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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극단적인 주장을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안심하긴 이르다

[뉴욕타임스 칼럼] By 리처드 필데스

스프 NYT 뉴욕타임스, 뉴스페퍼민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리처드 필데스(Richard Pildes)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법과 정치의 상호작용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6월 27일 대법원은 무어 대 하버(Moore v. Harper) 사건에 관한 판결에서 이른바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큰 틀에서 거절했다. 이 이론은 "선거 제도는 궁극적으로 주의회 소관"이라고 극단적으로 해석한다. 이번 판결로 미국 연방 차원에서 치르는 선거가 당장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영향을 받는 사태는 다행히 피하게 됐다.

그러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쓴 다수의견을 자세히 보면, 대법원이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완전히 기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법원은 상대적으로 덜 극단적인 버전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어떤 식으로든 2024년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은 주의회가 연방 선거를 독립적으로 관장하는 역할을 미국 헌법이 보장한다고 본다. 이번에 대법원이 심리한 사건 속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사례를 보면,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펴는 이들은 심지어 주 헌법도 주의회가 선거를 관리하는 역할을 침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선거구를 한 정당에 아주 유리한 쪽으로—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공화당에 유리, 민주당에 불리하게— 불공정하게 다시 그리는 것도 의회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본다.

만약 이 극단적인 주장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다면, 주 헌법을 집행하는 주 대법원의 역할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주 헌법이 아무리 게리맨더링을 금지하고, 투표 절차에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경선 일정이나 과정 등을 규제해도 주의회가 관장하는 연방 선거는 주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그만이다. 투표권은 거의 모든 주 헌법에 명시적으로 보장돼 있다. 그러나 주 법원이 대개 주의 헌법 조항과 마찬가지로 연방의 사무에 관해 주 헌법을 강제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주 헌법이 명시한 선거 관련 조항들이 무시된다면, 연방 선거 절차는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선거 관리 측면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 극단적인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동시에 덜 극단적인 버전이긴 해도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일부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직후 사람들은 극단적인 주장이 큰 줄기에서 대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데 주목했을 뿐 판결의 자세한 내용과 함의를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대법원은 주 법원이 주 헌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 연방 헌법의 제약과 구속을 일부 받는다고 판결했다. 이 제약은 주 법원이 주의 선거법을 해석할 때, 필요에 따라 주 선거법을 통해 연방 선거를 관리하고 관장하는 데 모두 적용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앞으로 실제 판결을 할 하급 법원에 언제 어떤 상황이 되면 주 법원이 연방 헌법의 제약을 어겼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법리적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판결문에 "주 법원이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며, "연방 선거를 규제하는 데 있어 주의회에 부여된 권한을 통상적인 사법 심사를 이유로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쓴 게 전부다.

위의 문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대법원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예시도 들지 않았다. 대법관들 사이에 성향을 막론하고 이 부분을 가능한 한 가장 좁게 해석하기로 합의한 뒤 다수의견을 적당히 꿰맞춘 게 분명하다. 실제로 대법원은 주 법원이 연방 헌법의 제약과 구속을 받는다고 판결하면서도 직접 심리한 사건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 대법원이 이 모호한 제약을 어디서 어떻게 어겼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헌법은 다른 주 헌법들과 달리 당파적인 게리맨더링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 법원은 주 헌법에 적시된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해야 한다"는 조항과 같은 일반 조항을 토대로 당파적인 게리맨더링을 금지했다. 특정 정당에 지나치게 유리한 게리맨더링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이런 해석을 통상적 사법 심사로 볼 수 있는지 주의회의 권한을 침해한 걸로 봐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연방 대법원이 이 문제에 답을 내렸다면, 2024년 선거를 관장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판결문에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 편에 선 대법관 여섯 명 사이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주 법원의 판결에 관한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대법관들은 어디서 어떻게 의견이 갈렸는지를 드러내는 대신, 덮어버리고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많은 경우 사법 최소주의는 장점이 많다. 사건에 관한 판결을 좁은 근거를 토대로 내리거나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때까지 법원의 판결을 미루는 건 사법부의 월권을 예방하고 법원 내 의견을 수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선거법에 관한 한 사법 최소주의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 무엇보다 선거를 둘러싼 규칙은 최대한 일찌감치, 분명히 정해져 있는 편이 낫다. 그래야 유권자들의 혼동을 막고, 선거 관리 기관도 유권자들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또한, 규칙이 명확해야 선거에 출마한 후보, 정당이 유권자를 동원하기 쉽다. 규칙이 명확하지 않으면 유세 과정에서 시비와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선거를 둘러싼 불신과 의심이 만연한 세상에서 선거 관련 규칙을 미리 명확히 정해두는 건 더욱 중요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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