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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뺏고 뺏기는 전쟁은 늘 진행 중…가장 정치적인 바다 남중국해

[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9 - Fluid Borders

스프 아웃로오션 9화
 

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장' 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국가가 없는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법과 국가가 없다면 인간은 서로 뺏고 빼앗기며 전쟁과 같은 날을 보냈을 것이란 개념이죠. 이러한 국가 이전의 나날들을 '자연 상태'라 부릅니다.

만약 홉스가 현시대에 살았다면, 아마 자연 상태를 설명할 때 '바다를 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바다에 대한 우리의 상상은 이렇습니다. 국제적인 약속을 통해 바다 또한 육지처럼 잘 나누어져 있고, 서로의 영해를 욕심내는 것은 매우 반칙적인 행위라고요.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안 얼비나는 "지도상의 선들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바다의 경계는 대부분 군사적 힘으로 결정된다"며, 바다를 "법이 없는 거대한 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바다에서 날것의 욕망이 어떤 모습으로 분출되는지 생생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수많은 나라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중국해,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인 바다

남중국해와 접해있는 나라는 모두 8개입니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타이완, 싱가포르. 여기에 타이와 캄보디아가 바로 접해 있습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길목이 되는 지역인 데다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이고 유전과 천연가스 같은 자원까지 풍부합니다. 바다 위에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지지 않았고 제국의 시대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식민 지배와 해방이 교차해 더욱 복잡해진 지역입니다.

2022년 12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10여 년 간의 분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남중국해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획정하는 협상을 타결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어째서 두 나라가 협상을 타결하기까지 10년이나 걸렸는지 이해가 될 겁니다.

스프 아웃로오션 cg
얽히고설킨 선들은 각 나라가 주장하는 영유권의 범위를 의미합니다.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건 우리나라의 '영해'가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영해보다 넓은 범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해서는 더 치열한 자리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 지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협약 또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남중국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정치적'일 겁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사이의 바다 또한 그랬습니다. 이안 얼비나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두 국가 사이의 군사적 긴장감이 여전히 팽팽한 시기였습니다. 2014년부터 인도네시아는 자국 영해를 침범하는 외국 어선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무법의 바다'에 왕이 등장하다

2014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해양 강국으로 만들 것을 선언합니다. 대통령의 꿈을 진두지휘할 핵심인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수시 푸지아투티(Susi Pudjiastuti)'가 임명됐습니다.

수시 장관은 중졸 학력의 여성이라는 다소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5년 임기 동안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트위터 팔로워 300만 명이 넘는 스타가 됩니다. 가난한 수산물 시장 상인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그녀의 스토리도 한몫을 했겠지만, 가장 큰 비결은 불법 조업 외국 어선에 대한 강경대응 덕이었습니다. 임기 동안 무려 500척이 넘는 배를 폭파시킨 것입니다. 무법의 바다, 아웃로오션의 왕으로 불릴 만했습니다.

수시 장관을 해적을 잡는 왕에 빗댄 벽화
그 결과 수시 장관이 재임하는 동안 인도네시아 영해에서의 불법 조업은 90% 이상 줄어들었고, 인도네시아 어선들의 어획량은 1.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어선이 폭파된 베트남과의 사이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죠. 두 나라 간 긴장이 고조되던 당시, 이안 얼비나는 인도네시아의 국경 경비대의 배에 탑승해 취재를 시작합니다.

스프 아웃로오션 9화
사진 속 남자는 인도네시아 국경 경비대의 선장 '삼손(Samson)'입니다. 수백 척의 외국 선박을 포획해 온 베테랑이죠. 수시 장관은 국경 경비대에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권리를 부여했고, 그날 또한 바다를 순찰하는 중이었습니다.
 

베트남 어선 선장과 선원들 55명 체포 현장

인도네시아 경비대에 체포되는 베트남 선원들
순찰을 시작한 지 6시간쯤 지나, 삼손의 경비대는 인도네시아 영해 약 97km를 침범한 베트남 조업 선박을 발견합니다. 경비대는 베트남 어선의 선장과 선원들을 체포하고 배를 탈취했습니다.

그렇게 포획한 배에는 경비대원 중 한 명이 남아 지키게 했는데, 삼손은 경비대원 마스 건(Mas Gun)을 내려둔 채 순찰을 이어갑니다. 그날 하루에만 배 4척과 베트남인 55명 체포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문제는 마스 건이 지키던 배가 습격을 당하면서 베트남 해양 경비대에게 붙잡혔다는 내용의 통신이 도착한 후 시작됩니다. 삼손의 경비대는 즉시 마스 건의 배가 있던 곳으로 향했고 곧이어 두 경비대는 맞닥뜨리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배에는 55명의 베트남 선원이, 베트남 배에는 인도네시아 경비대원 마스 건이 있었습니다. 이안 얼비나는 당시 베트남 어선이 조업하던 위치가 정확히 인도네시아의 영해 안이었다고 말합니다. 인도네시아 측은 이 점을 반복해서 말했지만, 베트남 측에서는 그곳이 베트남의 영해라고 반박하면서 양측은 맞섰습니다.

양측 경비대 간 통역을 맡은 이안 얼비나
서로의 의견 차를 좁힐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삼손은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이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인도네시아 해군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베트남 경비대의 함선은 자신의 배보다 두 배 이상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체포됐던 베트남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베트남 함선 쪽으로 수영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경비대는 이를 보고도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결국 협상은 실패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트남 지원군마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붙잡힌 마스 건 대원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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