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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폭염 속 일하다 쓰러진 서른 살 청년…'다음 동호'가 나오지 않으려면

[더 스피커] 폭염에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여러분, 요즘 무탈하신가요? 하늘이 야속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네요. 이렇게 더운 날, 대형 마트는 제게 최고의 피서지였어요. 약간의 물건을 사면 두 팔이 서늘할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몇 시간이고 쐴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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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더위가 찾아왔던 초여름,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쓰러진 뒤 숨진 동호 씨에게 그래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차 카트 관리직이었던 서른 살 동호 씨의 휴대전화에는 하루 3~4만 보를 걸었던 기록이 남아있었어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매일 하프마라톤보다 긴 거리를 철제 카트를 밀면서 걸어 다녔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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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서 확인된 동호 씨의 마지막은 물건 포장용 상자를 들고 주차장 구석으로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유족은 동호 씨가 숨진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사측으로부터 명확한 입장이나 사과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이 상자'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던 동생의 마지막 모습

동호 씨에겐 3시간당 15분의 휴게 시간이 주어졌지만, 유족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동호 씨는 동료에게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라며 고된 강도를 짐작게 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사고 당일 오후에도 몸에 이상을 느꼈지만, 본인이 빠지면 다른 동료에게 일이 몰릴까 봐 참고 일하다 쓰러졌습니다.

휴게 시간 자체도 부족했지만 일하는 직원도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지점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직원들이 '이러다 사고가 난다'며 회사 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외면해왔다는 게 동료들의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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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씨의 사인은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인한 폐색전증'입니다. 30살 청년에게 폐색전증은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 아닙니다.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철인 3종 경기나 레슬링 선수처럼 고강도 지구력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좁은 혈관을 막는 색전이 발생한다는 의학적 보고가 있다"면서 "김 씨가 33도가 넘는 폭염 속, 적절한 휴식이나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력을 쓰는 노동을 계속했다는 것은 운동선수들과 같은 정도 수준의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하는 내내, 동호 씨의 죽음을 정말 막을 수 없었나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용 절감' 이유로 에어컨 끄는 공장…쓰러지는 하청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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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폭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위 그 자체도 사람 목숨에 위협적이지만 노동자의 건강권을 경시하는 기업의 태도는 위험을 배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볼까요.

지난달 충남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선 30대 하청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이었지만, 사측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특정 온도가 되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입니다.

5성급 호텔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익명의 제보자는 "하루 2만 보가량 걸으며 지하에서 일하는데 에어컨도 없이 모자와 장갑까지 끼고 일해야 한다. 땀띠에 살이 문드러진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폭염을 오롯이 견디며 일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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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소리 없이 숱한 목숨을 앗아갑니다. 자연재난 중에 태풍이나 호우 등을 다 합친 것보다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폭염 일수가 점점 길어지는 추세인 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습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이번 폭염을 '살인적 폭염'으로 규정하면서 〈근로자 건강 보호 특별 대응지침〉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물과 그늘, 휴식 등 3대 온열질환 예방수칙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이행하도록 강조하고 있죠. 하지만 이마저도 의무가 아닌 권고에 그칩니다. 폭염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작업 중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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