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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국민 명단에 없는 '유령 아동' 2천 명, 그리고 비정한 부모들

0622 이브닝브리핑
분명 태어나긴 했는데 행정상의 기록에 없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출생신고가 없었기 때문이죠. 지난 8년 동안 이런 '유령 아동'이 2천 명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런 아동은 안전할까요? 확인 과정에서 냉장고에 갇힌 신생아 시신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어머니의 범행에 희생된 겁니다.

4년 7개월 만에 드러난 엄마의 범행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경찰이 어제(21일)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를 발견했습니다. 30대 엄마의 범행이 곧 드러났는데요, 2018년과 2019년 각각 아기를 출산한 뒤 곧바로 살해하고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 온 겁니다.

경기남부경찰서 (사진=연합뉴스)
이미 세 자녀를 둔 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또다시 출산하자 범행했다고 합니다. 넷째와 다섯째로 태어난 두 아기는 모두 태어난 날 살해됐는데요, 처음 살해된 아기의 경우 4년 7개월 동안 냉장고 안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는 낙태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는데요, 남편은 이 말을 믿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머니에 대해서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오늘(22일)은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한 뒤 유기한 혐의로 20대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20대 엄마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은 자녀를 넘겼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자녀를 데려간 사람의 연락처 등은 모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합니다.

아기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거죠. 경찰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온 20대 어머니가 아기를 홀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유기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감사원 "출생 미신고 아동 2,236명"


위 두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게 된 배경에는 감사원 감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두 달 동안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를 벌였는데요,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있다는 걸 파악하게 됐죠.

감사원이 착안한 건 '임시 신생아번호'라고 합니다.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의 경우 출생신고 이전에 예방접종을 위한 '임시 신생아번호'가 부여되는데요, 출생신고 이전이라도 건강보험 적용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죠.

주민등록번호는 출생신고를 해야 나오지만, 필수 예방접종을 위한 임시 신생아번호는 주민번호와 별개로 태어나자마자 거의 모든 신생아에게 부여된다고 볼 수 있죠.

감사원은 복지부의 이 기록과 행안부가 가지고 있는 출생신고 기록을 대조해 봤더니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출생신고 되지 않은 영아가 2,236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태어나긴 했지만 행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투명 인간'이 이렇게 많은 겁니다. 이런 통계가 처음 드러난 것도 놀라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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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이들 중 약 1%인 23명을 추려 지방자치단체에 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게 했는데요, 대부분의 아이가 필수 예방접종과 보육 지원 등 복지에서 소외되거나 범죄 등 위기 상황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영양 결핍으로 이미 사망하거나 부모가 베이비박스에 유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확인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과 화성 영아 유기 의혹 사건도 세상에 드러난 겁니다.

임시 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아기의 1%인 23명 표본 조사에서 3명 사망, 1명 유기, 1명 유기 의심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체 2천여 명에 대해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 시스템, 소극 행정이 방치한 '사각지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행정체계의 한계도 노출됐습니다. 신생아의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5만 원의 과태료 처분에 그칩니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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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의무가 부모에게만 부여돼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부모가 출생신고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행정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부모의 범죄도 묻힐 수 있었던 겁니다.

그동안의 학대 위기 아동 발굴과 보호 시스템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복지부는 지난 4월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거나 의료기관 진료 기록이 없는 만 2살 이하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지만 이런 조사로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조사 대상이 출생신고가 돼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 아이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출생신고 제도와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의 맹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지만, 소극적 행정도 문젭니다. 보건 당국은 '임시 신생아번호'를 통해 출산한 아기들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파악한 출생 미신고 2천여 명은 복지부의 자료에 있는 신생아들입니다.

따라서 적극 행정을 폈다면 학대 위기 아동 발굴을 위한 전수조사가 임시 신생아번호가 있는 아이로 넓혀야 했지만, 출생신고 된 아이로 좁히면서 사각지대가 생긴 겁니다.

보건 당국은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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