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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인질범과 인질, 악연으로 만난 이들의 '인연 이야기'

[스브스夜] '꼬꼬무'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인질범과 인질, 악연으로 만난 이들의 '인연 이야기'
운명은 있을까?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인연과 악연 사이 - 어느 인질의 고백'이라는 부제로 1974년에 벌어진 한 인질 사건을 조명했다.

1974년 5월 20일 오전 7시, 한 재벌가의 삼 남매가 등교를 위해 탄 차량을 세 명의 남자들이 가로막았다.

앞서 새벽 5시 경계 근무를 서던 이원모 이병은 부대에서 카빈총과 실탄 등을 가지고 무장 탈영했다. 그리고 부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윤찬재, 최성한과 만났다. 이들은 구의동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인 구의동 3인조.

이들은 삼 남매가 탄 차량을 빼앗아 기사에게 포항으로 가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 차량은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고, 차량 탈취 15분 만에 위치가 확인됐다.

근처에 있던 김장식 순경은 차량을 쫓았고, 이윽고 차량 앞을 가로막았다. 이때 멈춰 선 차량에서 운전기사는 도주했고, 김 순경은 조수석을 덮쳐 이 이병의 총을 빼앗으려 했다. 그런데 이때 뒷자리의 최성한이 흥분해 김 순경에게 총격을 가했고, 김 순경을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당황한 범인들은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 사실 포항에서 일본으로 밀항을 하려고 하던 이들은 서울로 올라가 폭로 후 끝장을 보자고 결심했고 승객 46명이 타고 있던 고속버스를 탈취했다.

이들은 차량에서 위협이 될 수 있는 남자 승객들만 모두 내리게 하고 여자 승객 총 14명을 태운 채 기사에게 서울 명동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명동으로 향하던 중 군경들을 마주한 구의동 3인조.

이들은 자수를 유도하는 군경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군경들과 5분간 총격전을 펼쳤다. 그리고 잠시 후 차량에서 인질 중 한 명을 내리게 해 바리케이드를 치우게 했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군경, 이에 고속버스는 이들을 통과해 명동으로 갔다.

명동에 도착한 3인조는 차량에서 각 한 명씩 인질들을 데리고 유네스코 회관의 지하 다방으로 들어갔다.

음악다방 DJ 남도영 씨는 "사냥총인 줄 알았다. 그게 카빈총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며 "다방에 무슨 사냥총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어 우습다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오전 10시 다방에는 무려 30명이 넘는 인원들이 있었고 3인조가 데려 온 인질들을 포함해 총 34명의 인질을 붙잡은 역대급 규모의 인질극이 시작됐다. 역대급 사건으로 군경 300여 명과 기자 100여 명이 출동했고 명동은 그야말로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다.

인질극이 시작되고 1시간가량 지날 무렵 다방의 전화가 울렸다. 군경은 이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이 이병은 "국방부 장관을 만나고 싶다"라고 자신들의 요구를 밝혔다. 그러자 군경에서는 자수를 하면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고, 이 이병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두 번째 설득 전화는 이 이병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이후 총소리 때문에 죽을 거 같다는 인질을 풀어준 3인조. 풀려난 인질은 현재 3인조가 의견 충돌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 이병은 자수를 원하지만 다른 두 명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

이에 군경은 이 이병의 여자친구에게 햄버거를 들려 보냈고, 먹을 것과 그의 여자 친구를 이용해 이 이병을 회유했다. 하지만 이 이병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대신 식사에 대한 답례라며 고령이거나 몸이 약한 사람들 중심으로 인질 8명을 추가로 풀어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 부드러워진 인질 현장. DJ도영 씨는 조심스럽게 인질범들에게 국방부 장관을 만나려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이 이병은 부대 내 폭행과 금품 갈취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던 이 이병의 상사는 매일 1,500원씩 상납을 요구했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1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를 상납하지 못하면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던 것.

