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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주지훈의 혹독한 자기반성…"선배들의 공짜 가르침, 배워야죠"

주지훈

"제 영화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웃기지만 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동안은 거짓말도 좀 있었지만 이건 진짜예요"

배우 주지훈은 영화 '비공식작전'의 개봉을 앞두고 흥행에 대한 적잖은 부담감과 긴장감을 보였다. 예전 같지 않은 시장 상황과 인상된 티켓값, 그리고 관객의 달라진 영화 관람 패턴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더욱이 '비공식작전'이 개봉한 8월 2일은 '더 문'이 개봉해 이른바 '신과함께' 대전을 앞두고 있었다. '더 문'을 만든 김용화 감독과 '비공식작전'의 주연 배우 하정우, 주지훈은 불과 5년 전 '신과함께'로 여름 극장을 뜨겁게 달군 주역이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라이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 영화계지만 한 날 한 시에 경쟁자로 서는 현실은 가혹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주지훈과 하정우는 늘 그러했듯 상업영화의 얼굴이 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지훈은 김용화 감독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모두 잘 되자"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고 전했다.

비공식

'비공식작전'은 레바논 베이루트에 피랍된 동료 외교관을 구하러 간 외교관 민준(하정우 분)과 베이루트 내 유일한 한국인이자 택시기사인 판수(주지훈 분)가 우연히 만나 함께 작전을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중동의 여러 나라를 거쳐 레바논 베이루트에 정착한 판수는 택시 기사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약 30분 뒤에 등장하는 판수는 관객 입장에서 다소 들떠있는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다. 민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빌드업이 덜된 까닭에 행동의 동기가 약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찍어놓은 몇몇 장면이 편집돼 판수의 캐릭터성이 민준에 비해서는 풍성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주지훈 역시 관객의 이런 평가와 반응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나무보다 숲을 보는 태도로 감독이 그려놓은 영화의 디자인 안에서 충실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놓친 1mm에 대한 반성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 저는 이 영화가 두 명의 버디무비 캐릭터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깨달았어요. 애초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집필해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정해놓으면 그 인물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 이야기는 화자가 민준이에요. 판수가 아무리 열심히 캐릭터 연기를 해도 도드라질 수가 없죠. 오히려 제가 눈에 띄면 이 영화가 잘못된 거예요. 제가 이걸 좀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영화를 보면서도 '연기를 이렇게 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던 거 같아요. 앞으로 작품을 보고 감독을 만났을 때 기획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영화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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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는 베이루트로 들어온 민준과 만나며 비공식작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판수와 판수의 택시는 작전의 큰 조력자 역할을 한다. 후반부 등장하는 18분간의 카체이싱은 이 영화의 백미다. 주지훈은 대부분의 카체이싱 장면을 직접 운전하며 영화의 박진감을 책임졌다.

"카체이싱이 어려워서 그렇지 위험하지는 않아요. 3개월간 3개 도시에서 총 21회 차를 찍었어요. '신과함께'처럼 VFX가 많이 들어가서 재밌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실제로 찍어서 재밌는 영화가 있어요. 우리 영화는 후자죠. 저와 배우들은 크게 한 게 없어요. 카체이싱 장면에서 김성훈 감독의 연출력을 새삼 느꼈어요. 판수의 차가 페라리나 포르쉐도 아니고 1981년 산 낡은 벤츠예요. 이 낡은 차를 가지고, 요원도 아닌 일반인이 좁은 골목을 추격을 피해 헤쳐나가요. 판수나 민준이 느끼는 건 공포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인데 김성훈 감독은 그걸 가지고 쫓는 자의 다급함, 쫓기는 자의 공포심, 보는 관객의 쾌감을 모두 디자인하고 예상해서 찍어낸 겁니다"

극한의 상황을 설정해 운전한 탓에 쉽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주지훈은 "아스팔트가 아니다 보니 차가 계속 밀렸어요. 드리프트 하는 장면은 약속된 게 아니라 실제로 밀린 거예요. 카메라 워킹 등 기술이 받쳐준다 해도 20km로 달리면 그 쾌감을 살리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진짜 밟아야 했어요. 뒤에 탄 (하)정우형이 연신 비명을 질렀지만 제 입장에서는 미리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가 빠르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밟았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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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과 하정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화 버디'다.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 이후 5년 만의 호흡이지만 관객들에게 두 사람의 앙상블은 낯설지 않다. 영화로 시작된 인연이 사적 친분으로까지 이어진 걸 대중들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만나는데 작품을 하니 하정우의 뛰어남을 새삼 알게 된 것 같아요. 매 작품마다 정우 형만의 빛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만의 독특한 해석과 표현력이랄까요. '와, 이걸 저렇게 한다고?'와 같은 놀라움과 함께 새로운 걸 배우게 돼요. 상대의 액션을 통해 제 리액션도 나오는 거니까요. 이번 영화도 그런 선물 같은 순간이 많았어요. 이를테면 현장에서 예상치 않게 변수들이 생기는데 정우 형과 저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고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아니까 순발력으로 극복되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감독님도 틀렸다고 뭐라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았다고 해주시는 그런 과정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 혼자 빛나기보다는 같이 빛나는 작품을 많이 하는 것 같다"라는 말에 주지훈은 "배우는 기본적으로 선택당하는 직업이에요. 원톱을 했던 작품과 멀티캐스팅으로 나선 작품이 있는데 전자는 잘되고 후자가 안되면 전자의 경우만 들어오겠죠. 그건 받아들이는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비공식작전'은 버디 무비지만 6개월 전에 개봉했던 '젠틀맨'의 경우 원톱 주연작이었어요. 전 지금 굉장히 만족해요. 꾸준히 공중파 드라마, OTT, 영화를 두루 하면서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지훈

