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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최고'만을 좇는 세상의 횡포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뉴욕타임스 칼럼] By 레이첼 코놀리

스프 NYT 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레이첼 코놀리는 작가이자 비평가다.
 

내겐 댄 시먼스라는 친구가 있다. 댄은 '최고'를 가려내고 찾아내는 데 정말 진심인 사람이다. 삶의 목표가 여기에 맞춰져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댄은 '올해 최고의 헤어드라이어 9개'를 소개한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읽는다. 구글 평점이 별 4개 언저리인 그저 그런 바에서 술을 마시는 건 생각만 해도 어깨가 축 처진다며 손사래를 친다. 주말에 멀지 않은 데로 머리 식힐 겸 다녀오는 여행을 위해서도 댄은 스프레드시트를 잔뜩 열어놓고는 온갖 걸 다 분석하고 비교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주변에도 이런 사람 꼭 한두 명 있을 거다. 어쩌면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댄이 바로 그렇다. 댄은 캘리포니아 출신인데, 캘리포니아는 자기 최적화를 끝없이 탐구하는 이들과 순위와 평점을 매기는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인터넷 생태계의 본거지이기도 하니, 댄의 고향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댄은 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삶에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을 자세히 짚어내는 감각을 지녔다. 그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맛집, 술집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느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정리해 둔 최신판 리스트를 늘 가지고 있는 거로 유명하다. 훌륭하다는 평을 받지 못한 곳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절대 가지 않으며, 미니 냉장고부터 가벼운 등산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의 제품평, 리뷰를 수집하는 데 드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최근 그가 '최고의 버터'를 먹으려고 프랑스산 버터를 정성스레 냉동해서 영국까지 가져온 다음 녹여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인지 물었는데, 놀랍게도 진짜였다.

댄은 좀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다들 순위와 평점에 신경을 쓴다. 그렇지 않다면, 올해 최고의 청소기를 뽑고 순위를 매긴 글들은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순위와 평점에 신경 쓰는 문화가 어디서 시작돼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소비자로서 매우 시시한 선택지에 어울리지 않는 미사여구를 붙여놓는 것도 그렇고, 반대로 소설이나 대학교, 어디에 살아야 할지 등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가 우선 고려돼야 할 사안을 두고 '객관적인 순위'를 매겼다고 포장하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댄에게 직접 왜 그렇게 '최고'에 집착하는지 물어봤다. 댄의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남보다 많은 정보를 모아 아는 척하거나 좋은 걸 골랐다고 으스대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단순한 자기 최적화도 목표가 아니었다. 댄은 이렇게 말했다.

"건강한 습관이라고 말하긴 좀 뭣하지만,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게 뭐냐면, 내 주변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알차게 쓰게 해주는 거야. 그러려면 그냥 어느 식당이 맛집이니 거기 가보라는 데서 그치면 안 되잖아. 가서 어떤 걸 꼭 주문해야 한다는 데까지 가는 거지. '진짜 거기까지 가서 그 메뉴를 시키겠다고? 다른 모든 메뉴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데? 진짜 그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계속 묻게 돼. 이 질문은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거야."

마치 댄은 친구들에게 행복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장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말 프랑스에서 얼려 온 최고급 버터를 먹으면 행복해지나?

사실 우리는 순위에 아주 익숙하다.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and Sound)는 1952년부터 10년마다 역대 최고의 영화 목록을 업데이트했다.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대학교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도 1983년의 일이다. 올해 발표된 순위를 보면, 미국 최고의 대학은 프린스턴, MIT, 하버드 순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다.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는 2003년부터 역대 최고 음반 500선을 발표하고 있다. 지역 신문이나 잡지에도 「올해 문 연 레스토랑 가운데 꼭 가봐야 할 맛집」 같은 기사들이 수십 년 전부터 올라왔다. 치과, 병원, 학교 추천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문사에서 정한 순위를 두고는 항상 말이 나오곤 했다. 추천에 공감한다는 이들과 동의할 수 없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기도 하고, 신문사나 잡지사로 항의가 빗발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에 스며든 약 20년 전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동의하기 어려운 '엉터리 순위'를 발표한 신문사에 항의 편지를 쓰는 대신 내가 직접 제대로 된 순위를 만들어 올릴 수 있게 됐다. 1999년 즈음 이베이(eBay)와 같은 초기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온라인 리뷰가 처음 등장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좋은 가게나 식당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추천을 한데 모은 서비스 옐프(Yelp)는 2004년에 처음 선보였다. 구글은 2007년에 리뷰 기능을 달았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전에 온라인 리뷰나 옐프, 구글 평점부터 찾아보곤 한다. 평점을 주고 후기를 남기며, 순위를 매기는 일은 어딘가 책임 있는 소비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막 개업한 가게에 가면 가게 주인은 오늘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면, 구글에 평점 잘 남겨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는다. (나도 인터넷 여기저기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미용사에 관한 칭찬으로 가득한 후기, 추천을 남겨놓는다.)