이 이야기를 들은 남도영 씨는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에 "혹시 박창모 아세요?"라며 친구의 이름을 언급했다. 사실 남도영 씨의 절친은 이 이병의 동료였던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친구였던 두 사람이 인질과 인질범이라는 기막힌 인연으로 만났던 것.

친밀감이 생긴 인질범들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음을 고백했다. 상납할 돈이 더 이상 없으니 폭행을 피할 방법은 한국을 떠날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에 치기 어리고 허술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경찰을 쏘고 모든 일이 틀어졌고, 이에 국방부 장관을 만나 부조리를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남도영 씨는 김 순경이 사망했다고 생각해 자수를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생각하는 3인조의 이야기를 군경 측에 전했다. 그리고 김 순경의 생사 여부를 물었다.

이에 군경 측은 3인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김 순경의 순직 사실을 감춘 채 언론사 하나를 포섭해 가짜 신문을 만들었다. 인질범의 자수를 유도하기 위해 가짜 신문을 만든 언론사. 이는 세계 언론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도영 씨를 통해 전달된 신문을 확인한 3인조. 그중 이 이병은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김 순경을 직접 쏜 최성한은 총 네 발을 맞은 그가 살아있을 리 없다며 신문이 가짜라고 확신했고,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에 더욱 흥분한 3인조. 이에 3인조는 다방 중앙에 LPG통을 모았다. 이에 인질들의 공포는 극도에 달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방 한편에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인질범들. 이들은 도영 씨에게 노래나 틀어보라고 했다. 이에 도영 씨는 어니언스의 '작은 새'를 선곡해 들려주었다. 3인조는 노래를 듣다 흐느끼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눈물을 보였던 것. 인질극은 계속되었고, 새벽이 되자 3인조는 졸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도영 씨는 인질들 몇과 이 이병의 총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 이병의 총을 빼앗아 던졌고, 그 순간 인질들 몇이 인질범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들은 기동대들도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와 인질극 20시간 만에 인질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인질범들은 모두 검거됐다.

다음 날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도영 씨.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질문 공세에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50년 동안 이 사실을 숨겼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범인들의 이야기를 대신 사회를 향해 전했다.

범인 확인을 위해 범인들을 다시 만나게 된 도영 씨. 그는 폭행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범인들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동료애가 생겼던 것이었다.

얼마 후 군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군은 "범인들은 평소 소행이 불량한 전과자들로 여자관계가 복잡했으며 총을 훔쳐 강도짓을 해 일본으로 달아나기로 모의,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들이 군대 부조리를 운운한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라며 3인조 사건에는 어떤 배경도 없으며 그저 개인의 일탈이라 치부했다.

3인조 사건이 일어나기 전 같은 해 무장탈영병의 인질극은 무려 5번이나 벌어졌고, 범행 동기는 모두 부대 내 폭행과 금품 갈취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진술을 묵살되었고, 범죄 예방보다 처벌이 우선이던 그 시절 그와 관련된 어떤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면 없었을지도 몰랐던 3인조 사건.

이후 이 이병을 포함해 세 사람은 군복을 입고 군사 재판에 회부됐다. 살인을 포함해 총 9가지의 죄목에 대한 재판은 전국에 방송됐고 이들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에도 판결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민간인까지 군사법정에 세운 무리한 재판이라는 의견에 재정 신청도 있었지만 이는 기각되고 사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이들이 밝힌 부대 내 폭행과 금품 갈취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형이 선고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한 날 한 시 총살당한 세 사람. 순직한 김 순경의 아내는 이들의 부모들에게 위로의 찬송가를 보냈다.

김 순경의 딸은 "어머니는 원망보다는 용서를 택하셨던 것 같다"라며 "저희 삼 남매는 부모님의 희생과 용기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는 "좋은 사람과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그들의 무모함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세 사람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픈 남도영 씨. 그는 "그들을 생각하면 묘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환경만 달랐다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며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어느 누구한테도 이 이야기를 안 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정 아닌 우정을 나눴으니까"라고 야속한 운명으로 만난 친구들을 안타까워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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