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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선수인생 걸린 대회장 찾아온 스승, 슥 건넨 종이 (끝까지판다 풀영상)

"자발적으로 낸 걸로 해라"…'입막음 시도' 정황<br />후배에게 쓴다더니 아시안게임 조정관에 뭉칫돈

<앵커>

한국체대 출신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입단하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간다는 소식 어제(1일) 전해드렸습니다. 보도 이후 한체대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는데,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끝까지판다'팀의 단독 보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선수들한테 받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저희가 취재한 내용부터 보시겠습니다.

고정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한체대 체조부 출신 선수들이 체조부 조교 요청을 받고 실업팀 입단 계약금 중 10%가량을 입금한 계좌 내역입니다.

2013년 조교의 지시로 당시 체조부 신입생 B 씨가 개설한 것인데, 2014년 11월 하루 간격을 두고 500만 원과 300만 원이 C 씨에게 송금됩니다.

계좌 주인인 B 씨는 C 씨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이분(C 씨)은 누군지 모르겠어요. 몰라요 이분한테 800만 원이 갔네요.]

계좌 개설을 지시했던 당시 조교도 알 수 없는 송금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체대 조교/계좌 관리 : 제가 보냈다는 거죠? 그 시기에요? 제가 있었던 시기에요? 계좌 이체한 내역이 그 큰 금액은… 모르겠어요.]

취재 결과 C 씨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체조 종목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준비하는 조정관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확인됐습니다.

아시안게임 폐막 한 달 뒤쯤 800만 원을 송금받았던 C 씨, SBS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문제의 돈은 아시안게임과는 무관하며 한체대 동문인 체조부 A 교수에게 빌린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조협회 임원이자 체조계에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A 교수는 졸업생들이 부적절한 송금의 배후로 지목한 바로 그 인물입니다.

[C 씨 : 개인 사정으로 조금 어려워서 A 교수한테 돈을 제가 좀 빌렸어요. 개인적으로. 조금 지난 다음에 (A 교수가) "그게 동문회 계좌에 있는 돈을 좀 보냈다"라고 "그래서 입금을 좀 시켜줘야 될 것 같다" (라고 하더라고요.)]

C 씨는 돈을 빌리고 7, 8개월 뒤 A 교수가 불러준 계좌로 800만 원을 되돌려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끝까지판다'팀이 C 씨를 접촉하기 전 만났던 A 교수는 해당 계좌의 돈은 재학생을 위해 쓴 것이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C 씨 접촉 전) : 그걸 받아서 제가 제 주머니에 넣고 쓰겠습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관리했고, 조교 선생들이 관리하는 거지.]

다시 찾아가 C 씨에게 빌려준 돈이 사적 유용 아니냐고 물었더니 A 교수는 "조교에게 부탁해 C 씨에게 (800만 원을) 빌려줬고, (계약금 10%는) 재학생을 위한 금원은 맞지만 곧 갚는다는 말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송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 (횡령이 될 수 있다는) 법적인 지식이 있었다면 안 했을 겁니다. (어려운 법적인 지식이 아니라 남의 통장에 있는 돈을…?) 남의 통장이 아니죠. 어떻게 그게 남의 통장입니까? 우리 부가 쓰는 공금이잖아요.]

취재진이 해당 계좌를 확인한 결과 C 씨가 빌린 돈을 갚은 내역은 없었습니다.

A 교수와 C 씨 모두 재입금 내역을 보내달라는 취재진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오영택, CG : 이준호,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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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런데 저희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한국체대 체조부의 지도자들이 제자들에게 '돈을 좀 자발적으로 낸 걸로 해달라' 이런 내용의 동의서를 써달라고 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선수들이 그동안 노력한 것을 모두 쏟아내야 하는 정말 중요한 대회장까지 찾아가서 이런 동의서를 써달라고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어서 유수환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이 이번 사건 취재에 착수한 뒤 다수 피해자의 증언을 확보했던 지난 6월, 한체대 출신 유명 체조선수 B 씨는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지도자들이 자신이 출전한 대회 시합장에서 '동의서 작성'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한체대 지도자가) 계약금 관련돼서 '너 혹시 동의서 써줄 수 있냐',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자발적으로 낸 거면 좀 써달라고….]

이런 요청을 받은 선수는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시합장에서도 조교 선생님이랑 교수님이 선수들한테 써달라고 했는데, 자발적으로 그걸 냈다고 써달라고 서약서 같은 것을….]

