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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공 들일 때는 무시하더니…속 타는 중국?

한미일 정상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
현지시간 18일 미국에서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3국 정상이 별도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소도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상징성이 큽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회의가 한미일 협력에서 '새로운 시대(a new era)'를 열게 될 거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회의 전이라 정확한 내용을 알 순 없지만 미국과 일본 현지 반응을 종합해 보면, 한미일 3국 협력을 제도화하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정권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게…한미일 협력 제도화 추진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모두 민주주의 국가로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외교 안보 노선도 변화하게 됩니다. 진보-보수 정권 교체 시 우리나라 대북 정책이 요동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일 관계도 그런 분야 중 하나로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국내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정책 일관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상회의 설명 차 열린 16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브리핑에서 한 일본 기자는 한국 정권 교체에 따른 3국 관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미일이 이번 회의에서 3국 간 협의를 중층적으로 정례화해 어느 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협력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외교안보 사령탑인 3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담당 고위 관리들이 연 1회 정기 협의를 개최하는 방안이 포함될 거라고 전했습니다. 3국 정상회의와 공동 군사훈련을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안도 거론됐습니다. 블링컨 장관이 고위급을 포함한 다양한 수준에서 정례화된 공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이번 한미일 회의에서는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뿐 아니라 협력의 범위도 대폭 확대될 걸로 보입니다. '3국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 거란 블링컨 장관의 말처럼, 북한 위협 대응에 국한됐던 기존의 한미일 협력을 넘어 군사와 경제 안보, 첨단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가속화할 걸로 보입니다. 지역적으로도 과거 동북아, 최근의 인도·태평양 지역, 나아가 전 세계로 협력 무대를 넓혀나갈 걸로 예상됩니다.

블링컨 장관은 한국과 일본은 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핵심 동맹이며 3국 공조를 강화하는 것은 미국과 역내, 국제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는데, 타이완 문제를 포함한 중국의 세력 확장 차단과 우크라이나 침공 등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 이번 회의에서 추진 중인 3국 공조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 걸로 보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윤 대통령 "확장 억제, 한미일 협의 열려 있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회의 참석 전 블룸버그 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공조 범위에 대한 의견을 일부 확인했습니다. 먼저 확장 억제와 관련해 한국은 한국과 미국, 일본 사이 별도의 협의에도 열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4월 한미 핵협의그룹을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선언 후에도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비슷한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공급망에 대한 정보 공유와 함께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등 구체적인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 발표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수출통제 논의에 적극 참여 중"이라며 "앞으로도 수출통제 제도 운영과 관련해 주요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미래 성장동력이 될 AI, 퀀텀, 우주 등 핵심 신흥기술 분야에서 공동연구 및 협력을 진행하고 글로벌 표준 형성을 위해 (3국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미일 협력…'중국' 언급 빠진 이유


큰 틀에서 볼 때 앞서 소개한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발언이나 일본 언론의 보도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내용이나 취지 상 3국 공조 대상에 중국 견제가 들어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 유독 미국 측 발언에서 '중국'이란 표현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저만 이상하게 느낀 건 아니었던지, 미 국무부 브리핑 중 한 기자도 '이번 정상회의 주제 중 하나는 중국 위협에 대한 게 될 거라는 걸 블링컨 장관이 명확히 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존 커비 조정관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계획을 발표할 것이며 경제, 외교, 안보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될 것이라면서도 "이는 중국에 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공급망 논의 자체가 중국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임을 생각하면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굳이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참여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가 중국과 갖는 특수관계를 고려한 걸로 보입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

AFP통신은 당국자들을 인용해 한국이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에 유보적 태도를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고 북한 문제에서 협조가 절실한 우리나라의 사정상 중국을 공개 압박하는 데 이름을 올리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상으로 보면 한미일 3국 공조가 중국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중국이 이번 정상회의에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과거 사드 보복 때와 같은 명시적 압박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은 최근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을 다시 허용했습니다. 물론 미국, 일본 등 세계 78개국에 대한 단체여행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시킨 것이지만 지난 2017년 3월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이후 6년 5개월 동안이나 보복조치를 당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

중국은 연일 한미일 밀착에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발언 강도도 높습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베팅' 발언만 생각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진 않고 있습니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한미일 밀착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단체관광 허용 같은 조치를 한중 관계 복원에 공들였던 문재인 정부 때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중국에게 잘해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신뢰입니다. G2로 불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도 미국과 달리 (북한이 있긴 합니다만) 이렇다 할 동맹국을 갖고 있지 못한 중국 입장에서는 한 번쯤 찬찬히 따져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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