순위나 목록을 죽 늘어놓는 글은 상대적으로 쉽게 써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고, 쉽게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으며, 그만큼 광고도 잘 붙는다. 버즈피드(BuzzFeed)가 한창 잘 나갈 때는 "새끼 판다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50가지 이유" 같은 글로 온라인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기존 언론사들은 자체 제휴 링크를 만들어 대응했다. 뉴욕 매거진의 더 스트래터지스트나 뉴욕타임스의 와이어커터에 가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소비재, 물건의 순위, 평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설치하기 쉬운 텐트 제품들, 가성비 좋고 소재가 부드러운 잠옷 30선, 50달러 이하 면도기 중 가장 매끄러운 제품 17가지, 방수되는 서류 가방 7개 따위의 글이다.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을 두고도 용케 순위를 매겨놓은 글이 많다. 지난 100년간 최고의 소설가 100인, 부자 순위가 그렇다. 30세 이하 젊은 리더 30인 따위의 순위표도 지겹도록 반복해서 나온다. 이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도 순위를 매겨 정리해야 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두고 직접 평점을 매기고 목록을 나열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 나는 남동생 라이언에게 이에 대해 물어봤다. 라이언은 Z세대에 관한 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터넷에서) 모든 것의 순위와 평점을 매기는 데 익숙한 Z세대가 이러한 순위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동생이 귀띔해 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라이언은 최근에 직장에서 동료들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루는 점심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뭘 할 때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고 점수를 매기는지 서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 동료는 최근에 본 드라마나 참고한 레시피 등 모든 것에 자체적으로 평점을 매기고 순위를 내는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동생이 해준 말이 충격적이었다.

"근데 아마도 제일 뜨악했던 건 따로 있었어. 그 친구의 친구가 뭐까지 순위를 매기냐면, 잠자리를 가졌던 파트너에 대해서 잠자리가 어땠는지 일일이 평점을 매기고 기록해 둔대. 그 얘기를 듣고는 다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는데, 심지어 우리 중에 자기도 그런다고 태연하게 말한 사람도 있었어."

잠자리 파트너의 평점을 매겨 기록해 두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 없을 테니 차치하고, 내 친구 댄 시먼스 정도로 순위와 평점에 진심인 사람도 많지 않을 거다. 그래도 순위와 평점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바로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게 많아도 너무 많은 세상에서 쓸 만한 지표가 돼주기 때문이다.

인터넷 때문에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면서 환각 또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부작용이 일어났다. 어딘가에 노출된 나의 정보, 선호 때문에 나를 향한 맞춤형 광고가 지겹게 나를 따라다니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그 물건을 사도 광고는 멈추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 관해 너무 혼란을 부추기지 않는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짐짓 점잖은 척하며 이렇게 말하는 거다.

"이 모든 게 평점 조작 신드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기술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이들이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산만함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 우리를 자본주의의 심연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이때 온라인 평점과 순위는 우리에게 통제권을 다시 손에 넣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온라인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사는 나 자신을 매트릭스 안에서 기계의 조종을 받는 장기의 졸처럼 느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플라스틱 장난감 상자 안에 든 인형처럼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하고, 때론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운명을 사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저 장난감 인형처럼 정해진 대로 사는 데는 가급적 내 시간을 안 쓰고 싶다. 그렇다고 한번 쓰면 바로 망가져 버리는 싸구려 제품을 사고 싶지도 않으니, 내 시간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적당히 쓸 만한 제품을 사는 게 목표다. 이 목표를 이루는 데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순위, 평점 기사들은 쓸모가 있다.

