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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인어공주', PC 앞세운 디즈니의 도전…'인종 바꾸기'에 그쳤다

인어공주

디즈니의 실사 영화 도전이 '인어공주'로 제동이 걸렸다.

'인어공주'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 중 한 편이었다. 오늘날 디즈니 왕국이 가능했던 수훈작이자 전 세계에 걸쳐 사랑받은 인기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개봉한 '인어공주'의 누적 관객 수는 63만 명. 개봉 3주 차 주말(6월 9일~11일)에도 2만 3천여 명을 모으는데 그쳤으며 박스오피스 5위까지 떨어졌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국내에서 100만 돌파는 어려워 보인다.

자국인 북미 성적과 그 외 국가의 온도차 또한 흥행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인어공주'는 미국 현충일(5월 마지막 월요일)이 끼인 개봉 첫 주말 4일 동안 1억 1,881만 달러를 모아 역대 메모리얼 데이 기록 중 역대 5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개봉 2주 차 주말 9,558만 달러를 모으는데 그쳐 하락세가 시작됐다. 박스오피스 순위도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과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밀려 3위까지 떨어졌다. 14일 현재 북미에서 2억 3,231만 달러의 극장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인어

문제는 해외 성적이다. 현재까지 1억 8,565만 달러를 모으는데 그치고 있다. 북미와 해외 수익을 합친 총매출은 4억 1,797만 달러. 그동안 성공했던 디즈니 실사 영화는 대부분 자국 수익보다 해외 수익이 높았다. 현재 '인어공주' 흥행 기류가 심상찮은 이유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약 2억 5,000만 달러(한화 3,199억 원)로 알려져 있으며, 손익분기점은 약 5억 6000만 달러(한화 약 7,166억 원)로 추정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손익분기점 돌파도 쉽지 않아 보인다.

디즈니가 34년 만에 '인어공주'를 리메이크하며 기대한 것은 손익분기점 달성이 아니다. 슈퍼 IP인 '인어공주'를 통해 '라이언킹'(2019), '알라딘'(2019)과 같은 10억 달러 이상의 글로벌 흥행 수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전까지 글로벌 흥행의 촉매 역할을 했던 아시아, 유럽 시장의 부진으로 인해 황금빛 전망은 어두워졌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의 부진이 뼈아프다.

개봉 전부터 뜨거웠던 캐스팅 논란은 개봉 후에 더욱 가열된 양상이다. 디즈니의 PC주의로 인한 '블랙 워싱'이라는 의견과 이런 시선 자체가 '인종 차별'이라는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개봉 이후에는 '원작 재탕'에 그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인어공주

◆ 디즈니의 파격과 대중의 거부감

디즈니는 실사 영화의 타이틀롤로 흑인 가수인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는 파격을 보였다.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원작 훼손이라며 거부감을 보였다. 그중 일부는 온라인에서 '흑인 인어공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낫마이에리얼'(NotMyAriel·내 에리얼이 아니다) 해시태그(#) 운동 벌이기도 했다.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은 개봉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PC를 지지하는 쪽과 원작 훼손은 용납할 수 없다는 쪽이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인어공주'의 원작인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주인공 에리얼의 인종에 대한 명시는 없다. 다만 외모에 대해 "her skin was as clear and delicate as a rose-leaf, and her eyes as blue as the deepest sea"(그녀의 피부는 장미 꽃잎처럼 맑고 섬세했으며, 눈은 가장 깊은 바다처럼 파랗다)라고 묘사한 구절이 있다. 팬들이 원작 속 에리얼을 백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어공주

원작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는 1989년 디즈니가 만든 동명의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흰 피부에 파란 눈, 붉은 머리의 소유자 에리얼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비극에 가까운 원작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대중적인 선택을 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2023년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자성의 결과물처럼 여겨지는 캐스팅의 파격을 보였다. 과거 자신들이 만들어냈던 '백인 미녀' 공주 이미지를 뒤집는 선택이었다.

개봉 전 팬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자 "애리얼이 덴마크인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덴마크 인어는 흑인일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 게시물의 제목은 '가엾고 불행한 영혼들에 보내는 공개편지'였다. '흑인 인어공주'에 반대하는 이들을 인종차별 주의자로 모는 프레임은 디즈니가 자초한 부분도 어느 정도 있다.

