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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오펜하이머", 어느 르네상스인 이야기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81

[씨네멘터리] "오펜하이머", 어느 르네상스인 이야기
Prologue.

   원자폭탄은 영화가 시작한 지 두 시간쯤 뒤에야 터진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라 조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폭탄처럼 터지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형용모순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다.

원자폭탄이 원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폭발하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는 답이 아니다.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 내면에서 터지는 원자폭탄을 다룬다.

   오랫동안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려 왔으면서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펜하이머란 미국인이 그렇게 까지 궁금하지는 않다. 그래서 한국 개봉 초반의 열광과 관심이 과연 보편 대중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 그렇다면 그들을 극장으로 불러 내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지 알고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궁금했다. 원자폭탄. 세계 전쟁사에서 딱 한 번(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용됐던 무기. 단 한번 사용으로도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치명적이었던 무기.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 제목을 듣는 순간 곧바로 기대감을 가졌던 이유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모순적 태도만큼이나 오펜하이머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이자,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서, 놀랄 만큼 꼼꼼하게 쓰여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묘사하고 있는 오펜하이머는 상대적(relative)이고, 상보적(complementary)이고, 불확정적인(uncertain) 인물이다.

씨네멘터리_오펜하이머

 영화가 시작하고 불과 10분 남짓 지나는 동안 과학사의 거인들이 마치 “어벤져스”에서 히어로 나오듯 줄줄이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1921년 노벨물리학상)과 닐스 보어(‘상보성의 원리’·1922년 노벨물리학상), 그리고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의 원리’·1932년 노벨물리학상). 이런 블록버스터는 없었다. 아니, 이런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살았던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과학의 시대였다.

세 사람을 비롯해 이 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현대 과학뿐 아니라- ‘현대’ 그 자체를 정초한 천재들이다. 이들이 주춧돌을 놓은 양자 역학은 컴퓨터, 휴대폰, 원자력 등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인간의 발명품들을 탄생시켰다. 심지어 오늘날 영화계에서 대폭발 중인 ‘멀티버스’라는 개념 역시 양자 역학의 세계관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끝내 양자 역학의 확률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닐스 보어는 “오펜하이머”에서 케임브리지의 한 강연장에 서서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에너지와 역설(paradox)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

   양자 역학의 태두쯤 되는 닐스 보어의 말대로, 양자 역학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에너지와 역설의 미시 세계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고, 관측되기 전까지 존재의 위치는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영국과 독일에서 유학한 오펜하이머가 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양자 역학의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3년, 4000명, 20억 달러’가 투입된 초거대 국가 비밀 프로젝트였다. 

“오펜하이머”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성공적으로 투하됐다고 발표하는 라디오 성명을 통해 마치 자신이 물리학자인양 거드름을 피운다. 

“우주의 본질적인 힘을 이용해 만든 폭탄입니다.”

오펜하이머가 물리학만 공부한 백면서생이었다면, 조직 운영 밖에 모르는 단순한 경영자였다면 불가능했을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은 과학자 오펜하이머 개인의 능력과 매력, 카리스마에 힘입은 바 컸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매력은 그가 외골수 과학자를 뛰어넘는 르네상스인이었다는 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고, 피카소의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여인”에 감명받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는다. 실제로 그는 하버드대에 입학해서 철학, 불문학, 미적분학, 역사학, 화학 등을 다양하게 수강했고, 건축학이나 고전학을 전공할까 고민하기도 했으며, 학생 잡지에 자작시를 투고하는 부류의 학생이었다. 

또 만년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1947-1966)을 역임할 때는 일부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외에도 고전학자와 심리학자, 고고학자, 시인 T.S 엘리엇,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사회철학자 이사야 벌린 등 명망 있는 인문학자들도 연구소로 초빙했다. 

그러하므로,

1945년 7월 16일 미국 앨라마고도 사막에서 실시됐던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당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을 본 오펜하이머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는 구절(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을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이 원폭 실험의 부지 명칭이자 암호명인 ‘트리니티’는 T.S. 엘리엇에게 영향을 준 영국의 사제 시인인 존 돈의 시 구절 ‘나의 심장을 쳐라. 삼위일체의 신이여’에서 나왔다고 오펜하이머는 회고했다.

세계 최초의 원폭 실험을 지켜보고 있는 오펜하이머 / 유니버설픽쳐스
   히로시마 600미터 상공에 원자 폭탄이 터지던 ‘성공적인’ 순간은 에너지의 시간이자 패러독스의 시간이고, 오펜하이머에겐 모순의 시간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다음날 아침에는 ‘저 불쌍한 사람들, 저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일본인들을 걱정하면서 우울해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며칠 뒤에는 원자 폭탄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은 군인들을 만나 ‘원자폭탄을 너무 높은 상공에서 떨어뜨리면 파괴력이 훨씬 떨어진다’거나 ‘실제 투하할 때는 반드시 육안으로 목표물을 확인하라’며 다짐을 받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였다. 

   어쩌면 원자폭탄 자체가 모순덩어리일 것이다. 1967년 2월 오펜하이머의 장례식장에서 오펜하이머의 친구이자 베테랑 외교관인 조지 케넌은 ‘우주의 본질적인 힘을 이용한’ 폭탄을 만들었다는 트루먼과는 정반대의 뉘앙스에서 말했다.

