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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3자 괴롭힘' 피해자를 지키려면

[취재파일] '제3자 괴롭힘' 피해자를 지키려면

직장 내 괴롭힘, 담지 못한 내용들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됐습니다. 해당 내용은 근로기준법 76조의2, 76조의3에 나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괴롭힘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괴롭힘 신고를 했을 때 피해 근로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명확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피해 근로자가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사업주는 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벌칙 조항도 신설됐습니다. 큰 변화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제3자 괴롭힘' 은 누가 지키나

사각지대는 여전히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76조의2에는 괴롭힘 가해자의 범위를 사업주 혹은 근로자로 한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 회사 사장님, 아니면 직장 동료한테 괴롭힘을 당한 경우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터에서 근로자를 괴롭히는 주체는 이들 말고도 더러 있습니다. '제3자'가 존재합니다. 제3자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현행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흔히 '제3자 괴롭힘'이라고도 불립니다.

① 경비 노동자, 콜센터 상담 직원

경비 노동자 상대 주민들의 갑질이 대표적입니다. 경비 노동자가 주민 갑질 등에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갑질을 하는 주민은 사업주도 아니고, 같은 근로자도 아니다 보니까 괴롭힘 만으로는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약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이 밖에도 콜센터 직원들도 해당합니다. 악성 민원인의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고생하는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원인의 괴롭힘에 대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라 규정한 뒤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는 마련돼 있습니다.

② 하도급 노동자

제3자 괴롭힘은 하도급업체 근로자에게도 발생합니다. 하도급 업체 직원이 원청 업체 직원 등과 업무상 접촉할 일이 있을 때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할 수 없습니다. 같은 소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도급 더러 있는 직장에서는 여러 업체 직원들이 같이 일을 하다 괴롭힘을 당해도, 법적 처벌이 모호해집니다. 대표적인 곳이 조선소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③ 가맹점주와 일하는 근로자

지난해 8월에 쓴 기사입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도움을 줬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65234

특이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빵사 A 씨는 한 프랜차이즈 업체 계열사 소속 근로자입니다. A 씨와 같은 제빵사는 가맹사업자들의 가게로 파견을 나가 일을 합니다. 이때 가맹점주는 개인사업자이 신분입니다. 제빵사가 소속된 업체의 근로자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한테 폭언 등 괴롭힘을 당해도 가맹사업자를 제재할 방법은 한정적입니다. 기사 속 A 씨도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사후 대처가 A 씨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제3자 괴롭힘, 국회 노력은?

제3자 괴롭힘을 근로기준법에 정한 '직장 내 괴롭힘' 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한 국회 노력이 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임이자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같은 환노위 소속인 박대수 의원 등이 함께한 개정안입니다. 개정안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76조의2를 세분화하는 겁니다. 기존 안은 1항으로 두고, 2항을 신설하는 겁니다. 2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② 직장과 이해관계가 있는 도급인, 고객 등이나 사업주의 4촌 이내의 친족은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제3자에 의한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만약 해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 범주에 포함됩니다. 보통 노동계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추진하면, 경영계와 갈등을 빚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과 관련해서는 여야의 진영 논리나 경영계 반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그만큼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가 돼야 하는 법안입니다. 박대수 의원은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범위를 직장 내 뿐만 아니라 고객, 도급인 등과 같은 제3자에 의한 괴롭힘도 추가하여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 통과에 힘쓰겠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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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괴롭힘, 산재 판정 추세

앞서 가맹점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제빵사 A 씨에 대한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A 씨는 괴롭힘 피해를 겪은 뒤 휴직을 신청했고,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요양급여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산재로 최종 인정됐다고 합니다. 개인사업자인 가맹점주로부터 받은 괴롭힘으로 인해 산재가 인정된 사례인데, 흔치 않습니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가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받은 폭언에 따른 산재 인정은 기존에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맹점주의 괴롭힘에 대해서 산재가 인정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박대수 의원실 윤창혁 선임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해당 산재 판정문을 구해봤습니다. 판정문에는 A 씨가 가맹점주의 괴롭힘 발생 뒤 겪었을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가맹점주의 괴롭힘을 인정한 점 말고도 더 있습니다. A 씨의 회사 대처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판정문에는 "회사에 도움을 요청하였음에도 미온적인 대응으로 신청인이 직접 경찰서에 고소하고, 노동조합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그만큼 '제3자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측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A 씨가 질병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제3자 괴롭힘은 산재 영역에서는 갈수록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음 과제는 제3자 괴롭힘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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