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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왜 안 잡아가느냐고 10대들마저 묻고 있다

[마약팬데믹] ② "결국은 아이들의 불행이 마약의 시발점"

스프 마약 팬데믹 2편
"이상해요, 제 몸이. 정신도 아픈 것 같아요. 아픈 게 맞겠죠?"

한 10대 마약 투약자가 취재진에게 건넨 말입니다. 이 말에는 상당히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경이 담겨 있습니다. 치료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지하고는 있지만, 병원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치료를 받다가 자칫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진 않을지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스스로가 중독된 상태가 아니라고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10대 투약자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취재진은 이들 10대들의 목소리를 눈높이에 맞춰 더 들어보기 위해 약 2주간 마약치료전문병원을 거의 매일같이 찾았습니다. 병원을 오가거나 입원 치료를 받는 그들에게 왜 마약을 투약했는지 물어봤더니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호기심이었고 두 번째는 내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이 기억했다'는 취지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첫 투약 이후 바로 병원을 찾은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무서움에 시달리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향해 두 손을 싹싹 빌며 다시는 약에 손대지 않게 해달라고 울부짖을 정도가 돼서야 병원을 떠올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치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줬다면 조금 더 빨리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중독"

마약
"영화 '친구'에 배우 유오성 씨가 말년에 마약에 중독돼서 삐쩍 말라서 이불 뒤집어쓰고는 막 헛소리하고 덜덜 떨고 있거든요. 그 정도 돼야지 마약 중독자인 걸로 아는 거예요."

-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장(마약중독전문치료병원)

이러한 수위의 중독은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중독 수준이고, 실상은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이미 중독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 견해입니다. 그러니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중독 초기 상태라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보다 이른 시점에 내원하는 쪽으로 판단할 수 있고 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마약 투약은 병리학적으로 '완치'의 개념이 성립하기 힘들어 평생에 걸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환자가 첫 투약 이후 수년간 단약 했다고 하더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있습니다. 일시적일 뿐 완치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독성학을 연구하는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장은 마약 중독의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눠 설명합니다. 첫 단계는 신체와 정신의 이상 반응을 뇌가 인지하는 단계, 두 번째 단계는 뇌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김 소장은 메트암페타민(필로폰)을 예로 들며 "처음 투약하면 불면증이 오고 짜증이 난다. 그런데 투약을 반복하다 보면 뇌가 그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인식하다 보니 끊임없이 약에 의존하는 비정상을 추구하게 된다는 취지의 설명입니다.

마약 투약 당시의 상황(mood)도 우리의 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김 소장은 "잘 참다가도 마약을 했던 그 장소에 가거나, 관련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그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마약을 한다"라며 "클럽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첫 투약을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는 어두운 분위기가 자극 요소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손을 대면 그 고통은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는 게 의료진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마약 투약으로 구속 수감되더라도 수감 상태에서 뇌를 가동해 상상으로 마약을 하고 출소 이후 머지않은 시점에 즉, 곧바로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사례가 빈번하다"라고 경고했습니다. 투약 물질에 따라 차이점은 있겠지만,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단 한 번의 투약 사실만으로도 병원을 찾아야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치에 가까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2~3년만 더 놀다 끊을게요"…빈약한 회복의 동기

10대의 경우 환경적, 심리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회복의 동기가 빈약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천영훈 원장은 그간 치료 경험을 토대로 "40대 중독자의 경우 직장도 다니고 있고 가정도 꾸리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회복의 동기를 갖기가 쉬워요. 아내가 있는데 내가 직장에서 잘리면 안 되잖아요. '내가 무언가를 위해서 이걸 끊어야 돼'라는 동기가 강하죠"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40대, 50대가 연령대별 면담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는 10대의 태도와 차이가 크다는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10대의 경우 의료진 면담 과정에서 어떤 말들을 했을까요. 천 원장 인터뷰를 통해 10대 중독자들의 면담 내용 일부를 간접적으로 전해 들어 봤습니다.
 
"아 원장님, 저 한 2~3년만 더 놀다가 그때 끊을게요."

