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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자의 일침…"권력 가진 자, 역사 앞에 겸손해야"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편상욱 앵커
■ 대담 : 반병률 역사학자·한국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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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반병률 / 역사학자·한국외대 명예교수
"육사 흉상, 단순한 조형 아냐…국군·대한민국 정체성 관계된 문제"
"윤 정부·국방부, 역사 입맛 맞게 재단하려는 유혹의 함정 빠진 듯"
"홍범도, 치열하게 항일 투쟁한 인물…민족 사랑 듬뿍 받았던 의병장"
"육사 흉상 철거? 한국 사회 보수 정체성마저 철폐시키는 무모한 행동"
"국방부, 역사 유적물 이전 등 국민 설득 과정 거쳐서 신중하게 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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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상욱/ 앵커: 앞서 정치권 뉴스에서 보셨듯이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 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할 방침이라고 밝혀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공군의 엄호를 받으며 영웅 칭호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반병률 명예교수와 함께 관련 내용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편상욱/ 앵커: 교수님 전공이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이시잖아요.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네, 그렇습니다.

▷ 편상욱/ 앵커: 이번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 이전 소식 듣고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이제 단순한 흉상 이전이나 철거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위 말하면 육사에 설치됐던 흉상이기 때문에 국군의 정체성, 또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계된 문제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역사를 좀 쉽게 생각하는구나. 역사의 엄중함을 쉽게 생각하는구나. 권력자들이 보통 역사를 자기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는 유혹에 많이 빠지거든요,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런 유혹의 함정에 빠진 것 아닌가, 그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한국 사회나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분열적인, 그런 국민들의 통합에 방해가 되는 쪽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 편상욱/ 앵커: 이번 흉상 이전에서 가장 부각 되는 분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신데요. 우리 국민 중에 홍범도 장군 이름은 모르는 분이 별로 없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시는 분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인지 좀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홍범도 장군이 참 잘 알려지지 않고 봉오동 전투와 관련해서만 알려져 있잖아요.

▷ 편상욱/ 앵커: 그거는 영화가 나왔으니까요.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좀 나아가면 한말의 의병 투쟁, 의병장으로서 알려졌는데 사실은 이분이 머슴 출신이고 노동자고. 또 그 평양에 있는 군대의 병사 출신으로 나팔수 역할을 했죠. 그리고 총으로 먹고사는 포수로 알려졌는데 이분이 1895년 민비 시해 사건이죠.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부터 의병 투쟁에 참여한 이후로 러일전쟁 시기 동안에 그리고 1907년 군대 해산 이후에,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 이후에. 포수들과 농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항일 투쟁을 치열하게 했죠. 그래서 1908년에 보면 한 달에 2, 3차의 전투를 치를 정도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많이 했는데. 그 이후에 1908년에 러시아로 망명해서, 1910년대에는 주로 그 지역의 13도 창의군이라든가 권업회라든가 이런 중요한 민족운동단체 지도자로 활동을 했고요. 그다음에 이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밀산이라는 지역으로, 일본과 러시아가 동맹국가가 되니 밀산 지역에서 교육운동, 청년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에는 러시아 지역에서 우리 3·1운동의 독립운동 분위기가 고조 되니까 1919년 말에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북간도 지역 지금의 연변 지역이죠. 이쪽에 들어와서 우리가 잘 아는 말하자면 봉오동 전투를 성공적으로 치르시고 그다음에 청산리 전투. 그래서 일본군이 그 이후에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대규모 병력이 들어오니까 불가피하게 러시아 지역으로 망명을 하셨죠. 군대를 이끌고 도피를 한 거죠. 그래서 자유 참변을 겪었고 그 이후에 시베리아 내전. 러시아의. 그리고 1923년부터는 주로 연해주 지역에서 주로 집단 농장 집단 꼴호즈라고 그러죠. 러시아 말로. 집단 농장을 이끌어 가시면서 주로 자기와 같이 활동했던 그 부하들. 독립군 부하들이 주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죠. 그래서 1937년에 결국은 잘 아시다시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의 그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셔서 거기서 말년에, 1943년에 일생을 마친 분이죠. 그래서 평생 동안 항일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치열함이라고 할까요? 장고함의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홍범도 장관은 상당히 특이한 분이고 더군다나 부대원들이나 일반 민중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았던 그런 의병장으로서, 독립군 대장으로서 아주 독특한 분이고 상당히 우리가 주목해야 될 그런 지도자죠.

