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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마약 중독자의 고백 "집행유예 나오고도 계속 달렸죠"

[마약팬데믹] ⑭ 재범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스프 마약 팬데믹 14회
정하윤(가명)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이었습니다. 26살 때부터 손을 댄 마약, 29살이 된 지금 단약을 11개월째 이어가고 있단 정 씨를 중독 재활 치료가 진행되는 인천 참사랑병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손에 쥔 채 병원을 찾았던 정 씨는 계속해서 재판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필로폰 투약으로 인해 두 번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상황, 이번 재판의 결과가 어떨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법원을 오가던 정 씨에게 물었습니다.

"집행유예가 나오고 나서, 어쨌든 이 (형사) 절차를 한 번 하는 게 고생스럽고 힘든 일이니까 '참아야지, 안 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요, 친구도 없었고 생각도 안 났어요. 그때는 계속 달렸죠."

여러 차례 투약을 거듭하고서 조현병과 비슷한 증세가 너무 심해져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게 됐고, 마약퇴치운동본부의 상담을 거쳐 인천 참사랑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는 정 씨는 이제야 후회 섞인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많이 후회되죠. 미리 못 가서. 이런 데가 있었으면 진작에 가서 사건이 생기기 전에 끝냈어야 하는데, 나중에 알아서 후회가 돼요."

마약 투약 혐의로 형사절차를 세 번째 밟고 있는 정 씨의 이야기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적발, 형사처벌이 이들을 재범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완전히 충분하진 않다는 걸 보여 줍니다.
 

"화장실까지 같이"... 보호관찰소 직접 가 보니

스프 마약팬데믹 12회
마약사범이 유죄를 인정받는다면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또는 실형을 선고받을 겁니다. 전자들의 경우 사회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이들을 관리하는 체계는 보호관찰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교도소 등에 구금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도록 하되, 보호관찰관이 지도하고 감독하도록 하는 겁니다.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등이 함께 내려지기도 합니다. 흔히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들을 감독하는 역할로 보호관찰관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마약사범 가운데도 집행유예 등 판결 당시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경우 보호관찰관으로부터 지도와 감독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보호관찰이 이뤄지는지, 지난달 26일 울산보호관찰소를 직접 찾았습니다.

보호관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정세라 울산보호관찰소 주임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차에 올랐습니다. 관내 마약사범에 대해 말 그대로 '불시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재범률이 상당한 마약사범들의 경우 언제 다시 마약에 손을 댈지 모르기에, 집 혹은 직장으로 불시에 보호관찰관이 찾아가 마약 재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소변검사를 시행하는 겁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2인 1조로 움직인다는 불시검사, 마약사범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보호관찰관이 전화를 걸어 지금 집 앞에 왔다는 걸 알리자 문이 열렸습니다. 불시검사는 이전에 해당 마약사범이 투약했던 마약 종류와 함께, 불시로 다른 마약 종류까지 추가로 검사할 수 있는 키트까지 가져가 이뤄집니다.

이날 찾은 집에선 대상자가 투약했던 마약 두 종류, 거기에 또 보호관찰관이 임의로 택한 다른 한 종류의 마약을 검사할 수 있는 키트 모두 3가지를 가지고 검사가 이뤄졌습니다.

대상자의 소변을 키트 위에 떨어뜨려 두 줄이 나오면 음성, 결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여나 소변을 바꿔치기할 수 있어 보호관찰관은 검사 대상자와 화장실까지 함께 들어갔습니다.

스프 마약팬데믹 12회
"뒤돌아 있을 테니까 소변 받으시면 돼요."

이후 나온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 '잘하고 계신다'는 말을 대상자에게 건네며 보호관찰관은 집을 나왔습니다.

이런 불시검사는 대상자에 따라 그 빈도도 서로 다릅니다. 재투약 위험성이 더 높다고 판단되는 대상자의 경우엔 좀 더 자주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이외에도 월 1회에 걸쳐 시행되는 정기검사가 있습니다. 보호관찰 대상자가 직접 보호관찰소를 찾아 소변검사를 하고 보호관찰관과 면담도 하는 겁니다.

이날도 30대 남성 마약투약자가 김현준 울산보호관찰소 성인보호관찰계장과의 정기검사 및 면담을 위해 보호관찰소를 찾았습니다. 대마를 투약했던 이 남성은 정기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보호관찰관은 면담에서도 꼼꼼하게 현재 환경 등을 확인했습니다.

스프 마약 팬데믹 14회 스프 마약 팬데믹 14회
김현준 계장이 맡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모두 102명입니다. 이 가운데 마약사범은 모두 6명입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호관찰관 1명이 평균적으로 맡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106명, OECD 국가 평균인 37.6명의 2.8배 수준입니다. 조사대상국인 31개국 가운데 29위 수준입니다.

대상자 밀착 관리를 하면서 재범을 막으려면 보호관찰관 인력이 늘어날수록 도움이 되겠죠. 보호관찰소에서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약물검사 횟수가 2018년엔 1만 2천102건이었는데 올해는 5월까지의 통계만 1만 683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프 마약 팬데믹 14회이렇게 업무량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만큼 인력도 보강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현장에서 제기됩니다. 또 마약사범의 경우 보호관찰관이 집중면담을 하기도 하고, 중독전문가나 임상심리사 등 외부 전문가와의 연계상담을 통해 치료적 개입도 함께 합니다. 마약사범만을 전담으로 관리하는 전담 보호관찰관이 있으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마약류 투약 사범을 대상으로 '사법-치료-재활을 연계하는 맞춤형 치료‧사회재활 조건부 기소유예' 모델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약사범의 건강한 사회복귀에 중점을 둔 제도인데 그 핵심은 '보호관찰소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입니다. 마약류 사범에 대해 치료와 재범 예방 교육을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약물 모니터링 및 상담을 통해 6개월 간 선도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마약류 투약 사범 중 참여 대상자를 검찰이 선별하고 이를 식약처에 통보하면, 식약처에서 구성한 전문가위원회가 이 프로그램 대상자에 대해 중독 수준에 따른 적정 재활프로그램, 치료 연계 필요성 등을 다시 분석해 회신합니다. 그럼 검찰이 이를 참고해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겁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앞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는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치료와 재범 예방 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뤄지는지, 보호관찰관이 얼마나 충실하게 약물 투약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상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걸로 보입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1년 전체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6.6%, 그리고 보호관찰을 받는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8%라고 합니다.

재범 가능성이 낮은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보호관찰을 받는 집행유예 등의 처분을 받아서란 해석도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단 뜻이기도 합니다.
 

교도소는 어떨까?

앞선 보호관찰은 집행유예 등으로 우선 사회로 복귀한 이들을 위한 관리체계입니다. 동종 전과가 여러 차례 있거나, 단순 투약이 아니라 공급 등의 혐의까지 겹친 이들에겐 실형이 선고되곤 합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구치소, 교도소라는 환경은 어떨까요.

마약 투약이 아닌 별도 혐의로 수감됐다 지난 5월 교도소에서 출소했다는 김현수(가명) 씨는 '진짜 심각하다'며 SBS 취재진에게 지금의 마약류 실태를 얘기했습니다. 김 씨가 있었던 방엔 김 씨를 포함해 모두 4명이 수감돼 있었다고 합니다.

스프 마약팬데믹 12회
이 가운데 1명은 필로폰을 밀수해 들여온 혐의로 수감된 이른바 공급‧판매책이었고, 다른 1명은 단순 투약범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마약사범이 한 방에 있으며 여러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게 김 씨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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