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스프 뉴스페퍼민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http://img.sbs.co.kr/newimg/news/20230526/201788917_1280.jpg)
지난달 뉴욕타임스에는 ‘2023년 뉴욕 100대 레스토랑’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유명한 음식 비평가 피트 웰스(Pete Wells)가 고른 최고의 식당 목록의 최신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맛집 가보는 걸 좋아하는 저희 부부가 가 본 식당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습니다. 시간이 되면 외식할 때 참고하기로 하고 기사 링크를 저장해 뒀다가 얼마 전에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 한 곳을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식당 분위기도 밝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음식 맛이 별로였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피트 웰스가 순위를 선정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던 걸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저 저희 입맛에 안 맞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좋은 평을 못 받았을 뿐 그 식당은 여전히 지금 뉴욕에 살거나 뉴욕을 찾는 사람들이 꼭 가볼 만한 훌륭한 식당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맛집이든 물건이든 가이드 투어든 추천 없이는 무언가에 돈을 쓰기가 꺼림칙한 세상이지만, 이렇게 추천이 나한테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연히 순위나 평점, 추천을 탓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데, 천차만별인 식당들에 과연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순위를 매길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순위가 잘못된 게 아니라, 굳이 순위를 매기지 않아도 되는 대상에 억지로 순위를 매기는 세태가 문제 아닐까요?
우연히 찾아온 마법 같은 순간
길을 잘 찾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길치에 가까운데 용케도 별로 헤매지 않고 와이너리에 도착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 포도 농사짓고 와인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설레는 마음으로 와이너리의 초인종을 눌러봤지만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만 와이너리 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알아보고 올 걸. 먼 길 달려왔는데 허탕 쳤네.’
보통 둘 중에 한 명은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꼼꼼히 짜는 편인데, 어쩌다 보니 이 때는 하필 저희 둘 다 안일했습니다. ‘가보면 뭐라도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한 거 없는 낭비한 날로 기록될 위기였습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자, 여름날 긴 해도 뉘엿뉘엿 질 채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동사무소, 아니 읍사무소, 아니 면사무소보다도 훨씬 작은 관공서처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직원 세 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이탈리아어보다는 그분들의 영어가 조금 더 나아서 영어로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평소 이 동네 와인을 정말 좋아해서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와이너리 문은 잠겨 있고,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속상하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을 겁니다.
저희 얘기를 들은 관공서 직원들은 자꾸 건물 지하에 있는 와인 창고에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와인 상자 쌓아둔 거 봐서 뭐 하라는 건가 싶었죠.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답답한 표정을 한 직원 한 명이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고는 앞장섰습니다. 그렇게 따라 내려간 건물 지하는 그냥 와인 창고가 아니라, 동네 와인 협회에서 운영하는 와인 창고 겸 시음실(tasting room)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은 곳에 뜬금없이 나타난 저희 부부는 그날의 아쉬움을 잊고도 남을 최고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피에몬테 지방 와인에 관한 한 아마도 세계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소믈리에 아저씨는 한 병 한 병 설명해 주면서 와인을 잔에 넘치도록 따라 주고는 나중에 와인을 몇 병 샀더니, 시음료는 받지도 않았습니다. 가격표가 떡하니 붙어있는데도, 심심하던 차에 자기랑 말동무해 준 보답이라면서 말이죠. 뭔가 꿈을 꾸는 듯한, 마법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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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와 평점, 후기가 여기저기 넘치는 세상입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돈을 낭비하지 않고 좋은 제품을 사고 싶다면 제품평부터 서비스 이용 후기에 이르기까지 순위와 평점을 열심히 공부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았다가 돈과 시간을 낭비해 불행해지더라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물건 사기 전에, 돈 쓰기 전에 평점, 후기 열심히 읽고 꼼꼼히 비교하는 데 들인 시간과 행복이 비례하는 게 맞나요? 여기에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죠. 모든 측면을 꼼꼼히 비교해서 정말 좋은 제품을 싼값에 사고 나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데 들이는 품과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작가 레이첼 코놀리도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자신과 친구 댄을 비교하며 그 점을 이야기합니다.
‘포모(FOMO)’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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