▷ 편상욱/ 앵커: 홍범도 장군이라면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습니다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두 가지가 최고의 전투라고 할 수가 있겠죠. 어떤 전투였는지 그것도 간단히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봉오동 전투는 우리 3.1운동 이후에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크게 고조가 되잖아요. 우리가 3.1운동 당시에는 소위 파리 강화 회의를 겨냥해서 주로 미국, 미국과 그 열강의 도움을 받아서 이제 외교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하려고 했었어요. 독립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내려고 그랬던 건데 그것이 안 되니까 결국은 무장투쟁론으로. 말하자면 독립운동 노선이 임시정부로 이렇게 노선을 변경하면서 바뀌죠. 그래서 1920년을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에서 독립 전쟁의 원년을 선포하게 되고. 그래서 1920년에 보면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 지역에 있는 독립군들을 전체적으로 통합을 해서 일본과 대대적인 독립 전쟁을 치르겠다고 하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의 일환으로 봉오동 전투, 1920년 6월. 그리고 10월 달에 청산리 전투가 벌어지는 건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임시정부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임시정부의 정책은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에 있는. 소위 말하는 국경지대잖아요. 한반도의 국경 지대에 독립군들을 총단합시켜서 일사불란한 지휘 체제를 가지고 일본군과 대대적인 독립 전쟁을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치르려고 했던 건데. 사실은 우리 내부의 문제. 독립군 여러 단체들간의 분열 문제. 이념이라든가 노선이나 종교적인 배경이나 지역적인 배경 때문에 단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우리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맞이한 거죠. 그런데 물론 봉오동 전투 당시에는 최소한 국소적인, 지역적인 차원에서 3개 단체가 연합을 했어요. 3단 연합이라고 제가 부릅니다마는 3개 단체하고 그 뒤에 시민단이나 여러 독립군 단체가 같이 해서 치른 전투였지만. 청산리 전투 같은 경우는 우리가 미처 통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군의 1개 사단에 준하는 그런 병력을 맞이해서 청산리 전투를 치른 거죠.

▷ 편상욱/ 앵커: 대승을 거둔 거죠.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대승이라기보다는 어떻든 일본군은 이제 토벌을 하고 몰살시키려고 들어온 건데. 봉오동 전투도 그렇고 청산리 전투 같은 거는 좀 더 계획을 가지고 들어온 건데 결국은 포위를 해서 이제 우리 주력 부대인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부대하고 대한독립군의 홍범도 부대를 말살시키면 독립군 운동은 끝난다. 일본은 생각하고 아주 포위를 해서 들어온 건데 우리 독립군 부대들이 포위망을 성공적으로 뚫고 나간 거죠.
그러니까 대승을 거뒀다는 그런 측면도 물론 강조할 수 있습니다마는 어떻든 일본군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독립군의 근거지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다음에 이제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군들이 한인사회 독립군들의 기반이 되고 있었던 서북간도의 한인들 사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분탕질을 하는 거죠. 우리 경신참변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양민학살이고 학교, 교회 다 불태우면서 이제 아주 온갖 우리 상상 이상의,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 경신참변. 그것이 짧게 잡으면 2개월, 5개월 동안,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는 독립군들이 북간도 지역, 만주 지역에서 더이상 활동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 거죠. 그래서 러시아로. 당시에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국가라고 하는 것은 소비에트 러시아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그런 일종의 피난처라고 그럴까요? 도피처를 이제 독립군들에게 제공을 한 거죠. 그래서 서북간도 지역의 독립군들하고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대거 자유시라고 하는 러시아의 혁명 세력에 의해 해방된 지역으로 도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국제적인 정세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제적인 정세를 이해하지 않고 단순하게 여러 가지

▷ 편상욱/ 앵커: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었다는 걸 문제 삼고 있는 거죠.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그렇죠? 1927년에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을 하게 되는데 그게 1927년이면 홍 장군이 60세가 되는데요. 1868년생이기 때문에 29년부터는 연금 생활로 들어가게 돼 있어요, 홍범도 장군이. 그렇기 때문에 연금 생활에 필요한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벌써 60세잖아요? 60세니까 이미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난 거죠. 그러니까 연금 생활로 인한 어떤 개인적인 측면에서 생계 유지라든가, 이런 것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홍범도 장관이 집단 농장 꼴호즈의 지도자로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양봉이라든가 이렇게 해서... 소위 말하자면 자기 시와에서 데리고 와서 활동했던 독립군 부하들 그리고 일반 농민들을 조직을 해서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이제 땅을 분배받고 그걸 관리하고 농로라든가 농기구라든가 이런 것들을 다 지원을 받아야 되잖아요.
 
