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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틀 'KDDX 기밀유출'과 '19년 9월'의 개정…해법은? [취재파일]

다시 꿈틀 'KDDX 기밀유출'과 '19년 9월'의 개정…해법은? [취재파일]
▲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전시회에 설치된 HD현대중공업 부스

지난달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호위함 FFX 울산급 배치(batch)-Ⅲ 5·6번함 건조사업을 따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HD현대중공업이 격하게 반발하는 중입니다. "기술력이 뛰어남에도 과거 한국형 차기 구축함 KDDX 기밀유출 사건의 과도한 보안 감점에 따른 불합리한 판정"이라는 것이 HD현대중공업 측의 주장입니다.

일부 경제 전문지와 보수 매체들이 은근히 HD현대중공업의 편을 드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정부의 보안 감점 규정이 오락가락해서 기술이 우수한 HD현대중공업이 불이익 당한다는 여론도 일어나는 분위기입니다.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2019년 방사청의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의 개정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찾아 수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HD현대중공업의 KDDX 기밀유출 범행이 발각되고, 1년 반 뒤인 2019년 9월 방사청은 기밀유출 등 보안 사고의 감점을 제안서 평가에 소극적으로 반영되도록 평가업무 지침을 개정했고, HD현대중공업은 개정 덕에 KDDX 기밀유출 범행에도 감점 없이 KDDX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한 과정에 경찰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업체가 큰 도둑질 하다 들키니까, 방사청은 도둑질 처벌 조항 약화시켰고, 덕분에 업체는 활개를 친 꼴이라 경찰이 충분히 의심할만합니다. HD현대중공업이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사업에서 패했다고 앓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이유도 또 한번 분명해졌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7조 원 대 KDDX 사업을 훔쳤고, 저지른 죄에 비해 약소한 벌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 것 같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의 평가업무 지침 개정

지난 6월 공개된 HD현대중공업의 KDDX 모형

KDDX 사업은 2024년부터 스텔스 성능까지 갖춘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것으로 7조 원 대 규모입니다. 함 설계의 기초인 개념설계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맡았습니다. 본격 설계인 기본설계와 선도함 건조도 대우조선해양의 몫이 유력했습니다.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이 최악의 강수를 뒀습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2013년 초부터 해군본부 함정기술처를 여러 차례 방문해 KDDX 개념설계 등 기밀들을 무더기로 훔친 것입니다. 해군의 한 장교가 면담 장소에 기밀들을 갖다 놓고 자리를 비우면 동영상으로 찍어 가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범행은 2018년 4월 기무사(현 방첩사)의 불시 보안 감사에 적발됐습니다.

기무사는 KDDX 관련 비밀 2건, 차기 잠수함 장보고-Ⅲ 비밀 1건, 다목적 훈련 지원정 비밀 1건, 훈련함 비밀 1건 등 기밀 절도 26건을 식별하고 HD현대중공업 직원 12명, 장교 3명 등 25명을 울산지검에 송치했습니다.

재판과 수사가 한창이던 2019년 9월 9일 방사청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을 개정했습니다. 기무사의 기밀유출 통보시 보안 감점 조항을 삭제한 것입니다. 초대형 기밀유출 사고를 내도 무사통과하도록 길을 열어준 셈입니다. 그래서 HD현대중공업은 총점 100점 중 0.056점 차이로 대우조선해양을 따돌리고 KDDX 기본설계 사업을 가져갔습니다.
 

왜 그때 평가업무 지침 개정했나…해법은?

비고의성 실수의 단순 보안 사고라면 또 몰라도, 기밀유출 같은 대형 보안 사고는 반드시 처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 방사청은 최소한의 처벌인 감점 조항을 삭제했을까요. 또 일련의 사건을 늘어놓으면 HD현대중공업의 KDDX 기밀유출 범행, 수사·재판 개시, 평가업무 지침 개정, HD현대중공업의 사업 수주의 순서입니다. 개정의 시점이 절묘합니다. 왜 그때 개정했을까요.

방사청은 "국민권익위의 제도 개선 의결을 참고해 감점 기준을 개정했다"는 입장입니다. 권익위의 의결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기밀유출에 면죄부 주는 의결을 했을 리 만무합니다. 무엇보다 당시 방사청은 "기밀을 훔쳤을 뿐 활용하지는 않았다"는 황당한 논리로 HD현대중공업을 비호했습니다. 경찰도 이 점에 착안해 청장, 차장, 사업본부장, 계약본부장 등 당시 방사청 고위직의 역할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D현대중공업 직원 8명은 KDDX 기밀유출 범행으로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1명은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HD현대중공업의 중대 범죄는 확고하게 인정됐습니다. KDDX 기밀유출에 이어 총기류 전문업체 다산기공의 기밀유출 사건이 터지자 방사청은 깜짝 놀라 보안 사고 감점 규정을 다시 강화했습니다. 그래서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사업에서 쓴 맛을 봤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해 KDDX 기밀유출 판결문의 열람을 금지토록 조치했습니다. 판결문에는 훔친 기밀이 KDDX 기본설계에 활용됐다는 정황이 적시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즉 "훔쳤지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방사청의 희망을 무력화하고, KDDX 사업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취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사업 탈락에 억울함을 토로할 처지가 아닙니다.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판결문 공개해서 KDDX 사업 뱉어내고, 훔친 기밀들 알뜰하게 활용한 죄에 대해 방산업체 지정 취소 등 추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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