리메이크는 감독의 작품관과 연출, 배우의 연기를 반영해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다. 재창조의 개념도 포함한다. 그러나 원작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통성과 재창조의 균형을 잘 잡는 것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어공주'의 경우 동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어린 시절 경험했다. 대중에게 오랫동안 특정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인어공주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변화에 따른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출과 각본의 역량이 요구되는 부분이었다.

인어공주

◆ PC는 무조건 옳은가…변화에 필요한 설득력

'인어공주'의 논란은 개봉 후에 더 뜨겁게 전개됐다. 완성도와 재미에 대한 의문 부호도 나왔다.

예상대로 파격은 캐스팅뿐만 아니라 설정 변화에서도 엿보였다. 인어의 터전인 바다를 카리브해로 옮겼고, 칠공주는 다인종으로 설정했다. 백인 왕자가 흑인 왕비에 입양된 아들이라는 설정을 넣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반적인 틀과 애니메이션에서의 핵심 장면은 포기하지 않고 고스란히 재연하다시피 했다.

편의적 설정 변화와 고루한 스토리의 부조화였다.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를 의도한 몇몇 설정들은 해묵은 스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고, 놀라움을 안겨주는 데 그쳤다.

21세기 '인어공주'는 20세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원작 팬에게는 실망을, 새 관객에겐 기대 이하의 완성도로 실망을 안겼다. 시대정신을 반영할 것으로 보였던 영화는 추억의 복원도, 파격의 설득력도 갖추지 못한 반쪽 짜리 결과물을 내놓은 셈이었다.

어설픈 파격이 남긴 건 논쟁이었다. "디즈니가 동화에 PC를 혔다"는 원색적인 비난과 "흑인 인어공주를 거부하는 건 인종차별이다"라는 극단적 비판은 영화 개봉 후에도 계속됐다. 논란은 때로 영화의 흥행을 촉진시키기도 하지만, 완성도와 재미가 받쳐주지 못할 경우 논쟁만 남게 된다.

할리

'인어공주'의 진짜 문제는 캐스팅의 파격에 맞먹는 서사의 진보가 없다는 데 있다. 대다수의 이미지에 고착화돼 있는 캐릭터를 파격적으로 바꾸면서 그에 따른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역사와 문화, 인종의 정체성을 살린 콘텐츠가 아니라 백인의 대체재가 돼 적합성 논란에 휩싸이는 상황은 흑인들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베일리는 개봉 전 자신의 캐스팅을 반대하는 안티들과 인터넷 상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영화를 이끄는 배우가 잠재적 관객과 싸우는 상황을, 그저 주인공 무게로만 볼 수 있을까. 20대 초반의, 이제 막 영화에 데뷔한 신인에겐 가혹한 신고식이이었다.

디즈니는 1990년대 전까지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에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드러냈고, 그 중 공주 시리즈는 백인 왕자 구원 서사의 결정체였다. 2000년대부터 디즈니는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자성의 결과인지 시대정신의 반영인지 아니면 '에버그린 전략'(새로운 지식재산권을 추가해 독점 기한을 늘려가는 전략)인지 명확히 구분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확실한 건 디즈니가 계열사 픽사,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 필름의 영화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 플랜이 세워진 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할리

디즈니의 PC주의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투박하게 느껴진다. '인어공주'만 보더라도 흑인 인어공주와 백인 왕자의 해피엔딩에 이어 다인종 인어와 인간들이 어우러지는 엔딩에서는 어떤 의도들이 읽힌다. '화합'과 '공존'을 내세우는 캠페인과 같은 결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오락이다. 어떤 이는 영화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얻고, 교훈도 느낀다. 그러나 메시지는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 누군가에 의해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콘텐츠의 다양성을 향한 어떤 시도조차 없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디즈니의 파격적인 행보에는 그에 따른 세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네가 무엇을 하든 멋지게 해라. 멋지게 해내서 당신이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그렇게 해낸 것을 다시 보고 싶어 지도록 해라"라고 말한 월트 디즈니의 말을 디즈니의 창작자들이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대중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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