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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할 땐 이 친구랑 어때요?…'내 식탁 위의 책들' [북적북적]

'혼밥'할 땐 이 친구랑 어때요?…'내 식탁 위의 책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82 : '혼밥'할 땐 이 친구랑 어때요?..'내 식탁 위의 책들'
"식탁 위의 책들. 이 은밀한 쾌락을 완성하는 책은 정해져 있다. 낯선 손님은 나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한다. 수십 번도 아닌 수백 번 읽어서 이미 외운 지 오래인 책들만 올라오고, 책장이 저절로 펼쳐질 정도로 같은 곳만 계속 본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

혼자서 밥이나 뭐 다른 걸 먹을 때, 먹는 거 말고는 뭐를 하시나요?
1) 먹는 데 집중한다
2)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영상을 본다
3) 책이나 뭔가를 읽는다

저는 세 번째입니다. 건강한 식습관은 첫 번째라고 하지만 먹는 것도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면, 먹으면서 뭔가를 읽는 것도 하루의 소소한 낙 중 하나거든요. 제 밥친구는 책이나 뭔가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거나 읽진 않고 먹는 것과 관련된 걸 주로 봅니다. 주로 읽게 되는 것들이 있죠. 요리 장면과 음식 묘사가 특히 탁월했던 하루키의 에세이류나 박찬일 작가나 요네하라 마리의 책들, 허영만 화백의 식객도 꽤 즐겨봤던 제 식탁 위의 책들이었습니다. 전자책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요.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 서문을 읽으면서 놀랐습니다. 이건 내가 썼나... 그러기엔 너무 잘 썼는데... 10여 년 전에 출간됐다는 걸 감안해도 재미있습니다. 정은지 작가의 '내 식탁 위의 책들'입니다.
"작은 소망이라면 독자들이 이 책을 들고 식탁 앞에 앉는 것이다. 종이 위의 음식들이 나에게 준 흥분과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은 꾸역꾸역 넘겨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가장 은밀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포르노의 미덕은 누가 뭐래도 실용성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푸드 포르노 중독자였다'에서

이 책에는 모두 스무 권의 '식탁 위의 책들'과 그 책에 등장하는 음식 혹은 먹는 장면이 녹아서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읽었거나 알고는 있는 책들이었는데, 생소한 책도 몇 권 있었습니다. 기대됩니다. 제 식탁 위의 책들과 겹치는 것도 몇 권 있었습니다.
"15년 전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는 토끼정을 찾아 일본으로 가겠다고.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런 가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끼정은 너무 근사하다. 너무나 하루키적으로 근사한 이야기라서 사실일 리가 없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허구를 지어내는 일상을 가진 사람 아닌가. 내가 홀린 건 그 허구였고, 그 진위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지 않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낚인 사람 클럽'에서(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우리는 왜 기내식에 매혹될까. 나를 홀리는 것은 여행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대다. 왜냐하면 환상은 언제나 현실보다 우월하며, 기만은 필연적으로 진실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비행기에서 싸구려 쟁반을 받아 들고 플라스틱 뚜껑을 여는 순간이다. 사각 쟁반 위에 우주가, 자기 완결적 세계가 있다. 기내식은 여행의 완벽한 축도인 동시에 여행자의 만다라다."
-'사각 쟁반 위의 만다라'에서(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지금처럼 '먹방'이 대세가 되었다가 약간 시들해진 느낌도 없잖은 때 훨씬 이전에 나왔던 책입니다. 2012년 1쇄가 나왔으니 앞서 갔다고 할까요, 아니면 당시에도 이미 '푸드 포르노'라는 용어가 있듯이 만개했던 걸 제가 몰랐던 걸까요. 영상이 당연히 더욱 자극적이고 생생하겠지만 활자 너머의 상상이 더해지면 상상 그 이상이 되기 때문에 '책으로 읽는 맛'의 쾌감이 있고 '미식 독서'가 가능한 듯싶습니다.

다들 한 번씩 읽곤 하는 '작은아씨들' 번역판에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하는 '라임 피클을 쫓는 모험'은 흡사 프라하의 소녀시대에 알았던 '할바'의 정체를 성인이 된 후 추적하는 요네하라 마리를 연상케 합니다. 다음 혼밥 친구로, 식탁 위에 올려두고 종종 찾을 책으로 매우 적절하단 생각을 다시금 했습니다.
"열두 살짜리 미국 여자애들이, 이 시고 맵고 짠 걸 날마다 학교에 들고 가서 책상 서랍에 숨겨 두고 틈날 때마다 빨아먹었다고? 국물이 뚝뚝 떨어질 텐데 맨손으로? 말도 안 돼. 다시 인터넷을 뒤지니 전 세계에 비슷한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라임피클의 정체는 로리가 어째서 에이미와 결혼했느냐와 함께 '작은 아씨들' 애호가들을 괴롭히는 양대 의혹이었다."
-'라임피클을 쫓는 모험'에서(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출판사 앨리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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