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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과거 예술 작품을 수정하는 건, 검열일까 정치적 올바름(PC)일까?

[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검열 논란

스프 마부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책과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가장 핫한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아마 '인어공주'가 아닐까 싶어요.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에서 주인공 에리얼의 인종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면서 일각에서는 "원작을 훼손하는 과도한 PC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죠.

이보다 앞서, 로알드 달의 동화가 새로운 버전으로 출판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과거 창작자의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도 역시나 원작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부정적 목소리가 높았죠. 오늘 마부뉴스에선 이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작품을 어떻게 두는 게 맞는 걸까요?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과거 예술 작품의 수정, 검열일까 정치적 올바름일까?

Female이 Woman으로 바뀌었다

일단 이슈가 되었던 로알드 달 상황부터 정리를 해볼게요. 문제는 영국의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2022년 버전을 출간하면서 발생했어요. 독자 여러분도 알겠지만 이미 예전에 나왔던 작품들이 종종 개정되거나 표지를 새로 해서 출간되기도 하잖아요. 로알드 달 작품도 여러 번의 개정판이 있었는데 이번 2022년 판에서는 출판사가 로알드 달의 주요 작품들의 표현들을 삭제하고 수정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신체 묘사라던지, 정신 건강에 대한 묘사, 혹은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표현들을 손 본 거죠.

아래에도 정리해 두었지만 이런 식입니다. 로알드 달의 1983년 소설 '마녀를 잡아라(The Witchs)'의 2001년 버전에는 "Even if she is working as a cashier in a supermarket or typing letters for a businessman."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하지만 2022년 개정판에서는 슈퍼마켓의 계산원, 사업가를 위해 일하는 여성 대신 "top scientist"와 "running a business"라는 표현이 들어간 거죠. 영국의 텔레그래프 데이터를 살펴보면 로알드 달의 10개 작품의 505건의 표현이 수정됐습니다. 그중 아예 삭제된 표현은 78건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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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은 영국의 언론사 The Times가 선정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위대한 영국작가 16위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입니다. 아동 문학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칭호를 갖고 있기도 하죠. 아마 독자 여러분도 로알드 달의 작품을 적어도 한 번쯤은 본 적 있을지 모릅니다.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뮤지컬 영화로 나오기도 했던 <마틸다>도 로알드 달의 작품이고,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마찬가지거든요. 그 외에도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그렘린> 등의 동화를 썼어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꽤 문제가 됐던 양반이기도 합니다. 1990년 인터뷰에선 본인 스스로 반유대주의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영국 왕립 조폐국에선 로알드 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주화를 제작하려다가 이런 이슈들 때문에 취소하기도 했어요. 결국 2020년 말, 그러니까 한참 뒤에 와서야 로알드 달 유족들이 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예전 시대적 상황에서 쓰이던 표현이 많은 탓에 수정 사항은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출판사가 작품을 마음대로 고쳐도 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죠. <악마의 시>의 저자인 살만 루슈디는 로알드 달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검열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영국 총리실도 나서서 검열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요. 반면 일각에서는 시간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거 작품은 과거의 시선을 담고 있다

이슈가 된 건 로알드 달이었지만 사실 로알드 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은 표현은 예술 작품 곳곳에 남겨져 있으니까요. 미국의 아동 문학의 대가, 닥터 수스도 비슷한 논란을 겪은 바 있죠. 2021년 닥터 수스의 책 6권이 인종차별적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판매 중단 조치된 바 있거든요. 닥터 수스의 그림책에서 아시아인은 백인의 지시를 받는 하인 역할로 나왔고, 흑인은 원시적인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혹시 디즈니의 <FANTASIA>라는 애니메이션 본 적 있나요? 1940년에 만들어진 <FANTASIA>는 제작 당시엔 쫄딱 망했다가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유행할 때 재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재평가에 힘입어 60년대에 재개봉 됐는데, 재개봉 판에는 원작에 담겨있던 인종차별적 장면을 잘라냈어요. 아래 그림이 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백인 캐릭터의 하인으로 묘사된 흑인 캐릭터를 잘라내고 화면에서 보이지 않게 조치를 취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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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즈니의 옛 작품들을 보면 과거에 만연했던 차별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백설공주> 같이 디즈니 초기 작품에 대해선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부모들이 있을 정도죠. 한 번 얼마나 그 차별적인 표현이 많았는지 분석해 볼게요. 마부뉴스가 살펴볼 자료는 2016년에 발표된 논문인데, 여기선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를 분석해 성별에 따라 영화 대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대상이 된 프린세스 시리즈는 1937년 <백설공주>부터 2013년 <겨울왕국>까지 총 1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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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성과 여성의 대사 비중을 살펴볼게요. 총 12개의 공주 애니메이션 중 여성의 대사가 전체 대사의 50% 이상인 작품은 5편에 불과합니다. 클래식 작품 3편은 모두 50% 이상이었고, 80~90년대 작품에서 여성 대사의 비중은 상당히 낮아요. 2000년대 이후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작품만이 50%를 넘겼습니다. 공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인데도 불구하고 대사를 양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꽤 많은 차이가 보이는 거죠.

