도 '미얀마 민주화의 봄'이라는 단 하나의 결말을 기대하며, 경북 칠곡과 대구에서 주말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내내 고된 공장 일을 하고, 주말에는 기차역이나 도심에서 시위를 한 지 벌써 2년 반이 넘었습니다.

대구 공업단지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38살 아이(가명)씨는 국내외 주요 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체포와 구금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도 예전보다 위축되는 양상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자신들을 향한 관심이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고 했습니다. 아이씨는 "미얀마에는 국민들이 실제로 겪는 현실을 보도하는 언론도 있고, 군부를 위해 가짜뉴스를 전하는 언론도 있다"며 "언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여전히 군부의 만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까지 경북 칠곡의 공장에서 일해왔던 29살 표 씨도 2021년 쿠데타 발발 직후부터 계속 경북 칠곡에서 군부 규탄 집회를 개최해 왔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미얀마 현지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됐는데, 그 영장의 낙인 효과로 '현대판 연좌제'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자신의 영장 때문에, 33년간 공무원으로 일해온 표 씨의 아버지는 물론 모든 가족들이 외출할 때마다 감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표 씨는 "아버지는 (당연한 권리인) 노령연금 수급에 대한 허가 요청도 즉각 거부당했다"며 "현재 고위 공직자와 하급 공무원 양측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표 씨는 이런 가족들의 위협뿐만 아니라 건강까지 악화돼 지난 3월부터 대학병원에 수시로 진료를 받으러 가고 있습니다. 공장일로 벌 수 있는 돈은 제한적인 데 비해 계획에 없던 의료비 지출까지 더해져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표 씨는 자신의 월급은 물론 다른 한국 시민들의 성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미얀마 현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를 종잣돈의 기회비용을, 현지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동료들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표 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전쟁 피해자인 미얀마인들과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위해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언론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더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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