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다. 지난 6월 말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 2.5조 달러와 격차가 크고, 한국 증시 부동의 시가총액 1위이자 글로벌 24위인 삼성전자의 3397억 달러(이상 7월 18일 기준)보다는 9배나 큰 규모이다.
애플은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답게 '아이폰'이라는 지배적 제품을 만들어내면서 막대한 규모의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2022 회계연도에 애플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998억 달러로, 원화 환산(2022년 평균 원/달러 환율 1292원 적용) 128조 원에 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 55조 원 대비 2.3배나 크다.
애플은 수익성이 높은 우량기업이지만,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은 애플의 주가 상승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적 요인일 따름이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코로나 이전 1조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다가 최근 3년 동안 주가가 약진하면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시가총액이 3배로 늘어났던 지난 3년의 시간은 글로벌 스마트폰 산업이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스마트폰 세계의 절대 강자 '아이폰'이 애플의 주가 상승세를 설명하는 절반의 요인이라면, 나머지 절반의 힘은 극단적인 '주주친화 정책'에서 나왔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애플의 자기 자본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애플의 자기 자본은 2017 회계연도 말 1,340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2년 말에는 506억 달러로 감소했다. 통상 자기 자본의 감소는 적자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적자는 자기 자본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초우량 기업 애플이 적자를 봤을 리는 만무하다. 우량 기업은 돈을 잘 벌고, 번 돈의 일정 부분을 사내에 유보하면서 자기 자본이 꾸준히 늘어나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애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애플의 자기 자본이 감소한 이유는 벌어들인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썼기 때문이다. 잉여자본을 회사에 축적하지 않고 주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애플은 자기 자본이 정점을 찍은 2017년 말 이후 3666억 달러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는데, 같은 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3860억 달러)과 현금 배당(712억 달러)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준 금액은 4572억 달러에 달했다. 벌어들인 금액보다 더 많은 규모의 돈을 주주환원에 쓴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벌어들인 이익뿐만 아니라 과거에 유보해 놓은 이익까지 더해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애플의 자기 자본 감소는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무한팽창의 자기 증식 욕구는 자본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숭배한다. 욕망하지 않는 자본은 자본이 아니다. 자본의 인격적 표현인 자본가들이 주로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렇게 벌었으면 됐지, 무슨 욕심으로'. 자본의 속성을 모르는 말이다. 욕망이 없었더라면 애당초 그 정도 벌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자기 증식 욕구는 스스로의 효율을 저해한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자본의 팽창이 한계생산을 체감시킨다고 봤고, 마르크스도 비슷한 맥락에서 자본의 집적에 따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공황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의 초우량 기업들은 주주환원을 명목으로 자본을 축소시킴으로써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