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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화성세무서 직원 유족 "그 민원인 사과 꼭 받고 싶다"

국세청 "해당 민원인 수사 의뢰"

또 안타까운 목숨이 스러졌습니다. 지난 16일 숨진 경기도 동화성세무서 강 모(여. 46) 민원실장의 이야기입니다. 7월 24일 민원실에서 쓰러진 지 24일 만입니다. 당시 강 실장은 민원인을 상대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중병을 앓은 이후로 휠체어에 의지해왔습니다. 사건 당일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그대로 심정지 상태가 됐습니다.

국세청 직원들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초등교사들의 잇단 자살도 '악성 민원' 때문이지 않았느냐, 세무서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세금에 민감한 민원인 상대하기가 너무 두렵고 모멸적이다…. 나아가 망자에게 또 유족에게 충분한 예우를 해줬는지 따졌습니다. 빨리 적절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강 실장의 죽음과 이를 마주한 직원들의 분노, 이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 등을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국세청 (사진=연합뉴스TV, 연합뉴스)

유족 측 "CCTV를 보니…."

고인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남편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막 장례를 마친 터라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남편분이 외려 저를 배려했습니다. 명복을 빌어줘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현재 위암 4기라 항암 치료 중이라고 했습니다. 장례 이후 절차를 잘 못 챙겨 부인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궁금한 건 큰처남(A 씨)에게 물어보라고 연락처를 줬습니다. 그의 집으로 슬픔은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사건 당시의 CCTV를 열람했다고 했습니다. 녹화 기능만 있는 CCTV였습니다. 그래서 민원인이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무슨 욕을 했는지 모른답니다. 신체적 접촉도 없었답니다. 다만 민원인이 누나에게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고 했습니다. 조용히 말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민원인은 강 실장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국세청과 A 씨가 전한 동화성세무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민원인이 강 실장에게 고성을 높이며 '당신은 민원실장 자격이 없다', '그래서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치겠느냐' 같은 말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성토…진실은?

직원들은 블라인드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왜 경찰에 고발하지 않느냐'며 국세청장 업무추진비로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해당 민원인을 고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명백한 공무상 재해인데 가족장으로 지낸 이유가 뭔지 밝히라고 추궁했습니다. 민원 관련 최일선에 있는 세무서에 왜 아무 대책을 안 세우는지 답답해했습니다.

국세청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사이즈수정

이에 대해 국세청은 경찰에 자문한 결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고발 조치를 안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강 실장에게 적절한 예우와 보상을 위해 행정사무관으로 특별승진을 추서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 씨에게도 직원들의 분위기를 전하며 같은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A 씨는 저의 질문에 소상히 답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누나가 쓰러진 이후 국세청이 손을 놓고 있다고 하던데.
"그렇지는 않았다. 세무서장이 자주 문병을 왔고, 장례식장을 거의 지키다시피 했다. 국세청장과 중부청장도 문병 왔고, 빈소도 찾아줬다."

-누나가 민원인 때문에 쓰러졌는데 왜 국세청이 고발에 나서지 않았는지 직원들이 분노한다.
"누나가 병원에 있을 때 국세청에서 변호사(직원)를 보내줬다. 유족이 고발할 의사가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고발장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누나가 끝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직 고발은 못하고 있다."

-결국 국세청이 유족에게 책임을 미룬 게 아닌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변호사를 보내줘서 법률적인 부분 상의할 수 있었다. 국세청이 고발을 왜 안 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겠다."

-해당 민원인, 고발할 생각인가?
"누나가 사망했기 때문에 고발장 내용을 바꿔야 한다. 변호사와 그 부분도 상의했다. 그런데 당장 고발할지는 잘 모르겠다."

-누나는 업무를 보다가 세무서 안에서 쓰러졌다. '공무상 재해'인데 가족장으로 지낸 이유는 뭔가.
"우리도 처음에 국세청에 왜 가족장으로 지내야 하는지 문의했다. 국세청에서는 검토 결과 '국세청장 장(葬)', '세무서장 장(葬)' 절차가 따로 없다는 회신을 줬다. 그래서 가족장으로 지낸 거다. 다만 국세청에 고마운 건, 누나 장지로 가는 날 세무서를 돌고 왔다. 그런데 그때 누나가 있던 민원실 불을 다 끄고 마지막 길을 배웅해준 것이다. 그 부분 참 고마웠다."
 

유족 측 "민원인에게 사과 꼭 받고 싶다"

강 실장은 떠났지만 그녀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녀가 쓰러진 이후로 뭐가 달라졌을까? 국세청에 따르면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에 직원 수만큼 녹음기를 지급했습니다. 국세청은 다른 세무서 민원실에도 모두 지급하는 등 전국 단위로 녹음기 보급을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이는 새로 나온 대책은 아니었습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세금 문제로 얼굴 붉히고 목소리 높이고 심지어 협박까지 하는 민원인들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일선 세무서에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 역시 오래됐습니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3월부터 영상음성 기록장비를 마련해 일부 보급했으며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세청이 지난 4일 민원봉사실에 보급한 녹음기 모습. (사진=국세청 제공)

A 씨는 인터뷰 말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발 여부를 떠나 "그 민원인의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A 씨의 이야기가 해당 민원인에게 가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민원인도 이런 참담한 결과를 의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에 형성된 담론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남을 찌르고 비틀어서 제 것을 우선 챙기거나, 자기 위안을 받는 일부 '악성 민원인'은 콜센터 수화기 건너편에, 초등학교 담장 바깥에, 일선 세무서나 경찰서 민원실 상담 창구 등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갑질'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혹여 도덕으로 부족하다면 법이라도 강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제2, 3의 강 실장이 더 나와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취재파일을 송고할 때쯤 국세청에서 알려온 소식이 있습니다. 해당 민원인에 대해 수사 의뢰 했다는 내용입니다. '살아남은' 직원들이 애초부터 지적해온 부분입니다. 왜 국가가 대신해서 고발해주지 않느냐는 하소연에 늦었지만 응답한 겁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가 가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영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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