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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프랑스 '냄비 시위'와 광화문 '확성기 시위'

마크롱의 대국민 연설이 방송된 4월 17일 파리에서 냄비 등을 들고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AP=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 맞춰 시작된 '냄비 시위'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도심을 마비시켰던 '쓰레기 시위'가 마무리되는가 했는데, 주방 도구인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냄비 시위'로 번졌습니다.

지난 4월 17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개혁법을 공포하고, TV로 대국민 연설을 생중계하는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냄비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어 19일 마크롱 대통령은 알자스주 뮈터솔츠를 방문한 자리에서 냄비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시위대는 "마크롱 대통령이 귀를 막고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렸고, 마크롱 대통령은 "이 분노는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면서 "나는 귀를 막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동부 셀레스타에서 연금개혁 반대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셀레스타=A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나 "냄비로는 프랑스를 전진하게 할 수 없다"면서 연금 개혁을 추진할 뜻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냄비 시위'의 기원은?

냄비 시위는 중남미 국가에서 반정부 시위 때 자주 등장합니다.

"텅 빈 냄비처럼 내 뱃속도 비었다"는 뜻으로 시위대가 냄비를 두드렸다는 겁니다. 스페인어로 냄비를 뜻하는 카세롤라(cacerola)와 두드린다는 의미인 아소(azo)가 합쳐져 '카세롤라소(cacerolazo)'로 불리는데, 원조는 프랑스입니다. 1832년 루이 필리프 1세의 경제 실정에 항의한 프랑스 시민들이 프라이팬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이 최초라는 겁니다.
샤리바리 풍습을 묘사한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출처 : 위키피디아)
이 냄비 시위는 중세 유럽과 북미 지역의 풍습인 Charivari(샤리바리.차리바리)에서 비롯됐는데, 공동체에서 명예롭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을 끌어내 냄비 등을 두드리며 온 동네를 돌면서 모욕을 주는 행동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과거 '조리 돌림'이라는 처벌과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공동체에 이롭지 못한 일을 했기 때문에 모욕을 줘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휴대용 음향 장비' 소지 금지

냄비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던 지난달 20일. 프랑스 남부 에로(Herault) 주당국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휴대용 음향 장비" 소지를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휴대용 음향 장비"에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포함해 부부젤라, 확성기 등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 날은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교사 월급 인상을 비롯한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중학교를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에로 당국은 냄비를 갖고 있으면 학교 근처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조치까지 취해, 시위대의 가방을 일일이 검사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습니다.

대통령의 학교 방문을 앞두고 경찰이 학교 근처에서 냄비 소지를 금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 정치인들은 "냄비를 금지하면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제는 (연금 개혁법이 아닌) 냄비 금지법을 도입하는가"라면서 공세를 높였습니다.

프랑스 에로 주당국이 휴대용 음향 장비 소지를 금지시킬 수 있었던 근거는 "테러방지법에 근거한 질서 유지"입니다. 과거 계란이나 토마토를 얼굴에 맞기도 했던 마크롱 대통령에게 냄비나 프라이팬이 날아올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입니다. 즉, 냄비나 프라이팬이 '흉기'로 쓰일 수 있는 만큼 '질서 유지'를 이유로 금지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경찰봉을 휘두르는 모습 (AP=연합뉴스)
질서 유지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될 때는 프랑스 경찰의 특별 조직 '브라브 엠(Brav-M)'이 즉각 개입합니다. 이들은 최루탄과 몽둥이까지 동원하며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는 것을 막는 일을 합니다. ▶ 관련 기사

'테러 방지' vs '집회의 자유 침해'

그런데 지난 25일 마크롱이 방돔 Vendome시를 방문할 때는 주 당국이 같은 조치를 내렸지만 행정 법원으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습니다. 테러방지법을 적용할 만큼 "테러 행위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특징짓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사는 강조했습니다. 냄비 시위 금지에 대해서는 프랑스 내에서도 이렇게 '테러 행위 방지'냐 '집회의 자유 침해'냐를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프랑스의 냄비 시위를 살펴보면 과거 우리가 꽹과리를 치며 시위하던 모습과 분위기가 아주 비슷합니다. 축제 후 뒤풀이 같은 느낌도 듭니다. 프랑스 신문들은 그래서 이 냄비 시위를 '냄비(casserole)'와 '축제 행렬(parade)'을 합친 "casserolade"로 쓰고 있습니다. 냄비를 두드리며 '악마의 악기'라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는 부부젤라까지 불어 대긴 하지만 그 소음은 대형 확성기를 쓰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애교' 정도로 보입니다.

최근 광화문에 나갔다가 시위대의 엄청난 확성기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시민들이 많으실 겁니다. 귀를 찢는 듯한 소리에 머리가 멍해지면서 그저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근처 직장인들은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제대로 근무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능률이 오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로를 막는 시위, 교통 점거 시위는 지각 소동을 부를 뿐이지만 이 소음은 거의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소음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하니, 소음이 우리 삶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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