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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혼이길 권하는 사회

비현실적인 대출 소득요건부터 개선해야

[취재파일] 미혼이길 권하는 사회
저는 요즘 격주에 한 번 꼴로 결혼식에 갑니다. 코로나로 미뤄뒀던 결혼을 서둘러 진행하는 건지, 청첩장을 받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 중 실제로 '혼인신고'를 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제가 한 달에 두 번 결혼식에 간다고 해서, 달마다 부부 2쌍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결혼식은 올려도 혼인신고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고도 미혼인 건데, 이런 '위장미혼'이 늘어나는 데엔 정부 정책 영향이 큽니다.

결혼한 신혼부부 증가
 

기혼이나 미혼이나 똑같은 소득 요건

지난해 11월, 20대 직장인 A 씨는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반년 넘게 A 씨와 A 씨의 남편 모두 '미혼' 상태입니다. 왜 이제껏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지 물으니, '대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A 씨 부부는 내집마련을 위해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기혼이면 대출할 때 훨씬 불리하다는 겁니다.

A 씨가 받으려는 대출은 '내집마련 디딤돌대출' 상품입니다. 연 2%대 저금리로 주택구입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금융 상품으로,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미혼은 연소득 6천만 원 이하면 최대 2억 원까지 대출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혼인 경우, 부부 합산 연소득이 7천만 원 이하여야만 대출이 가능합니다.

내집마련 디딤돌대출 cg

심지어 신혼부부가 아니거나 자녀가 2명 이상 있지 않으면 기혼이어도 6천만 원 이하여야 대출이 나옵니다. 부부는 2명인데, 1명인 미혼 소득요건과 같은 거죠. 연봉이 4천만 원인 사람은 미혼일 때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과 연봉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 '기혼자'가 되면 소득 요건에 걸려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명+1명=2명' 인정 안 하는 사회

미혼과 기혼의 소득 조건이 같은 건 전세자금 대출도 마찬가집니다. 최저금리가 1.8%인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의 기혼 소득요건은 합산소득 5천만 원으로, 미혼도 같습니다. 신혼부부거나 2자녀 가구일 경우 6천만 원이 적용됩니다. <1+1=2> 1명과 1명이 만나면 2명인데, 사회는 신혼부부 한 쌍을 2명이 아닌 1.1~1.2명 정도로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들에게 1.2%의 초저금리로 최대 1억 원까지 빌려주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은 소득 요건이 더 비현실적입니다. 미혼은 3천5백만 원 이하, 기혼은 부부합산 5천만 원 이하만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9,620원이니, 1년 내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면 2천4백만 원 정도 받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부부 모두 수당 한 푼 받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아야 신청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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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소득요건, 왜?

이렇다 보니 '결혼 페널티'란 말도 등장했습니다. 혼인신고 해봤자 좋을 게 하나 없는데, '굳이 왜 하냐'는 겁니다. 사회초년생들이 '내돈내산'으로 집을 마련할 순 없겠죠.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전세든 자가든 대출 조건을 세세히 보니 '위장미혼'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 정도면 '정부가, 사회가 미혼을 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국토교통부는 재원이 한정돼 있어서 소득 요건을 완화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금으로 디딤돌대출 같은 정책금융상품을 운용하는데, 기금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 소득요건으로 신청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혼은 1명, 기혼은 1+1=2명인데, 1명과 2명의 소득요건이 비슷하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평균소득인 2명이 만나 맞벌이로 일하면 마치 고소득층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소득요건을 산정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최슬기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맞벌이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그렇게 고소득층 아닌데, 둘이 합치면 상당한 고소득인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출 상품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는 사례들도 발생하는 것 같고요. 결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생각한다면 재원 마련 부분은 더 큰 범위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 절망적인 성적표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주거 등 여러 환경이 안정되고 나서야 자녀계획을 세웁니다. 기혼보다 미혼이 더 유리한데, 누가 손들고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나설까요? 저출산 대책의 첫 단추는 '혼인 장려'입니다. 첫 관문에서부터 장벽을 마주해 혼인신고를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적어도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한다면, 대출 소득요건을 현실적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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