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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오거돈 측 "추행하려면 은밀한 곳 택했을 것"

오거돈 전 부산시장 측, 손해배상소송 민사재판 앞두고 의견서 제출

[취재파일][단독] 오거돈 측 "추행하려면 은밀한 곳 택했을 것"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강제추행치상)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측이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선고를 앞두고 또 다시 피해자 측에 책임을 돌리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견서에는 "추행의 의사가 있었다면 개방된 시장 집무실이 아니라 다른 은밀한 곳이나 비공개 장소를 택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부적절한 문구도 포함됐다. 피해자 측은 "형사재판에서 '잘못을 모두 반성한다'던 오 전 시장 측이 입장을 뒤집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너무 미덥고 기특해서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SBS가 입수한 8쪽 분량의 의견서에 따르면 오 전 시장 변호인은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이 "순간적, 충동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오 전 시장 측은 의견서에서 "(피해자가) 너무나 미덥고 기특하다는 느낌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순간적으로 분별력을 잃고 충동에 휩쓸려 이 사건 가해 행위를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피해자가 오 전 시장에게 건넨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는 취지인데, 강제추행을 저지르게 된 동기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견서에는 또 "추행의 의사가 있었다면 시장 집무실이 아닌 은밀한 곳이나 비공개 장소를 택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오 전 시장 측은 "피고(오거돈)가 추행의 의사를 가지고 피해자를 시장 집무실로 부른 것이라면, 피고는 수행비서를 통해 원고를 부를 것이 아니라 (수행비서에게) 알리지 않은 채 원고를 직접 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고, 장소도 개방된 시장 집무실이 아니라 다른 은밀한 곳이나 비공개 장소를 택하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개방된 시장 집무실에서 강제추행을 한 게 범행이 충동적, 우발적이었다는 걸 증명한다는 취지다.
 

"추행 의사 있었다면 은밀한 곳이나 비공개 장소가 나았을 것"

강제추행이 "충동적,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논리는 오 전 시장 측이 형사재판에서 줄곧 내세웠던 논리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징역 3년 형이 확정됐다. 더구나 오 전 시장은 2020년 4월 발생한 이 범행 말고도 2018년 11월 또 다른 부산시청 직원을 강제추행하고 12월 또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까지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상습범이었다는 뜻이다. 1심 재판부는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에 대해 "월등히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으로, 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오 전 시장이 시장 집무실에서 대담하게 강제추행을 한 행위 자체도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적인 형태로 봐야지, 의도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정황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권력형 성범죄의 경우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가해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 연구실, 직장 상사의 경우 집무실이 범행 장소가 되는 경우다. 비슷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의 경우 관사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경우 집무실에 딸린 공간에서 가해 행위가 이뤄졌다.

강제추행 혐의 오거돈 사전구속영장 청구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더니…'원점'으로 회귀?

오 전 시장 측 의견서를 두고 "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오 전 시장은 재작년 12월 13일 열린 형사재판 결심공판에서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면서 "피해자들께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싶다", "남은 인생을 피해자들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공동대책위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형사재판에서 밝힌 반성의 말이 결국 빈말이었음을 보여주는 꼴"이라면서 "(오 전 시장 측) 의견서를 보고 피해자가 또 다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오 전 시장 측은 형사재판에서 합의금 10억 원을 피해자 측에게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 시도는 당시 피해자 측 거부로 무산됐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그랬던 오 전 시장이 민사재판에선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형사재판에서 인정한 혐의까지 다 부인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권력형 성범죄 손해배상소송 효시될까

오 전 시장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결과는 다음 달(9월) 13일 나온다. 법조계에선 이 재판 결과가 권력형 성범죄로 인한 피해 위자료의 기준을 제시하는 판례가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권력형 성범죄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게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었던 만큼 손해배상소송 등 민사재판의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권력자의 성범죄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매우 높게 책정하고 있다. 지난 5월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성추행 민사재판 결과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성추행 피해자에게 총 500만 달러, 우리 돈 약 66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성추행으로 인한 피해배상금 200만 달러뿐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금 2만 달러 또,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점과 관련해 270만 달러와 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금 28만 달러까지 물어주라는 판결이었다.

마침 서울중앙지법에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관련 손해배상소송이 약 2년 만에 재개됐다. 지난 25일 재판에서 안 전 지사 측은 "성폭행 형사재판 유죄 결과는 증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배상 책임을 부정했다. 두 사건 모두 광역지자체장이라는 권력자의 부하 직원에 대한 성범죄였고 쟁점도 비슷한 만큼, 다음 달 오 전 시장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재판 결과가 안 전 지사 재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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