▷ 편상욱/ 앵커: 어쨌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요.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그런 상황에서는 결국은 당과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홍 장군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건 입당을 하는 거죠. 그러나 소련 공사에 입당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무슨 조선공산당이니 공산주의자니 볼세비키니, 이런 험악한 얘기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 사회에서 일종의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시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유효한 방편으로 소련 공산당에 입당을 한 거죠. 개인적으로는 연금 문제가 있고요. 노후의 생활 문제가 있고 객관적, 공적으로는 자기 과거의 의병이라든가 독립군 활동에 의해서 자기 부하로서 자기에게 충성했던 자기를 신뢰를 갖고 따랐던 그 부하들의 생계 이런 문제를 보장하고 확보하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 이제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192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 공산주의 운동에 관여를 했다든가. 아니면 식민지 조선인 한반도에 파견될 걸 전제로 한 어떤 그런 아방가르드적인 입장에서 공산주의자가 절대 아니었죠.

▷ 편상욱/ 앵커: 그런데 이런 홍범도 장군의 행적이 이미 보수 정부에서 다 검증이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박정희 정부 시절에 건국 훈장 대통령장도 수여가 됐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지금 똑같이 보수 정부인데 이런 논란이 반복된다고 보십니까?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존중해야 되는 것이 어떻든 간에 대한민국의 제도와 법령이나 규정 같은 것이 보수든 진보든 간에 정권이 교체되면서도 쭉 쌓여온 관행이거든요. 상당히 우리가 아름답게 중요한 전통으로 지켜야 될 거거든요.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 고칠 건 고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그런 과정인데. 그렇기 때문에 홍범도 장군의 또 62년 이후에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완벽한 인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국 사회의 그런 전통들, 보수적인 전통이죠. 쌓아온 우리 관행과 전통을 존중해 나가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그런 건데... 이번의 조치 같은 경우에는 그것을 일거에 한국사회가 지켜오는 어떤 보수적인 어떤 그런 것을 일거에 그걸 뒤엎으려고 하는 한두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서 전체를 뜯어고치려고 하는 참 무모한 일이죠. 흉상 철거라고 하는 건 단순한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까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국군의 뿌리 정체성이라든가 대한민국의 정체성 같은 것을 건드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 편상욱/ 앵커: 정치인 출신으로 광복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도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 독립지사 이화영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죠. 들어보겠습니다.
 
▷ 편상욱/ 앵커: 교수님,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종석 국방장관에게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라,
이런 요구까지 했는데 교수님도 동의하십니까?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글쎄 뭐 물러나고 이런 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이종찬 회장님 말씀하신 것은 상당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국군이나 대한민국의 정체성,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와 관련해서 상당히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편상욱/ 앵커: 흉상이 지금 육사에 있는 건 부적절하다. 하지만 국방부는 국군의 뿌리에서 독립군의 역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흉상이 육사에 있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인데 이건 어떻게 평가해야 될까요?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글쎄요 흉상을 설치할 때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겠죠. 그 논의 과정을 통해서 나름대로 합의해서 설치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거를 철거하는 과정에서도 그에 부합하는, 최소한 그것 이상으로 한 번 맞는 것을 철거하는 것은 상당히 더 이상의 여러 가지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설치할 때 그의 논의와 여러 가지 지적했던 문제들이라든가 이런 의의 같은 것을 종합적으로 다시 재고해서 논의를 비밀 밀실이라든가 일부 소수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일사천리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 과정을, 또 여러 가지 합의 과정을, 또는 국민에 대한 어떤 설득 과정을 거치면서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문제가 흉상 철거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막 연계돼 있잖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까지 해서 지금 서훈 문제, 서훈 취소 문제까지 해서 지금 한국 여러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역사 유적물들. 이런 것까지 막 관련되기 때문에 상당히 너무 쉽게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역사와 관련된 문제라든가 또 독립운동과 관련해서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단순하게 좀 더 신중하게, 진지하게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편상욱/ 앵커: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또 한 번 이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 편상욱/ 앵커: 홍범도 장군의 존재는 같은데 지금 잠수함 이름까지 바꾼다고 합니다.
몇 년 만에 이런 상황이 된 가장 큰 이유, 뭐라고 보십니까?

▶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그러니까 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까 초기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유혹에 빠진 것 같아요. 역사도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역사의 엄중함이라고 할까요? 이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역사는 풍부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가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인데 이거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신중하고 역사 앞에서 겸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분들, 또 정치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라. 그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역사에 만약에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안 되고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하게 될 경우에는 분명하게 역사의 심판을 받게 돼 있다. 역사의 무서움을, 경각심을 갖고 그걸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 편상욱/ 앵커: 네 오늘 말씀 우리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좀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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