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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약에 취해 눈 떠보니 홍대입구… "미국보다 심할 수도"

[마약팬데믹] ⑫ 의료용 마약 처방의 딜레마

스프 마약팬데믹 12회
"저 (약에) 취해 있다가 이제 깼어요."

지난 5월, 10대 마약 투약자 취재 과정에서 처음 만났던 A 양. 인터뷰 이후 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뒤 약 2주가량 잠적했다가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지친 목소리의 A 양은 '눈을 떠보니 길거리였다'라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했습니다. A 양은 약에 취해 일주일 내리 잠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서 달아난 뒤 결국 마약 재투약

"지금 ○○○ 기차역이에요."

A 양은 자신의 위치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알렸습니다. SBS 마약 실태 심층기획팀은 곧바로 이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렸고 논의 끝에 A 양을 상대로 병원 입원을 조심스레 권유하기로 했습니다. ○○○ 기차역에서 만난 A 양은 '병원에 다시 갈 생각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르겠어요"라며 구체적인 답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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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 이따가 (병원) 갈 생각 있어요?
A 양 : 병원이요? 모르겠어요.

취재진 : 가면 부모님이랑 얘기해 볼 거예요? 마약 하는 거?
A 양 : 이미 얘기가 됐어요. 엄마는 병원을 가래요. 그래서 일단 집에 가는 거예요.

A 양과 연락이 끊겨 있는 동안 취재진과 의료진이 가장 우려했던 건 마약 재투약이었습니다. 아니길 바랐지만, A 양은 우려대로 다시 약에 손을 댄 상태였습니다.

A 양이 처음으로 손댔던 마약은 '펜타닐(패치)', 17살 때였습니다. '펜타닐'은 병원 내원 후 합법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이후 수년간 펜타닐 중독에 시달리다 마약 폐쇄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던 겁니다. A 양은 어렵사리 병원 치료의 문턱을 넘었지만 뇌와 의지를 지배해 버린 마약의 중독성에 이끌려 병원을 도망쳤습니다. '약에 취해 눈을 뜨니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였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해당 장소에 찾아가니 잠적하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A 양은 만났지만 A 양이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시 갈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병원 치료 회피하고 계속 재투약하는 경우도

아예 병원 치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SBS 마약 실태 심층기획 취재팀이 지난 5월 만났던 10대 투약자 B 양의 경우 치료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경찰 수사팀에 검거될 때만 해도 신체에 이상반응이 감지된다며 치료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취재진이 만났던 B 양은 '뇌가 다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어 소통 능력에 문제가 느껴진다고 증언했었습니다.

지난 5월 24일 경찰 수사팀과 B 양의 대화 내용
경찰 : 치료 좀 받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좀 안 들어?
B 양 :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있었어요. 막 진짜 내 뇌가 다쳤나?

경찰 : 언제 그걸 느꼈어? 어떤 경우에?
B 양 : 말을 버벅거릴 때.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실제로 B 양은 대화 도중 질문하고 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찰 : 너 몸 상태가 왜 이걸 찾게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돼. 그러려면 네가 이제 몸이 아프면 이빨이 아프면 어디로 가?
B 양 : 잇몸이요.

경찰 : 치과를 가야지. 전문 병원 가서 이 상태를 체크를 해봐야 된다는 거야.

이후 경찰 수사팀과 취재진이 한 달여에 걸쳐 설득했지만 아직 병원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집 근처 PC방과 오락실, 인형 뽑기 가게, 편의점 등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해 봤지만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병원 치료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거부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약을 끊지 못하며 중독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될 뿐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B 양은 추가 투약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재판에 넘겨지는 처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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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치료를 마음먹기도, 치료 과정을 견뎌내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물론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투약자도 있습니다. 17살에 펜타닐에 손을 대며 4년 가까이 펜타닐을 투약했던 C 양의 경우 현재까지 단약에 계속 성공해 대학 입학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수개월이기는 하지만 C 양은 "몸이 점점 건강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라며 "'나 정말 이제는 끊어야 돼.' 이런 생각이 들 때 곧바로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좋은 것 같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한국, 미국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상황이 미국보다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며 지금부터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마약 치료 전문)은 "(수년 내에) 한국의 상황이 미국보다 심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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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천 원장은 대한민국 의료 인프라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불법적인 마약뿐 아니라 합법적 의료용 마약 구입 경로나 접근성이 미국보다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펜타닐 처방 건수는 지난 3년간 7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천 원장은 국내 의료 환경을 걱정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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