올해 주지훈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하이틴 드라마 '궁'(2005)으로 데뷔해 스타가 된 주지훈은 30대에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필모그래피를 차근히 쌓아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40대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주지훈에겐 연기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따로 배운 것도 아니지만 타고난 본능과 감각은 경험과 만나 무르익었다. 20대에 '마왕', 30대에 '좋은 친구들', '아수라'와 같은 작품에서 야누스적 매력과 폭발적인 연기력을 발휘하며 '스타'에서 '배우'로 점프업 했다. 40대가 된 지금은 송강호, 최민식, 김윤석과 같은 대선배의 행보를 바라보며 범위와 깊이를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간 주지훈'도 무르익어 가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20~30대의 주지훈은 지금과는 달랐다. 무대 위에서 완벽한 피사체로 존재해 온 모델 출신의 배우인 데다, 벼락스타로 출발해서일까. 그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단단한 벽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 10년 전의 인상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의 주지훈은 그때의 주지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누구보다 친근하고 낮은 자세로 기자들과 눈을 맞추며 수다에 가까운 대화를 펼친다.

비단 언론을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다. 그는 대중에게도 신비주의를 벗고 '친근한 오빠이자 형'과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며 '스타 주지훈'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에게 이러한 변화를 이끈 원동력을 물었다.

"진심으로 저는 지금의 제가 너무 좋아요. 이건 다 친한 형들에게 배운 거예요. 당근과 채찍이 있다면, 저는 당근에 잘 바뀌는 인간이에요. 저는 배우를 꿈꾼 적이 없었는데 드라마 '궁'을 찍고 나서 하루아침에 스타 소리를 듣게 됐어요. 8개월 동안 드라마를 찍고, TV를 통해 제 인기를 실감하긴 했지만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걸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전 그러지 못했어요. 모델을 하다가 25살에 배우 데뷔를 했고, 그렇게 몇 년을 보냈어요. 혼자만 있던 회사에 소속돼 있다 보니 또래나 선배 배우들과도 교류가 없었어요. 친하게 지나거나 고민을 상담할 사람이 없었죠. 웃픈 에피소드 하나 알려드릴까요? 청룡영화제에 처음 참석했는데, 리셉션 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저 멀리서 안성기 선배님이 걸어오시길래 인사하려고 다가갔는데 그 사이에 앞서 있던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하는 거예요. 뻘쭘해진 저는 발길을 돌렸죠. 그런 식으로 10분간 서성이면서 선배들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민망해져서 화장실에 갔어요. 변기에 앉아 시상식이 시작될 때까지 40분을 기다렸어요. 모델 출신이다 보니 어디를 가도 캣워크라 생각하며 당당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얼어 있었던 거죠"

주지훈

태도나 가치관의 변화가 생긴 건 '아수라'를 통해 정우성을 만나면서부터라고 했다.

"'아수라' 개봉을 앞두고 배우들이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같이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정)우성이 형이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팬서비스를 해주는 거예요.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게 싫었던 우성 형은 장시간에 걸쳐 팬들과 소통했어요. 오죽하면 김성수 감독님이 '가서 정우성 좀 잡아와!' 할 정도로 긴 시간을요. 행사가 끝나고 술자리에서 우성 형에게 여쭤봤죠. '사람인데 어떻게 그래요?'라고 물으니 '고맙잖아'라고 하더라고요. 배우가 팬에게 팬서비스를 해준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제 안의 고마움이 터져서 나오는 행동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형들에게 태도와 자세를 배워요. 그러면서 나도 좀 더 라이트 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말을 듣고 "지훈 씨는 되게 유연한 사람이네요"라고 반응하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윤석이 형이나 (정)우성이형, (하)정우형이 몇십 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공짜로 주는데 그걸 왜 거부해요. 그 귀한 걸 안 받을 이유가 없죠.(웃음) 물론 제가 모방하고 모창한다 해도 생긴 게 다르고 스타일이 달라서 그 사람처럼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아요. 어차피 다른 삶이라서요. 그렇지만 제게 이렇게 좋은 걸 주는데 기쁘게 배워야죠"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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