누구에게나 전문적인 식견이나 경험이 없다고 느끼는 분야는 이것저것 많기 마련이다. 듀크대학교에서 경영과 조직학을 가르치는 릭 래릭 교수는 이때 다른 사람들이 매겨놓은 평점이나 순위를 보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래릭 박사는 소비자들이 (다른 사람이 매겨놓은) 순위를 신뢰하는 경향, 특히 '최고'를 좇는 이유를 연구해 왔다. 그는 사람들이 순위와 평점을 이상하리만치 굳게 믿는다고 말한다.

"화장실 청소할 때 쓰는 세제 같은 제품만 해도 순위를 매기는 순간, 최고로 꼽힌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이 무려 20%나 증가합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고 1위라는 딱지만 본 반응이 그래요. 1등과 2등을 단순히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일종의 편안함을 느껴요. 순위가 나와 있으면 결정하기도 그만큼 쉬워지고, 스스로 내가 아무거나 고른 게 아니라 최고를 선택한 거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죠."

사실 화장실 청소 세제 가운데 1등으로 꼽힌 제품과 아깝게 1등을 놓친 2등 제품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거다. 5등과 6등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즉 '최고의 제품'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엄격한 품질 평가를 뚫고 쟁취한 것이라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골랐다 혹은 그저 이상한 데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줘 안심시키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스와스모어 칼리지 심리학과의 명예교수인 배리 슈와르츠가 고안한 소비자 분류 기준에 따르면 댄은 '최대한 뽑아내려는 사람(a maximizer)'의 전형이다. 슈와르츠 교수는 저서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에서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가 끝없이 주어지는 상황이 낳은 문제에 관해 살펴봤다. 슈와르츠 교수의 소비자 분류표에는 '적당히 만족하는 사람(a satisficers)'도 있다. 정말 훌륭하다고 하기엔 좀 모자라더라도 평균 이상의 괜찮은 식당, 가장 좋아하는 노래 목록 중에 세 번째쯤 있을 법한 노래, 아마존에서 검색했을 때 첫 화면에 뜨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대의 토스터를 사고 나서 그럭저럭 만족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적당히 좋은 거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가 나올 때까지 찾아 헤매는 이들과는 확실히 대비된다. (다만 '적당히 만족하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도 정말 열정적으로 신경 쓰는 품목이나 제품, 서비스가 한두 개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때는 이 사람 내면에 있는 '최대한 뽑아내려는 사람'의 자아가 발현된다. 즉 우리 안에는 누구에게나 일종의 댄 시먼스가 있다는 말이다.)

'최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는지만 봐도 나와 댄은 아주 다르다. 나는 늘 '대충 과제를 처리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사안을 대한다. 예를 들어 토스터가 고장 나면, 나는 당장 아침의 루틴이 깨지는 성가신 상황을 걱정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댄은 똑같이 토스터가 고장 난 상황을 나와 달리 기회로 여긴다. 즉 댄에게는 좀 더 빨리, 맛있게 토스트를 만들어 주는 성능 좋고 튼튼하며, 보기에도 예쁜 토스터를 새로 장만해서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 기회인 거다. '최고의 토스터'를 찾는 데 들이는 품과 시간을 나는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댄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아니, 시간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즐겁게 여러 제품을 비교해 본다.

우리 사이의 차이를 부각하긴 했지만, 실은 우리 둘의 성향에는 보기보다 공통점이 많다. 두 가지 모두 인터넷 때문에 만들어진 압도적인 소비자 환경에 나름대로 내놓은 각자의 대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쪽을 택했다. 끝없이 무언가를 비교하고 골라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숨어버린 셈이다.

반대로 댄은 인터넷이 가져다준 기회를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십분, 백분 활용한다. 내게는 당연히 내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사실 더 좋은 토스터를 사려면 댄처럼 해야 한다. 단지 나는 더 좋은 토스터를 집에 들여놓으면 삶이 과연 얼마나 더 나아지는지 확신하지 못할 뿐이다. 토스터만 좋은 것 쓴다고 삶이 정말 나아질까? 그렇다면 더 중대한 문제, 더 주관적인 사안들, 토스터보다 훨씬 더 사람 사이 관계가 달린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주변에 자기 삶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적당히 만족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지녔다. 한 번은 한없이 지혜로운 내 미용사가 내게 열 차단 스프레이 제품을 하나 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뭐를 써야 할지 잘 모르니, 괜찮은 제품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

"아, 좋은 제품 쓰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3파운드 하는 싸구려를 사시면 안 되겠지만, 25파운드나 주는 것도 비추입니다."

