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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임신 중지가 범죄'인 나라에서 법의 허점을 노리는 그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8 - The Loophole Artist

스프 아웃로오션 8화
 

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자국에서조차 험한 파도 위에 있던 여성들
스프 아웃로오션 8화
여기 공해상에 있는 배가 있습니다. 이 배는 조금 전 한 나라의 영해를 벗어나 막 국제수역으로 나왔습니다. 그 나라가 불법으로 규정한 임신중지, 낙태와 관련한 조치를 하더라도 이 배에서는 처벌받지 않습니다. 험한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그 배 위에 있는 여성들은 오히려 안전한 거죠.

'위민온웨이브(Women on Waves) - 파도 위의 여성들'. 이 단체는 네덜란드 출신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버츠가 주도해 만들었습니다. 단체의 목적은 처음부터 분명했습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서비스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 단체가 만들어진 이유는, 위험한 임신중지 시술이 매년 수만 건 이뤄지고 있다는 것과 임신중지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프 아웃로오션 8화
'위민온웨이브'의 배는 네덜란드 국적입니다. 특정 국가의 영해 안에 있지 않는 한 네덜란드 법의 적용을 받고 네덜란드는 임신중지가 합법인 나라 중 한 곳입니다. 

곰퍼츠와 그의 동료들은 임신중지가 금지된 나라의 항구에 배를 댔습니다. 미리 연락해 놓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배에 태워서 네덜란드 법의 적용을 받는 곳으로 갔습니다. 멀리 네덜란드까지 갈 것 없이, 그 나라의 영해 바깥까지만 배를 몰고 나가면 됩니다. 임신중지 조치를 하고는 여성들을 다시 처음 배에 탔던 항구로 데려다줬습니다. 네덜란드 법, 그 나라의 법 어느 하나 어기지 않았습니다.

스프 아웃로오션 8화
2001년 '위민온웨이브'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처음 항해에 나섰을 때,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출발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떠나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위민온웨이브'는 그때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과테말라, 멕시코 등을 다녔습니다. (이 여정은 다큐멘터리 영화 「Women on Waves」로 제작됐습니다.)

 

'법의 공백'을 노렸다가 법 자체를 바꾸다

스프 아웃로오션 8화
논란도 불러왔습니다. 개인과 단체에 대한 비난과 함께 곰버츠는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법의 공백, 허점을 이용하는 무법 행위가 용납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위민온웨이브'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개인 문제로 치부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임신중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곰퍼츠는 "우리는 법을 어기려고 바다로 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여성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벌어지는 임신중지 조치는 줄잡아 5천3백만 건인데 이중 절반은 불법 시술이라고 합니다. 매년 최소 2만 3천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여성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게 '위민온웨이브'의 주장입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했던 나라 중 일부는 일정 기간 내 임신중지는 제한 없이 하도록 법을 바꿨습니다. 임신 중지의 제한적 합법화, 혹은 전면 합법화라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오직 '위민온웨이브'만의 공은 아니겠지만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웹 위의 여성들'까지... 한국의 낙태죄는 어떻게 됐을까

국경과 법의 경계를 넘어 여성이 자기 몸과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하다는 게 '위민온웨이브' 주장의 핵심입니다. 곰퍼츠는 2005년부터 '위민온웹(Women on Web)'이라는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 온 여성들에게 기부금을 받고 먹는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자, 이제 한국 이야기입니다.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위민온웨이브'의 배가 직접 갔던 곳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 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겁니다. 낙태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했던 건 이제 역사 속의 이야기로 남게 됐나 싶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특정 법률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합니다. 헌재는 1년 내에 법을 고치라고 했지만 국회가 기한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4년이 넘게 지난 지금, 형법상 낙태죄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났으니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임신중지를 어떻게 할지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어딘가에 방치돼 있는 셈입니다. 

한편 '위민온웹'을 통해 임신중지 약물을 받을 수 있었던 한국 여성들, 2018년 기준으로 2천5백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2019년부터 오히려 '위민온웹' 이용을 못하게 됐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위민온웹'에서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을 판매한다며 불법 사이트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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