“우리의 도덕적 지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자연으로부터 뽑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사이언스북스)

미국에 양자 역학과 원자 폭탄을 가져다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는 히로시마에 폭탄이 성공적으로 투하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모순적인 인간이 된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안 머피는 이 모순을 ‘표정화’하면 어떤 얼굴이 되는지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이 모순의 시간을 겪은 뒤 ‘핵통제주의자’, ‘반(反)수소폭탄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원폭 투하 성공 이후에 각 나라가 주권을 양보해 원자 폭탄을 관리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핵폭탄과 관련한 권한을 이양하도록 하자고 정부에 건의하고,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공개적으로 반대한다. 오펜하이머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추적을 당하고 청문회에 불려 가는 고초를 겪게 된다.

원폭 실험 직후 기지에서 연설에 나서는 오펜하이머 / 유니버설픽쳐스

   오펜하이머는 부르주아지 출신이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그는 대과학의 시대를 살았고, 동시에 대공황의 시대를 살았다. 그것이 오펜하이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대공황이 나의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적절하지 못한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아예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건들이 인간의 삶에 이토록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954년 심문 과정에서)

젊은 시절, 그는 좌파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오펜하이머는 점차 변해갔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변했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청년 오펜하이머 주변에는 실제로 공산당원도 있었고, 공산당의 노선을 지지하는 동조자도 있었다. 

오펜하이머 역시 ‘전형적인 뉴딜 진보주의자이자 유럽의 파시즘에 반대하고 미국의 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는 공산당의 노선을 지지하는 동조자였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그는 마르크스 저작들을 읽는 한편(영화에서는 “자본론”을 원서로 읽었다고 나온다) 르네상스인답게 “바가바드기타”와 헤밍웨이와 프로이트도 읽었다. 그리고 명백히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파는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닐까, 소련의 첩자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의심을 팩트로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해 도청과 미행,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당시는 불행히도 매카시즘의 시대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결국 미국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보안 청문회에 회부돼 원자력 비밀 취급 인가를 취소당한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가 국가 원자력 관련 중요한 정보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거대한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단 한 명의 과학자가 파문당한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은 앞으로 국가 정책에 도전하면 어떤 심각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점을 알아채게 되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책 표지 / 사이언스북스

 1953년 2월 뉴욕에서 오펜하이머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보낸 군축 보고서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오펜하이머는 ‘원자력 분야에서의 비밀주의가 유언비어와 엉뚱한 추측, 때로는 완전한 무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일들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누구와도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때, 토론을 벌이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실들이 비밀로 묶여있을 때,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될 때 일어납니다.”

   영화에서도 비밀 유지를 위해 ‘구획적 연구’를 강제하던 군 당국을 간간이 뛰어넘어 협동적 연구를 추구하던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메타 인지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타계 직전인 1965년 NBC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원폭 실험 성공의 순간을 회고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습니다. 대부분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기억했습니다. 비슈누 왕자에게 그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비슈누는 팔이 여러 개 달린 형태를 취하고서는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이와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지성의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학제 간 교류와 사회적 참여를 중시했다. 미국 최고의 원자력 과학자였던 그는, 과학자들이 과학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과학자이자 르네상스인인 그가 사실상 탄핵에 가까운 조치를 당한 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갔다. 20세기 초 과학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지식인 그룹으로 급부상한 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대중 철학자로서 정당성을 가지고 정책 수립에 전문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오펜하이머가 끌어내려지자 과학자들은 앞으로는 좁은 과학 문제의 전문가로서만 국가에 봉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시인 구역에 오펜하이머가 사랑했던 시인 T.S. 엘리엇(1948년 노벨문학상)과 함께 잠들어 있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키플링(1907년 노벨문학상)은 “영국 국기(The English Flag)”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영국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영국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자신의 분야에만 골몰하다 그게 세계의 전부인 줄 아는, 메타 인지가 안 되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입만 열면 자유만 부르짖는 자들이 자유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Epilogue.

필자는 다른 등장인물을 거의 배제하고 오펜하이머 위주로 여기까지 썼다. 하지만 영화 “오펜하이머”는 치밀하게 고증된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굉장히 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번잡한 결혼식에서 한꺼번에 수십 명의 하객들과 겨우 악수만 나누고 온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어떤 캐릭터가 중요하고 어떤 캐릭터는 잊어버려도 괜찮은지 영화를 보는 중에는 구별해 내기 쉽지 않다.

“오펜하이머”의 영화적 구성은 몹시 치밀하다.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대사까지 거의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다만 대체로 시간 순으로 전개되는 원작과 달리 누가 “메멘토”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감독 아니랄까봐, 원작을 핵분열하듯 쪼개고 쪼개서 3시간짜리 영화로 대폭발 시켜 놓았다.

물론 치밀하고도 정교한 구성이라 관객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필자처럼 아둔한 사람은 책을 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제대로 영화를 꿰었다는 기분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놀란이 각색에 참여했기 때문에 1000쪽이 넘는 원작의 문장 사이로 흐르는 맥락은 배우들의 연기와 비주얼 등으로 영화에서 대체로 충실하게 반영되었다. 하지만 러닝 타임의 한계로 감독만 알게 끔 처리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만 보고는 원작의 맥락을 100%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존재한다는 것이 영화 두 번, 책 한 번 본 필자의 결론이다.

보안 청문회장에서 애인과의 관계를 심문받는 오펜하이머를 발가벗은 채 앉아있는 오펜하이머와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의 정사 장면으로 연출한 씬은 놀란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라모스에서 했던 원폭 실험 성공 연설 장면은 빛의 예술인 영화의 본질을 보여줌은 물론이고, 킬리언 머피의 연기와 사운드 연출이 ‘핵융합(fussion)’된 마스터피스를 보여준다. 이것이 영화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보러 극장에 간다. (반드시 아이맥스일 필요는 없다)

* 참고 문헌 및 인용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사이언스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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