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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걸 알면서 창문 깼을 모습 눈에 선해"…버스기사 슬픈 발인

"죽을걸 알면서 창문 깼을 모습 눈에 선해"…버스기사 슬픈 발인
▲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희생된 버스 기사 A 씨의 발인

"아들아 어디를 가냐. 날 두고 어딜 가…"

오늘(19일)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희생된 버스 기사 A 씨의 90대 노모가 운구차에 실린 그의 관 위에 엎어져 흐느꼈습니다.

A 씨의 아들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노모를 떼어내고 차 문이 닫힐 때까지 말없이 관을 바라봤습니다.

지난 15일 아침 청주시 미호강 범람으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버스에 급류가 밀려들자 창문을 깨 승객들의 탈출을 도우려 했던 A 씨의 발인이 오늘 엄수됐습니다.

그의 제사실 앞에는 수십 개의 화환과 함께 전국모범운전자협회 조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A 씨의 지인들은 그를 "누구에게나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자신을 35년 지기 친구라고 소개한 김 모 씨는 "친구들의 가족도 자기 가족처럼 챙겼던 사람이었다"면서 "명절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내가 일이 있어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땐 대신 우리 어머니를 찾아보던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또 다른 친구 김 모 씨는 "사고 당시 친구가 승객들에게 창문을 깨 드릴 테니 탈출하라고 했다던데, 그 사람은 정말로 승객들이 다 나가는 걸 보고 제일 마지막에 탈출했을 사람이었다"면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었을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A 씨는 남다른 공감능력만큼이나 봉사활동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일하지 않는 날에는 초등학교 앞에 나가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책임졌고, 1년에 한 번씩은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전국 여행을 시켜줬다고 합니다.

원래는 택시 기사였던 A 씨는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 최 모 씨의 추천으로 10년 전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는 출근 시간이 새벽 5시 반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3시부터 나와 사무실 정리를 하고 마당을 쓸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는 성격 덕에 금세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몇 년 전에는 전국 단위 승객 안전 최우수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베테랑들만 몬다는 747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게 됐습니다.

최 씨는 "747번 버스는 외지인들을 싣고 청주공항과 오송역 사이를 오가는 노선이라 회사의 얼굴과 같은 버스였다"면서 "그 버스는 그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죽음으로 이어졌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러면서 "침수된 도로를 피해 지하차도로 들어갔다고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이만큼 승객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친형 이 모 씨는 "동생이 아내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버스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며 혹시 모를 작별 인사를 했다더라"면서 "미호천이 넘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는데 당국이 왜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14명이 숨졌고, 이 버스에서만 운전자 A 씨를 포함해 9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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