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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멀티태스킹 그만하세요. 정말이에요. 당장 멈추세요.

[뉴욕타임스 칼럼] Stop Multitasking. No, Really ― Just Stop It., By Oliver Burkeman

스프 NYT 뉴욕타임스 (멀티태스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올리버 버크만은 책 "4,000주: 인간을 위한 시간 관리(Four Thousand Weeks: Time Management for Mortals.)"를 썼다.
 

몇 달 전 나는 삶이 주는 수많은 책임감에 압도당하기 직전이었다. 2020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이 본질적으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이 더해졌다.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고, 어쩌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는 고도의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 개인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위기에 빠졌을 때 혹독한 철인 3종을 하거나 모든 걸 훌훌 떨쳐내고 명상만 하는 집중 명상 수련을 떠난다. 내가 선택한 도전은 조금 달랐다. 달리기를 하거나 운전하거나 식기 세척기에 음식 접시를 차곡차곡 넣을 때, 또는 다른 어떤 일이든 할 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하지 않기로 한 거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춘 건데, 다시 말해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무엇이든 한 번에 하나씩만 집중해서 하기로 했다.

멀티태스킹하지 않기는 의외로 힘들었다. 거창한 도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잔뜩 뜸을 들이더니, 고작 '멀티태스킹 안 하기' 정도냐며 나를 비웃으실 분들 꽤 계실 거다. 그런 분들께 드리고픈 말은 딱 하나다. 비웃는 건 좋은데, 꼭 한 번 나처럼 해보시라. 지금 무얼 하든 하고 있는 그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내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그걸 치워놓고 일주일이나 이주일 지내보시라.

아마 당신은 나와 같은 깨달음에 이르실 거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데 상당히 중독돼 있다. 한 번에 하나씩만 집중해서 하고, 하나를 끝내고 나서야 그다음 할 일을 하는 건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닌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맞춰 사는 거다. 이렇게 뭐든 하나씩 집중해서 하는 능력이야말로 어쩌면 지금처럼 모든 게 불확실하고 갖은 위기가 도사린 것 같은 미래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서둘러 회복해야 할 능력일지도 모른다.

멀티태스킹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니체는 무려 1887년에 "한 손에 시계를 든 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불평했다. 그는 또 "심지어 점심을 먹으면서 주식시장에 관한 최신 뉴스를 읽는 사람도 있다"고 개탄했다. 우리는 또한, 멀티태스킹이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아마 당신은 인간의 뇌 구조로는 제대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을 거다. 아마 그 기사를 읽는 중에도 TV를 틀어놓았든 다른 무언가를 동시에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여기저기 다른 데 초점을 맞추고 집중할 뿐 여러 가지에 동시에 집중할 수 없다. 그렇게 초점의 대상을 바꿀 때마다 집중력은 흐트러진다.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전화 통화를 하는 등 다른 과제를 수행하면서 운전하게 했더니, 운전만 할 때처럼 운전에 집중할 수 있던 사람은 2.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둘 다 제대로 못 해 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직장에서 내게 쏟아지는 수많은 업무, 과제, 요구를 처리하려면 여러 가지에 주의를 적절히 나눠 주지 않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개인적인 문제 말고도 신경 쓸 게 좀 많은 세상인가. 기후변화, 민주주의의 숙명, 인공지능의 위협, 핵전쟁 위험 등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이를 해결하려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척척 해낼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졌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 이전 세대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거다. 즉, 하기 싫은 과제를 억지로 하다가 소셜미디어를 열고 한참 동안 딴짓을 할 수 없던 시절, 또 우편이 오가는 데 한참 걸리거나 연구하려고 자료를 찾으려면 도서관 서고나 간행물실을 온종일 뒤져야 하는 등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의 제약 때문에 뭘 하든 시간이 한참 걸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는 직장 상사든 고객이든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주의를 집중해서 일을 빨리, 정확히 처리해 달라는 식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려는 충동 또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이어 온 투쟁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이해했다.

예를 들어 힌두교 신비주의자 파탄잘리는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것을 요가 수행의 핵심으로 여겼다. 한 가지에 오롯이 집중하는 게 2천 년 전 사람들에게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도의 생산성에 관해 쓴 조던 레이너는 인간이 한 번에 한 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는 언제 어디에나 여러 군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신의 전능함에 대비되는 것으로,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의 유한함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이 지구에 머무르는 시간이 평균 4천 주가 조금 넘는다고 말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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