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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 늘었다" 따져 보니…

[사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 늘었다" 따져 보니…
교권 침해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학생인권조례' 책임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일부 교육청이 학생들 인권을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를 앞다퉈 제정하다 보니 교권이 되레 추락했다는 겁니다.

포문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열었습니다. 이 부총리는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열린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례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 금지 조항을 지목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교권침해 사실은 이경원

사흘 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 주장대로,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 사례가 늘어난 것일까요.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후 교권 침해 현황을 비교했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검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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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제정 전후 교권 침해 사례 변화는?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교육 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를 뜻합니다. 2010년 10월 5일 경기도교육청이 가장 먼저 공포한 이후, 2012년 1월 광주시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 2013년 7월 전라북도교육청, 2020년 7월 충청남도교육청, 2021년 1월 제주도교육청, 이렇게 6개 지역에서 공포해 시행 중입니다.

이들 6개 지역을 기준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후의 교권 침해 사례 데이터를 비교했습니다. 교육부가 작성하는 '교권 침해 현황'을 통해 수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교육부가 국회 등에 제출한 자료들을 종합해 사실은팀이 자체 분석했습니다. 각 자료 별로 수치에 차이가 없어서 단일 자료로 종합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사실은팀이 정리한 연도별 전국 교권 침해 현황입니다. 2009년부터 데이터 분석이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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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침해 사례는 2012년 최고점을 찍은 뒤 이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코로나 비대면 수업 때는 감소 폭이 컸는데, 최근 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대면 수업 이후 교권 침해 사례 증가가 피부로 와닿을 것 같습니다.

이제 지역별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후 교권 침해 현황을 비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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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2012년 제정 당시 교권 침해 사례가 가장 높았는데, 이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반면, 경기도는 2010년 제정 이후 폭증한 걸로 나왔습니다. 광주는 2012년 제정 이후 감소, 충청남도는 2020년 제정 이후 증가 추세였습니다. 지역 별로 학생인권조례의 영향을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정확한 수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증가율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6개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년도 대비 제정 이듬해 교권 침해 증가율을, 같은 기간 전국의 증가율과 비교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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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경기도, 충청남도, 제주도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년도 대비 제정 이듬해 교권 침해 증가율이 전국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교권 침해 사례가 가장 많았던 서울의 경우 0.1%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전국은 15.6% 증가했습니다. 전라북도는 전국과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위 데이터만으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교권 침해 사례 사이의 일관된 경향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정부는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제하고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일 텐데, 사실은팀 분석으로는 인과 관계는 물론 '상관관계'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위 데이터는 교사가 직접 보고한 경우를 집계한 것으로, 일상 속에 있는 세세한 교권 침해 사례들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많은 교사 분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권 침해 사례가 생겨도 묵묵히 참아낼 때가 많습니다. 사실은팀 역시 이런 분석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통해 정책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근거가 전제돼 있어야 합니다. 근거를 입증할 책임, 물론 정부에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데이터상으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이초 곳곳에 마련된 추모공간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망 여교사를 위한 추모 공간.
 

학생인권조례 남용 사례는?

정부는 학생인권조례가 어떻게 남용되고 있는지 구체적 사례로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례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례 개정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24일 교육부는 긴급 브리핑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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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팀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살펴보니, 실제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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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서 이를 남용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위 규정은 법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법 해석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헌법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헌법 제11조 :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7조 :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만일 어떤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칭찬 카드를 받지 못한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어떤 학생이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상 사생활 보호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헌법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주장은 헌법의 문장 하나하나를 곧이곧대로 보고, 법 조문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로 봐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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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에는 교사를 비롯해 타인의 인권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책무, 학교 규범 준수 의무, 휴대전화 사용 제한 절차와 같은 규정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인권조례의 특정 문구를 있는 그대로 볼 게 아니라, 여러 조항들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를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세한 행동을 규정하는 대목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교육부가 제시한 사례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잘못된 해석의 사례일 뿐, 조례 그 자체가 문제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게 사실은팀의 판단입니다. 최상위 법인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당위적 문구를 조금 더 구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련 연구도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은팀이 구글 스칼라(https://scholar.google.co.kr)에서 확인해보니,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 사례 간의 양(+)의 상관관계 혹은 인과관계를 입증한 연구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연구는 있었습니다. 학술지 <법과인권교육연구>에 실린 논문 '학생의 인권 보장 정도와 교권 존중과의 관련성'(구정화, 2014)은 광주시 초·중·고등학교 학생 1,500명을 대상 서베이의 통계 분석을 한 결과, 인권 교육을 많이 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높은 점수를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마치 계산기로 계산하듯 플러스(+)와 마이너스(-) 관계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학생들이 서울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사실은팀은 최근 교권 침해 문제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도한 바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을 취재해보니, 이런 국가들 역시 교권 침해 문제가 우리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고, 이 때문에 교권을 강화하는 규정 개정에 적극적이란 점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개정의 방향은 "가해 학생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보다는, "교사의 사생활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학생 혹은 학부모와 SNS 친구 맺기를 자제하라"(미국 뉴욕주), "개인 연락처는 알리지 마라"(영국 교육부), 이런 식의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무엇이든 상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사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개인'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겁니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자부심도, 결국 교사 개인을 향한 '존중'을 통해 성취될 수 있음을, 교육 수용자들이 고민해야 할 대목입니다. 어쩌면 이런 공감대가 교권 보호의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이제 교권을 강화하는 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 텐 데, 위와 같은 시도들이 의미 있는 참고 사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작가 : 김효진, 인턴 : 여근호, 염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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