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스프] 논란의 '인어공주', 정작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파격적인 캐스팅 해놓고 서사는 제자리 걸음?

스프 주즐레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They lived happily ever afterward")

동화의 결말은 '해필리 에버 애프터'(Happily Ever After)로 요약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의 결말은 여느 동화와는 달랐다.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되고 만다.

물론 인어공주의 엔딩을 두고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는 비극론과 불멸의 영혼을 얻었다는 희극론이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의 시선에서 보자면, 이는 비극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더 크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해 온 디즈니는 1989년, 원작을 재해석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만들었다. 가장 큰 차이는 해피엔딩을 내세운 결말이다. 디즈니스러운 각색과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동화책 속 캐릭터들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소환해 냈다.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와 '언더 더 씨'(Under the Sea)로 대표되는 환상적인 OST도 글로벌 흥행에 불을 지폈다.

그로부터 24년, 디즈니는 '인어공주'를 실사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시켜 원작 팬과 더불어 동시대의 새로운 관객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리메이크는 캐스팅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타이틀롤 에리얼 역에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자 '원작 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원작자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의 인종을 특정하지 않았다. 빨간 머리의 백인은 디즈니가 앞서 만든 애니메이션을 통해 각인된 이미지다. 디즈니는 이를 고정관념이라고 반응했지만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 대한 호불호는 개봉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캐스팅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이고 각색의 방향성, 디즈니가 새롭게 추가한 설정에 대한 비판도 적잖다.

 

원작 파괴 VS 다양성 수용…'흑인 인어공주'를 둘러싼 두 시선

스프 주즐레
198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에리얼은 빨간 머리에 백인 여성, 2023년 개봉한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에리얼은 갈색 머리에 흑인 여성이다.

2023년 '인어공주'에 대한 거부감은 '원작 파괴 논란'과 '블랙 워싱'에서 기인한다. 스웨덴 동화 속 캐릭터인 인어공주가 백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이 이야기를 접한 이들에겐 붉은 머리의 백인이 원전에 가까운 인어공주의 이미지다. 여기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건 원작의 고유성을 헤치는 블랙 워싱이라는 의견이다.

디즈니의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와 원작 팬의 고정관념 대립에 가까운 이 논쟁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서로의 시선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나온 1837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온 1989년, 실사 영화가 나온 2023년의 대중 가치관과 인식, 취향이 같을 순 없다. 물론 잘 만든 고전은 시대를 넘어 힘을 발휘한다.

영화가 주목한 건 이미 입증된 고전의 매력이었고, 여기에 대중적 흡입력을 가미하기 위해 시대상을 반영한 '각색'을 시도했다. '흑인 인어공주'는 그 시도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경계와 벽이 사회 곳곳에서 충돌을 야기하고 있는 시대에 영화로나마 다양성의 문을 열어젖혔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인종 다른 칠공주·백인 왕자와 라이벌…스토리는 구태

스프 주즐레
'인어공주'는 원작의 일부 설정을 변형하고 스토리를 추가해 2023년 버전의 '인어공주'를 만들어냈다. 낯설고도 흥미로운 변주다.

영화는 카리브해의 가상의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바다 왕국 아틀란티카에는 흑인과 백인, 황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다. 인어공주(할리 베일리)의 아버지이자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라틴계 백인이며 일곱 공주는 모두 인종이 다르다.

흑인 인어공주가 짝사랑하는 왕자 에릭(조나 하우어 킹)은 백인이다. 에릭의 어머니는 흑인이다. 어린 시절 입양됐다는 새로운 설정을 가미했다. 애니메이션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바다새 스쿼틀은 여자로 성별을 바꿨다. 설정 전반에 걸쳐 인종과 성별, 출신의 다양성을 수용한 다원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인어공주'를 향한 가장 원색적인 비난 중 하나가 "주인공이 못 생겨서 몰입이 안 된다"와 같은 것이다. '공주=미인'이라는 것도 고정관념에 가깝지만, '인어공주'를 향한 이 같은 비난은 영화가 자초한 면도 있다. '흑인 인어공주'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감행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1989년의 서사에서 크게 나아가질 못했다.

스프 주즐레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키스를 해야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의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얼개는 그대로다. 여기에 백인 왕자를 두고 하필 백인 미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추가됐다. '백인 남성 구원자 서사'를 탈피하기 위해 울슐라를 무찌를 때 인어공주의 기여를 높이는 설정도 가미하기는 했다. 유지한 설정과 추가한 설정이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도 든다. 

'인어공주'는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안티들과 싸우는 숙명을 안고 세상에 나왔다. 이를 극복하려면 작품의 진보성을 이야기와 완성도 측면에서도 입증해야만 했다. 그러나 영화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비해 서사는 구태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보인다. 

'알라딘'(2019)의 성공 사례와 비교된다. '알라딘'은 지니 역할에 흑인 배우 윌 스미스를 캐스팅했지만, 영화가 개봉했을 때 미스 캐스팅 지적은 거의 없었다. 배우의 노련한 연기와 역량이 빛을 발한 경우였다. 기대 이상으로 돋보였던 건 자스민이었다. 원작보다 더욱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리며 서사의 진일보를 보여줬다. 결국 '알라딘'의 성공은 각색의 노련함과 유연함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실사는 드라마 부문에서 보다 큰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구현하는 캐릭터가 생동감을 높일 수는 있어도 감정 연기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것의 세밀함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인어공주'에서 에리얼과 에릭의 드라마 파트는 관객의 감정 몰입을 높이지 못한다. 두 배우의 아쉬운 연기 탓도 있지만, 캐릭터 간 감정적 동화를 보여주는 각본의 섬세함도 부족해 보인다. 이로 인해 육지로 나온 인어공주의 매력이 충분히 살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긴다. 

 

라틴 백설공주·흑인 팅커벨...시대상 반영일까

스프 주즐레
디즈니는 1994년 영화 '정글북'을 시작으로 2023년 '인어공주'까지 총 21편의 실사 영화를 발표했다. 흥행 성적과 평가는 작품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시대를 불문한 원작의 힘을 바탕으로 꽤 많은 재미를 봤다.

인기 원작의 재탕이라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재해석에 공을 들이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PC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24년 개봉 예정인 실사 영화 '백설공주'에는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만드는 영화 '피노키오'에 푸른 요정으로 흑인 배우 신시아 에리보가 캐스팅 됐고, '피터팬 & 웬디'에는 흑인 팅커벨 역할에 흑인 배우 야라 샤히디가 출연한다.  

출처 : 피노키오 티저 예고편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스프 배너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