한체대 체조부 지도자들이 일종의 이 '동의서'를 받기 위해 제자 한 명 한 명 접촉했던 이 대회는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최종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 500명 넘는 선수가 참여했던 전국 규모의 주요 대회였습니다.

대회장에서 동의서를 빙자한 일종의 입막음 시도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체조부 측은 '단순 확인 차원'이었다고 말합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 교육부에도 이 문제가 제보가 되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저희도 확인을 해야 돼서…. 사전에 '본인이 자발적이 아니라고 하면 안 써도 된다'라는 내용을 주지시키고, 확인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권력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선수들에게 입단 계약금을 내라고 한 데 이어 이번에는 동의서 작성까지 요청하면서 해명은 꼬이고 비판만 커졌습니다.

지도자들의 이런 행위에 선수들은 두려움까지 느꼈지만,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두려움을 느낀 선수도 있다던데요?) 그렇죠. 이제 (동의서를) 누가 쓰고 누가 안 쓰고, 다 알게 되는 거죠. 안 써준다고 하면 얘는 이쪽(안 써준 쪽)으로 나누어지니까, 그게 좀 부담스러워서….]

후배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이게 자발적으로 낸 게 아니기 때문에, 밑에 후배들한테 똑같이 계속 10% 내라고 하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CG : 서승현, 스트립터 : 김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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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오랜 시간 이어져 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선수들이 학교 측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점을 화강윤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지난 2019년 SBS가 최초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체육계 인권 침해에 대한 직권조사를 벌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체육계의 폐쇄성과 2차 피해 우려, 그리고 절대적인 지도자의 영향력 같은 구조적 원인들이 지적됐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끝까지판다팀이 만난 체조 선수들 입에서도 판박이처럼 드러났습니다.

선수들이 합숙 생활 같은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니 문제 인식도, 문제 제기도 어려웠습니다.

[A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전에 있던 사람들이 (계약금 10%를) 다 내서 저희도 꼭 내야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서요. 그때 당시에는 저희도 좀 어렸던 것 같아요.]

문제를 제기해도 좁은 체육계에서 해결은커녕 되레 2차 피해를 입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잘못된 걸 알고는 있는데 섣불리 누가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죠. 계속 운동을 앞으로 해야 되니까.]

무엇보다 대회 출전부터 앞으로의 인생 진로까지, 지도자 영향력이 절대적이기에 어떤 요구라도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냥 교수 말은 법이었어요. 법이죠. 아무도 달려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안 낸다? 얘는 그러면 아무리 운동 잘해도 그냥 팽 당하는 거죠. 그걸 안 내는 순간 자기 목숨은 끝인데.]

폐쇄적, 수직적인 환경이 대물림되면서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한 채 '자발적 기부'를 강요받아 왔던 것입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조수인·임찬혁,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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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화강윤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자발적 기부' 동의서 걷은 이유는?

[화강윤 기자 : 지도자들이 두려워서 돈을 낸 선수들인데, 그 선수들한테 지도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자발적으로 낸 게 아니에요' 할 수 있을까요? 위계를 이용해서 입단속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또 장소도 상징적입니다. 경기장의 심판들, 그리고 동의서를 걷는 지도자들 모두 좁은 체조계에서 오랫동안 한솥밥 먹어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에서 계약금도 내고 또 동의서도 쓴 것입니다.]

Q. 피해 선수들이 바라는 바는?

[화강윤 기자 : 우선, 어쩔 수 없이 낸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 알고 싶다는 것, 또 후배 대물림은 막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체 조사가 아닌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합니다. 저희 취재 이후에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한체대도 오늘(2일) 이번 사태에 대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는 계약금을 받아 모은 통장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간 돈이 도대체 누구의 지시로 어떻게 쓰였는지 명명백백하게 규명이 돼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피해가 도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이어졌는지 그 규모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Q. 추가 보도는?

[화강윤 기자 : 물론입니다. 끝까지 파야겠죠. 경찰 수사와 한체대의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끝까지 지켜보면서 관련 보도를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또 이번 사건의 원인이 체육계의 구조적 특성에 있는 만큼 이것이 비단 체조계 일만도, 한체대 일만도 아닐 것입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더 많은 선수가 용기를 내서 증언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제보(메일) : pan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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