물론 대사만으로만 성별 격차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울 겁니다. 기존의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를 벗어나 처음으로 능동적인 캐릭터로 평가받은 <인어공주>도, 대사 양만 봤을 땐 50% 미만으로 나오니까요. 참고로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의 애니메이션은 뮤지컬 스타일이 대세였던지라 등장인물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여성 캐릭터의 대사 비중이 늘어나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겠죠.

대사의 내용을 분석해 봐도 의미 있는 변화가 보입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칭찬 대사를 분석해 보면, 과거 디즈니 클래식 시절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절반이 넘는 55%였거든요. 능력에 대한 칭찬은 11%에 불과했고요. 하지만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에 걸쳐서 외적인 묘사보다는 능력에 대한 묘사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여성 캐릭터의 능력에 대한 대사가 더 많아졌어요. 뉴에이지 시절에는 능력에 대한 칭찬이 전체 칭찬의 40%였고, 외모에 대한 표현은 22%에 불과합니다.

과거 작품을 기억하는 법: 수정과 유지 사이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 속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갸웃할만한 지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알드 달, 닥터 수스의 동화책에도 있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곳곳에도 있죠. 찾으면 당연히 더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과 영화에도 당연히 들어있을 거고요. 작품엔 그 당시 시대상이 담기고, 또 그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작품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걸까요? 시대에 맞게 수정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원작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 입장: 작품의 수정은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성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 입장은 과거 작품에 그런 표현이 있다면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독자 여러분 혹시 bowdlerize라는 표현을 들어봤나요? 연극이나 영화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식의 검열을 뜻하는 단어인데, 토마스 보들러(Thomas Bowdl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저 단어가 나오게 된 계기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입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성학대, 폭력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거든요. 1800년대 보들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원색적인 장면을 삭제하고 가족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패밀리 셰익스피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따서 bowdlerize라는 단어가 생겼죠. 이런 편집과 수정은 최근까지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대로를 접한다면, 인종차별적인 내용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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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입장: 작품의 수정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다

두 번째는 원작에 대한 고유 가치를 인정해서 원작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당장 셰익스피어의 사례를 두고 위의 입장과 다르게 생각하는 단체가 있거든요. 이름하여 NCNA(National Coalition Against Censorship)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잘못된 과거 작품이라도 검열과 편집 과정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차별적 표현이 사라진다면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아예 날아가 버릴 테니까 편집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더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원작을 수정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적으로 역효과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고전 동화나 옛 작품에는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차별과 편견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보는 비판 의식이라는 거죠. 이런 의식이 길러지고 발동되기 위해선 편견이 담겨있는 원본 작품이 남겨져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작품 수정이 이뤄지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겁니다.
Q. 잘못된 시선이 담긴 작품을 정권 유지에 이용한 사례가 있다?

위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반유대주의적 표현과 분위기가 많이 담겨있다고 말했죠? 나치 정권에선 이를 이용해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정기적으로 공연했다고 합니다. 샤일록과 같이 돈만 밝히는 유대인들을 죽여 마땅하다는 분위기를 만들기에 <베니스의 상인>만 한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거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반유대주의 사회분위기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최악의 참사,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졌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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