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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세계 최고 '굴(Oyster)의 도시'였던 뉴욕,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스프칼럼] 10억 개의 굴을 목표로 한 거대 프로젝트 (글 : 김한송 셰프)

스프칼럼 김한송
최고의 '굴(Oyster) 시티'는 뉴욕이었다

뉴욕에는 많은 '굴'집들이 있다. 오이스터 바(Oyster Bar)라 불리는 곳들이다. 한국 사람들만큼 날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굴 하나만큼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즐긴다. 뉴욕이 과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굴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빌딩 숲으로 가득 찬 뉴욕은 사실 삼면이 바다-강에 둘러 쌓인 해안 도시다. 바다와 인접해 있다 보니, 자연스레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날것을 즐겨 먹지 않는 뉴요커들도 '굴'만큼은 언제나 생으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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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전문으로 다루는 레스토랑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뉴욕에서 '오이스터 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년 9월이면 '뉴욕 오이스터 위크(New York Oyster Week)가 열리는데, 이곳에는 동-서부의 다양한 굴들이 모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뉴욕의 굴은 부족하다. 이유가 뭘까?

1609년 영국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뉴욕에 도달했을 때, 뉴욕에는 22만 에이커에 달하는 천연 굴 생산지(Oyster Bed)가 있었다. 유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맨해튼 인근에 굴 암초가 너무 많아 배를 대기가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뉴욕은 '굴'의 도시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뉴욕 인근의 바닷물은 맑고 깨끗하여 다양한 해산물이 풍부했고, 그중에서 굴은 으뜸이었다. 정착민들은 엘리스와 리버티 섬을 각각 '리틀 오이스터 섬'과 '위대한 오이스터 섬'이라고 불렀다.

19세기 뉴욕시가 번성할 당시, 뉴요커들은 굴을 즐겨 먹었다. 거리의 노점상들이 핫도그를 팔았던 것처럼, 거리에서 굴을 까서 판매하는 '굴 카트'가 성행하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델모니코스(Delmonico's)'에서는 '하프셸'이라 불리는 굴요리를 판매하였는데, 굴 껍데기를 반만 벗겨낸 뒤 차가운 얼음 위에 올려 여러 소스와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지금의 오이스터 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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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들은 당시, 하루에 100만 개의 굴을 먹어치웠다는 뉴스도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굴을 먹었다. 이렇게 먹은 굴 껍데기는 분쇄되어 뉴욕의 도로 포장이나 빌딩 건설 등에 쓰였다. 다운타운의 '펄스트리트'는 실제 '굴 껍데기'로 포장한 도로로 알려져 있어 유명하다. 또한 트리니티 교회를 지을 때나, 화덕 피자를 구울 때도 굴 껍데기를 넣어 활용하기도 하였다.
 

'빅 애플' 이전에 '빅 오이스터'였던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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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뉴욕에서는 전 세계 굴의 50% 이상이 채취되어서 미국 내로 유통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많은 양의 굴 소비는 사업적으로는 번성을 이루었지만, 환경적으로는 재앙을 가져왔다. 급속한 도시화를 이루던 뉴욕시는 해안 지역을 매립하는 사업을 진행하는데, 이 때문에 굴이 서식하는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 (실제 1600년대부터 2010년까지 맨해튼은 매립으로 인해 20%의 면적이 넓어졌다.)

늘어난 면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는 더 이상 굴을 생산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06년 뉴욕에서 굴은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고비를 맞았던 뉴욕 굴 시장에 엄청난 게 시작됐다.

이름하여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BOP : Billion Oyster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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