심지어 미용실에서 25파운드 하는 고급 스프레이 제품을 팔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25파운드짜리는) 쓸데없이 비싸요. 한 7파운드 정도 주면 충분히 쓸 만한 제품 사실 수 있어요. 적당히 중간쯤 가는 제품이면 되죠. 와, 저 판촉사원 해도 잘하겠는데요! 우리 미용실 입장에서 보면 물건 파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만요, 하하."

슈와르츠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최고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사람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생하는 건 물론이고, 결정하고 나서도 그 결과에 쉽사리 만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 그런 사람들은 임상적으로 우울증의 경계에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의미에선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는 일이죠."

그러나 현명한 선택이라는 게 말이 쉽지 실천에 옮기는 건 절대 쉽지 않기도 하다. 헤어스프레이를 사는 거야 제품을 비교해서 더 나은 걸 고르기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휴가'나 '은퇴하기 딱 좋은 시점'을 무슨 수로 분석해 가려낸단 말인가?

이 주제에 관해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내가 15살 때 갔던 가족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트립 어드바이저 같은 사이트도 없었으니, 여행 계획을 짜는 일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자랐는데) 친척 어른 중에 가톨릭 신부로 사시면서 모은 돈 일부를 우리 부모님께 물려준 분이 있었고, 부모님은 그 돈을 로마에 가족 여행 경비로 썼다. 아버지는 꼼꼼히 가족이 먹을 식사 계획을 끼니별로 다 짰다. 그러나 태양이 작열하는 무더운 여름날 힘들게 찾아간 식당마다 문을 닫았고, 우리 가족은 모두 지쳐버렸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여행 책자는 너무 낡아서 최신 정보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한여름 로마는 쥐 죽은 듯 한산했다. 아버지는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아무 광장에서 풀이 죽어 있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는 여행 책자에 나온 다른 식당을 찾아 우리를 데리고 갔다. 사실 난 그때 아버지의 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아무거나 먹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또래 이탈리아 친구들과 어울려 분수 옆에서 와인이나 같이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나도 사실 기본적으로 추구하던 건 같았다. 그 여행은 우리에게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가급적 원하는 걸 다 얻어내고 싶었다. (다만 원하는 게 달랐을 뿐...)

이제는 여행 책자가 최신 개정판이 아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요즘엔 모두가 예전 로마에서 우리 아빠처럼 휴가와 여행을 대하는 것 같다. 즉, 식사와 관광 일정을 그야말로 빈틈없이 짜서 시간이나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틈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 말이다. 사실상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여행 책자를 모두가 손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여행 중에 무언가를 찾아보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어디를 가려는 건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연히 아주 멋진 걸 발견하게 됐을 때의 행복함, 뿌듯함, 만족감, 안도감과 같은 감정은 좀처럼 쉽게 잊을 수 없다.

게다가 무언가 완벽한 것을 너무 오래 찾다 보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그 환상 속의 목표가 점점 더 추상적으로,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무언가 더 좋은 것을 계속해서 원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이 본능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더 나은 것을 찾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무기력하게 좇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온라인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이들 가운데 정확히 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모두가 각자의 이상형을 직접 찾기 위해 검색에 최적화된 환경은 역설적으로 더 큰 실망과 외로움만 낳고 말았다.

주일 학교 선생님이 해주실 듯한 구닥다리 같은 말이긴 하지만, 좋은 삶을 사는 비결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슈와르츠 교수는 같은 말을 조금 달리 표현한다.

"우리는 최고를 찾아낼 수 있는 거라 여기고 보물찾기 하듯 달려들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최고의 보물은 우리 마음먹기에 달린, 우리가 만들어 내는 거죠."

구글에 '가장 이상적인 자녀의 수' 같은 걸 묻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데까지 순위나 평점을 매기는 세태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만약 사람들이 정말로 인생에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인터넷의 순위나 평점을 참고한다면, 그건 저 질문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인터넷에서 정답을 쉽게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인생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제는 결혼식에 하객을 몇 명 초대하는 게 좋은지, 어디 살면 좋을지, 살기에 가장 좋은 나이(36세라고 한다)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에는 저 질문들에 답이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질문과 답변의 순서가 거꾸로 돼 있다는 데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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