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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

부모들이 말하는 저출생 해법,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

[취재파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
정부가 올해 안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 도우미 100여 명을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맞벌이, 한부모, 임산부 등이 대상입니다. 시범적으로 해보고 내년에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건데요. 정부와 서울시는 제도 도입 목적을 '저출생' 해소로 내세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는 마음으로 제안한 제도"라고 말하면서 "최악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일부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포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 사업 실시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될 일하는 부모들은 어떤 생각일까요. 이번 시범 사업에 대한 고용노동부 공청회 발언들을 옮깁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저출생 문제의 해법은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라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한국에선 부모 둘이서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버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초미 l 복직 예정 워킹맘
"지금도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고민이 앞섭니다. 504만 원 정도의 평균 소득을 가진 4인 가구가 200만 원 정도 비용을 들여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조차도 200만 원은 부담스러운 돈이거든요. 또 외국인 분들이 (한국 육아 경험 없이) 과연 이론만 가지고 오셨을 때 저희 아이를 잘 돌 볼 수 있을까…"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 사업 실시
김고은 l 쌍둥이 육아 워킹맘
"아이와 관련된 일은 (비용이) 비싸다고 안 쓰고 저렴하다고 쓰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봄은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실 가장 좋은 건 내가 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단축 근무나 유연 근무를 활성화하는 겁니다. 맞벌이가 일하는 회사에 지원금을 준다거나…"
 
김진환 l 5살, 7살 자녀 육아 워킹대디
"결국에는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 게 본질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아내가 교사여서 육아휴직을 3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 양육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육아가 경력단절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저출생 문제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는 아직도 육아와 돌봄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출생률 증가 효과 '?'…돌봄 대상에 미칠 영향 논의는 전무

이 제도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부는 '저출생 해소'를 정책 목표로 내걸면서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역할을 에둘러 설명합니다. '돌봄과 가사노동'이 혼재한 형태인데, 이들 각각 엄연히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정부가 초기에는 가사도우미 도입 목적을 가사와 노인 돌봄, 간병 서비스 등 포괄적으로 언급하다가 점차 '아동 돌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돌봄을 받는 영유아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지,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한국어와 영어 능력을 검증하고, 범죄 이력을 조회하는 것 만으로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거나 농촌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일과 다른 만큼 그 부작용도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이주민에 대한 낮은 수용성과 다른 문화권에 대한 공감 부족도 추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대만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한 아시아 4개국에서 제도 시행 이후 출생률 증가 효과가 없었던 것도 살펴봐야 할 교훈입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 사업 실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사근로자

오세훈 시장이 말한 "저출생 시대, 황무지의 작은 낱알"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미 답은 나와있을지도 모릅니다. 전 세계 출생률 꼴찌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 부모들이 희망하는 건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를 보면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은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양육 서비스나 타인의 도움을 지원받는 것보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노동 시간에 대폭 변화를 지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과 연령, 혼인이나 자녀유무, 소득과 학력과 관계없이 일관됐습니다. 반면 민간 돌보미를 원하는 비율은 0.7%에 불과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의 도입이 "직접 자녀를 돌볼 시간을 늘려달라"는 평범한 시민들의 요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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