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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블더] 무차별 범죄 일본만큼 '심각'…"20년 쌓여 온 결과"

'도리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 말로 '길거리의 악마'라는 뜻입니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길거리 무차별 살해 범죄가 자주 일어나면서 이런 말이 흔히 쓰였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충격적인 무차별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모습이죠.

어제(3일)는 분당 서현역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는데, 15년 전에, 매우 흡사한 사건이 일본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아키하바라 사건입니다.

6월의 더운 날, 인파로 붐비던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 밀집 지역, 20대 남자가 2톤 트럭을 몰고 교차로를 건너던 행인들에게 돌진했습니다.

이 남자는 5명을 친 뒤에, 곧바로 차에서 내려 흉기까지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7명이 숨지고, 1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25살 가토 토모히로, "승자는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특별한 동기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무차별 범죄 사례입니다.

[곽대경/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 (사건 양상이) 나타난 외형은 좀 비슷한 거 아니냐, 이제 이렇게 볼 수는 있는 거고. 제일 중요한 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이제 사전에 면식 관계가 아니고, 어떤 별다른 우리가 보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이 하는 거거든요. 피해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무차별적이다. 그래서 이제 그걸 강조해 가지고 무차별 범죄 이렇게 이제 이야기하는데.]

같은 해 10월에도 오사카에서 실직한 40대 남성이 "사는 게 싫다"며, 별다른 이유 없이 DVD방에 불을 질러서 16명이 숨졌습니다.

지난 2019년 도쿄에서는 50대 남성이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초등학생 등 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8월에는, 한 30대 남성이 도쿄 전철 안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방화를 시도해 10여 명이 다쳤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여성을 노렸으며, 많은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최근에도 30대 남성이 이유 없이 전철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서 3명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지난 10년간 이런 무차별 범죄가 70건이나 발생해서 25명이 사망했습니다.

일본 경찰은 사회적 고립, 불공정에 대한 원망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을 원인의 하나로 분석했는데요.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가 당시 일본 사회와 구조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양기호/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 청년들이 좀 장기 실업이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좀 불안정성, 전체 국민들의 어떤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든지, 비전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점은 일본하고 한국하고 일치되는 측면이 있죠. 우리 사회도 보면, 이제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좀 억압돼 있거나, 아니면 이제 이런 인터넷 같은 데서 과도하게 상대방에 대해서 공격하거나. 한국하고 일본하고 똑같은 상황이라고 볼 순 없지만 나름대로 이제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범죄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5년간 벌어진 살인 중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매년 30%를 넘기며 범행 동기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테러와 같은 수준의 무차별 범죄를 막기 위한 대응이 시급한데, 대책은 걸음마 수준입니다.

지난해가 돼서야 이런 무차별 범죄 유형을 '이상동기 범죄'라고 규정했고, 체계적인 사례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담당하기 위한 TF가 마련된 수준입니다.

[승재현/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금 나와 있는 이 범죄가 오늘 만들어진 범죄가 아니라 이 사회에 20년 동안 축적되어 있는 모순에서 만들어지는 범죄라고 보시면 돼요. 우리 사회가 '묻지마 범죄'라고 이야기를 한 게 한 20년 되거든요. 그 순간부터 형사 정책은 없죠. 여기에 대해서 무슨 형사 정책이 있어요. '묻지마 범죄'인데, 원인이 없는데, 원인이 없는 범죄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형사 정책을 만들어요. 그렇게 20년 동안 이야기 하다 보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고,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그 범죄가 나타나는 현상만 바라보면 똑같을 수 있지만 그 범죄 뒤에 숨어 있는 원인은 전혀 다를 수가 있어요.]

당국이 서둘러서 한국형 무차별 범죄에 대한 분석부터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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