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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북적북적]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90: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이야기
2021년 1월, 수술을 받은 직후 "저는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발표했습니다. '암과 싸운다'가 아닌 '암과 살아간다'는 표현을 택한 것은 마음 한구석에 무리하게 싸워본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中

'암과 살아가게 되었지만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는 사카모토 류이치. (영어식 이름 '류이치 사카모토'로 많이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일본식 원래 이름대로 사카모토 류이치로 쓰겠습니다.) 2021년의 이 발표는 직장암이 간과 폐로 전이돼 대장을 30센티미터나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이후에 나왔다.

사카모로 류이치는 우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 같은 연주곡, 혹은 영화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은 작곡가, 또는 우리나라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도 만든 사람 정도로 알고 계신 분도 계실 테다. 때때로 '내 인생의 음악가'로 오랜 시간 모든 음반을 챙겨 들으며 흠모해온 분들도 많을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1952년 1월 17일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1978년 데뷔했다. 데뷔한 그 해에 YMA(Yellow Magic Orchestra)라는 3인조 그룹을 결성해 83년까지 활동했다. 올해 1월 마지막 앨범 '12'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여러 앨범을 냈고 영화 쪽에서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이후 '남한산성', '레버넌트'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을 실험적인 작품을 비롯해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원전 반대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삼림보전단체인 '모어 트리스'를 창설하기도 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어린이 음악재생기금', '도호쿠 유스오케스트라'를 주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올해 3월 28일,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카모토 류이치는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 보는' 것 말고도 자신의 삶 후반부를 글로도 정리해 두었다. 문예지 '신초'에 연재됐던 그 글을 모은 책이 한국어로도 번역돼 나왔다. 제목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황국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에서 원작자인 폴 볼스(Paul Bowles)가 하는 말에서 따왔다. 영화 속 볼스의 말은 이러하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中

사카모토 류이치가 직장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20년 6월이다. ('이대로 두면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은 날, 사카모토 류이치는 솔로 연주의 온라인 생중계를 하루 앞두고 있었다. 이 연주 이야기는 <북적북적>에서 낭독하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직장암을 진단받기 6년 전인 2014년에는 중인두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았는데, 그가 스스로의 유한성,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음악에 있어서도 '오선지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쪽으로 더욱 더 움직이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니 슬프거나 우울할까 걱정된다면, 걱정을 내려놓으셔도 된다. 이 책에는 죽음을 대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담담한 자세, 음악가로서 해왔던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다.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그들과의 협업도 인상적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탐구 정신에서는 르네상스맨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겨온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한 한 사람이 자신의 남은 생명력을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저는 어느 시기부터인가 제 사회적 활동에 "이름을 판다"라는 야유를 듣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단순히 이름을 파는 게 목적이라면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하겠어?'라며 욕을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된 계기는 20세기 말, U2의 보노를 중심으로 펼쳐진 아프리카 최빈국의 대외 채무 탕감 운동인 '주빌리 2000'(Jubilee 2000)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브라이언 이노로부터 "너도 일본의 대표가 되어줘"라는 부탁을 받아 사회적 발언은 삼간다는 그때까지의 방침을 완전히 뒤엎고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중략)…

저는 그 날 이후 '만약 내가 정말 유명해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설령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환경에 관한 운동도, 지진 재해 후 활동도 이런 신념의 힘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번 연결되면 쉽게는 그만둘 수 없죠.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中

오늘<북적북적>에서 낭독하는 부분은 이 책의 매우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은, 글에 등장하는 음악을 찾아 찬찬히 들으면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독자마다 나이나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편집: 강소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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