"저 그냥 캐나다로 이민 가겠습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양질의 마약을 공급하는 정직한 딜러가 되고 싶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소위 '강남 8학군' 소속 학생도 마약 범죄에 연루돼 마약 공급과 유통을 사업 수단으로 생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실적인 회복 유인 동기가 떨어진다는 게 의료진들의 분석입니다.

10대 중독자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선생님 지금 클럽에 가면요, 약 다 하고 있어요. 근데 왜 이거를 못 잡고 있죠. 안 잡나요.' 저한테 물어볼 정도거든요. 애들이 보는 세상에서는 다 하고 있는 거예요."

-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장(마약중독전문치료병원)

SBS는 국과수와 함께 지난해 10대 마약 투약자들을 전수 분석해 봤습니다.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감정이 의뢰된 10대는 1,290건. 이 가운데 양성 반응이 나온 290명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투약자들은 더 많겠죠.

국과수에서는 마약 투약자의 경우 표면적으로 집계된 인원의 30배를 어림잡아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1,290건도, 290명도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아직 그렇다고 대부분의 10대가 마약에 만연하게 노출됐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수치입니다.

'마약 팬데믹'이 도래하고 나서 대책을 찾는다면 그땐 정말 늦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290명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때입니다. 왜 안 잡아가느냐는 아이들의 외침을 그저 치기 어린 말로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마약중독=질병…팬데믹 수준 치료 인프라 필요"

"우리가 이걸 팬데믹으로 논의할 수 있느냐는 건... 미국에 있는 필라델피아 같이 그런 데는 팬데믹이라 볼 수 있죠. 그러면 우리나라가 그 정도인가라고 보면 저는 맞다고 봐요. 다만 그게 아직은 좀 약한 쪽에 있는 메스암페타민이나 대마나 합성대마 이쪽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거다, 그게 5~6 년 후면 분명한 사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 김선춘 국과수 대전연구소장

SBS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선춘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김 소장이 언급한 건 필라델피아 일대에서 펜타닐에 중독된 채 거리를 활보하는 미국 사례가 빈번하다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제가 수면으로 표출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김 소장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 소장이 특히 10대 마약 투약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우리 미래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10대가 20대가 됐을 때, 30대가 됐을 때 중독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한국의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사회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 소장은 전염병과 마약 중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스프 마약 팬데믹 수정본(오전11시5분)
이들을 수용하거나 치료하고 재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나 인프라가 충분한지를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마약중독치료전문병원은 전국에 단 2곳. 그것도 한 병원 당 중독자들을 돌볼 수 있는 마약중독치료 전문의는 한두 명 안팎입니다.

게다가 중증환자들을 접해야 하는 간호 인력은 한 달에 7~8명씩 그만두고 있습니다. 예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영훈 원장은 "마약 중독 치료 전문병원이 너무 없고 그래서 거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를 2년째 듣고 있는데, (지원금은) 단돈 10원 한 장 오른 것도 없다."라고 증언합니다.
 

"아이들의 불행…그 불행을 노리는 범죄 집단"

공자왈 맹자왈 소리 같지만 10대들만 탓하기보다 궁극적으로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성세대의 진정 어린 반성도 필요해 보입니다. SBS가 만난 연구진과 의료진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천영훈 원장은 10대들의 스트레스도 주된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특성상 진짜 스트레스가 많고 아이들이 너무 불행한 나라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아이들이 이걸 탈출구로서 더 강박적으로 찾고, 더 광범위하게 노출이 되는 거거든요. 학업 스트레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데서부터 이 문제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근데 그 친구들에게 건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어떤 사회적인 인프라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까, 가장 가성비 높은 게 마약이다 보니 그걸 시작을 하게 되는 거고 그리고 그 안에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점점 이제 센 자극들로 자꾸 옮겨가기 시작을 한 거죠. 그런데 그 기간이 너무 짧다는 거죠."

-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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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SNS를 중심으로 활개 치는 범죄 집단입니다. 이러한 10대들의 불행을 빌미 삼아 이들에게 접근하거나 이들을 범죄의 표적으로 삼는 겁니다. 천영훈 원장은 특히 10대 여성에 주목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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