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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민국은 특허침해 소송이 어려운 나라"…'원정 소송' 가는 이유는?

[취재파일] "대한민국은 특허침해 소송이 어려운 나라"…'원정 소송' 가는 이유는?
▲ 17회 IP 전략 포럼,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

1만 8천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LED(발광다이오드: Light Emitting Diode) 산업의 특허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반도체, 지난 2003년 이후 해외에서 1백 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내 모두 승리하는 백전백승의 무적 특허 군단이다.

이런 무적 특허군단 서울반도체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2022년 24만 건의 특허를 출원해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대 특허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서울반도체가 특허 침해 소송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훈 대표, "대한민국에서는 특허가 있어도 소송을 낼 수 없어요"


좀처럼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서울반도체 창업자 이정훈 대표이사가 지난 17일 오전 7시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린 17회 IP전략 포럼의 기조 연설에 나섰다. '특허, 수비인가 공격인가?'인가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이정훈 대표는 "특허는 강자를 이기고, 약자들이 경이로운 결과를 만드는 것"이라며, 특허침해 소송에서 서울반도체가 승리하는 비결을 공개했다.

"출원할 때부터 10년 후를 보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라", "전체 산업의 생태계를 보고 특허 지도를 작성하라", "생각의 크기와 도전의 시간만큼 좋은 무기가 나온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 "특허를 쓸 때도 공격을 염두에 둬라".

이렇게 공격적인 특허 전략의 필요성과 방법을 역설하며 지역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주문하던 이정훈 대표는 그러나 "대한민국은 시작은 좋으나 어려운 곳이다. 알고 시작하라"며, 대한민국에서의 특허침해 소송에는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 대표는 "한국은 대기업이 강해 기업을 시작하는 데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소송의 예측성이 떨어진다. 불확실성이 크다. 판사는 2년 마다 바뀐다. 심리 진행 중에도 바뀐다. 소송의 지연이 자주 발생한다. 소송 중에도 특허 보정을 계속하고, 무효 소송에서 유효하다는 판결이 내려진 특허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나라다. 다른 나라는 무효소송에서 한 번 살아난 특허는 다시 무효가 되는 일이 없다. 소승과정에서 특허의 절반 이상이 무효가 된다."며, 대한민국 특허시스템의 문제를 나열했다.

김용철 취파용 사진
▲ 직류(DC)로 전환하지 않고 교류(AC) 전원에서 구동해 효율이 높은 서울반도체의 아크리치 LED

이 대표는 또 "우리나라의 LED 시장은 중국산이 점령하고 있다. 중국제품들은 우리 특허를 침해한 제품들이 대부분이지만, 특허 소송을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LED칩의 경우 조명 뿐 아니라, 자동차와 TV 등 국내 대기업이 만들어 파는 완제품에 들어간 상태로 수입되는데, 이들 국내 유수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내거나 이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국내 대기업의 생산라인을 멈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정훈 대표는 "미국에서는 당대에 경제적으로 상위 1%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슬프다.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처럼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당대에 선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허를 철저히 보호하고,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해 엄정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태어남에 불공정함이 있을 수 있으나 삶의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 한국이 훔친 특허의 암시장이 되지 않도록 해, 중소기업과 젊은이들이 꿈을 갖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기조 연설을 마쳤다.

김용철 취파용 사진
▲ 회선과 패키징을 없애 수명과 효율을 높인 서울반도체의 와이캅 LED
 

'원님재판' 피해 미국으로 '원정소송' 가는 기업들, 왜?


전직 특허청장과 판사, 변호사, 변리사들이 참여한 IP전략 포럼에서 이정훈 대표의 발표가 끝나자 포럼 참여자의 질문이 쏟아 졌다. '서울반도체가 국내에서 특허 침해 소송을 하지 못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국내 기업들 간의 소송인데도 한국법정을 회피하고 미국으로 원정 소송을 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특허 제도의 문제점을 고칠 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다.

이정훈 대표는 즉답을 피하면서 '발명가와 특허권자 보다는 산업의 발전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반영된 결과' 같다고 말했다. 특허를 사들인 뒤, 그 특허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라이센싱을 해 로열티를 받거나 특허 침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배상을 받는 NPE(Non Practicing Entity), 이른바 특허괴물(Patent Troll)을 무조건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 특허를 홀대하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김용철 취파용 사진
▲ LED 반도체가 들어가는 첨단 제품들

국제적인 특허 소송을 담당했던 A 변리사는 "대한민국의 특허법정은 중국에서 관시(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구태가 재연된다. 정교한 판례가 정립돼 있지 않고, 결론을 정해 놓고 외국의 사례를 입맛에 맞게 인용해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상 틀린 해석을 하고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허의 권리범위를 규정한 청구항의 해석이나 어떤 증거를 어떻게 채택해야 하는 지,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도 명확하지 않다.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할 경우 무효를 주장하는 측이 입증해야 하는 데, 특허권자가 입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특허변호사인 B 씨는 "글로벌 시장에서 특허로 먹고 사는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특허 소송을 하면 얻는 것은 없고, 오히려 손해를 보기 쉽다. 특허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칫 소송에서 지기라도 하면 다른 국제 소송에 치명적일 수 있다. 승소도 어렵지만 승소를 해도 보상금액은 턱없이 적어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IP전략포럼에 패널 토론자로 참여한 최재식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글로벌정책연구실장은 "기술 융복합 시대에 새로운 위험과 기회에 대비해야 한다. 법률과 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법정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결정이 나온다. 국가주의와 국수주의도 존재한다. 한국이 국제특허 허브를 지향하고 특허법원에 국제재판부까지 설치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효과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심재훈 미국변호사는 자신이 쓴 책 '왜 한국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에서 "한국기업들은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가서 서로 싸우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한국 법률 시스템과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소송의 키워드는 리걸 테크와 전자증거개시다.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조물 책임제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증거에 따른 재판 관행을 정착하고, 국제 법정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증거와 증언, 논리를 확보하고 제시하는 리걸 테크를 확보하고 연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는 "미국에서 고용의 30%, 국내총생산의 40%가 특허 등 지식재산(IP) 관련 산업에서 나온다.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 지식재산의 보호와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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