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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채 함정'에 빠진 미국…부채 한도 협상 '치킨게임'의 종말은?

미국 연방 정부 부채(빨강)와 부채 한도(검정), GDP(파랑)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부도의 날"…부채 한도 협상 '치킨 게임'

31조 4천6백26억 달러, 우리 시간 5월 21일 오전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시계가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설정한 '미국 부도의 날' 6월 1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부채협상 시한은 다가오고 있지만 1955년 미국에서 개봉한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서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두 자동차처럼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당도 부채 한도 증액 협상에서 상반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 정부의 부채 규모는 의회가 설정한 한도 31조 4천억 달러를 이미 지난 1월 19일 초과한 상태, 미국 재무부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임금과 사회보장적 지출을 하는 등 정부의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오는 6월 1일에는 미국 정부가 임시 변통할 수 있는 수단이 바닥나 부도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부도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하원 대표단과 백악관의 부채한도 협상은 교착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부의 지출은 손대지 말고 부채 한도만 깔끔하게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공화당의 케빈 맥카시 하원의장은 "미국 정부는 수입보다 지출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지출 삭감 없는 부채 협상은 없다"고 못박고 있다.

미국 하원의 공화당(갈색)과 민주당(파랑) 의석 수

현재 미국 하원의 의석수는 공화당이 222석으로 민주당의 213석보다 9석이 많다. 공화당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의회가 결정하는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는 확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출 삭감은 없다'는 민주당과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공화당의 너무나도 뚜렷한 입장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는 2022 회계연도에 GDP의 124%를 초과했다.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8조 달러나 증가한 국가 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시절인 지난 2010년 중간 선거에서 작은 정부를 내걸고 '정부 지출 삭감과 증세 반대'를 외쳤던 공화당이 크게 승리한 경험이 있는 터라 공화당의 양보를 얻어내기는 더욱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31조 4천억 달러를 돌파한 5월 21일 현재 미국 재무부 발표 연방 정부 부채

2022년 국내 총생산(GDP) 25조 4천6백억 달러로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자 글로벌 기축통화 달러 제국 미국이 국가 부도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정부는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수정헌법 14조를 동원해 대통령 직권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미국 재무부가 1조 달러짜리 초고액 기념주화를 발행한 뒤 이를 중앙은행에 맡기고 돈을 빌려 쓰거나, 금 등 정부가 보유한 재산을 매각해 자금을 융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미국의 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하고, 시장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011년 국가 부채한도 협상의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복되고 있는 미국 부채 위기

 

금리 오르고 주가는 출렁…2011년 부채한도 협상 데자뷔?

기자가 지난주 만난 한 지인은 2011년 미국의 부채한도 증액 협상과정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증권사 사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를 하던 한 고객이 미국의 부채협상 과정에서 예측을 잘못해 5백억 원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미국이 국가부도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파생상품 투자를 했지만, 국제신용평가기관 S&P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것이다.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2023년 5월은 2011년 미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2011년 5월 16일 미국의 국가 부채는 한도를 초과했고,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티모시 가이트너(Timothy Geithner)는 비상조치를 동원해 재정을 집행해야 했다.

당시 지목된 미국의 국가부도의 날 이른바 디폴트-X데이는 8월 2일, 부채 감축을 요구하는 공화당 주도 하원과 백악관은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채권 시장에서 미국의 국가부도를 예측한 거래가 나타나기도 하면서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PIGGS로 불렸던 포트투갈과 이탈리아, 그리스, 영국, 스페인의 채무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 등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지목됐던 미국 국채로 투자가 몰린 상황이어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더욱 컸다.

당시 미국의 집권당이었던 민주당과 야당이었던 공화당은 부채한도 증액 협상 시한 이틀 전인 7월 31일에야 부채한도 증액과 함께 정부지출을 줄이는 방안에 합의를 이뤘고, 관련 법안은 8월 1일 하원을 거쳐 협상시한이었던 8월 2일 상원에서 최종 의결됐다.
 
2022 회계연도에 124%를 초과한 미국의 GDP 대비 연방 정부 부채

부채한도 증액 법안이 의회에서 최종 승인되자, 미국 재무부는 한도 증액 다음날인 8월 3일 하루에만 2천380억 달러의 국가 채무를 늘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장기적인 재정적자 감축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8월 5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고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하자 8월 9일 미국 연준은 2013년 중반까지 제로 수준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하기로 하는 등 시장안정 대책을 발표했고, 약세를 보였던 미국의 주가는 반등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간 갈등으로 지정학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미국의 3개 은행이 파산 직전에 대형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심각했던 인플레이션은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중앙은행의 목표치 2%의 배가 넘는 상황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한 달에 950억 달러씩 유동성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부채 확대는 금융긴축과 정반대 효과를 가져와 인플레와의 전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 정부의 부채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부도를 내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부도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주가가 하락하고, 달러의 부도위험을 표시하는 CDS 가산 금리가 상승한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는 만기가 임박해 부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채의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다.

2001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
 

폭증하는 미국의 부채…"달러의 종말 온다" 경고

미국의 국가부채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 정부의 재정이 연간 흑자를 나타난 것은 5차례에 불과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난 2001년 1천3백억 달러의 흑자를 나타낸 이후 21년 동안 적자 행진이 이어졌다. 특히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지난 2020년 이후 국가 채무는 더욱 폭증했다. 연간 재정적자는 2020년 3조 1천3백억 달러, 2021년 2조 7천7백억 달러, 2022년 1조 3천8백억 달러로 코로나19가 계속된 3년 동안의 재정적자는 모두 7조 3천억 달러 가까이 된다.

2022 회계연도 미국 정부의 수입과 지출, 재정적자

2022 회계연도 미국 정부의 수입은 4조 9천억 달러였지만, 지출은 수입보다 1조 3천8백억 달러가 많은 6조 2천7백억 달러에 달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28%나 많았던 것이다. 정부 지출의 3분 1 가까이를 빚으로 조달한 셈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2년 10월부터 시작된 2023 회계연도에도 지속돼 오는 9월 끝나는 2023 회계연도의 재정적자도 1조 2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미국 연방 정부 총 부채

지난 2013년 16조 7천억 달러로 GDP의 1백%를 넘어선 미국의 국가부채는 2022년 말 30조 9천3백억 달러로 10년 동안 배 가까이로 늘었다. 미국의 경제정보 사이트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129%를 넘어 일본(263%), 그리스(171%), 이탈리아(144%)에 이어 주요 서방국가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미국 정부의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도 급증해 작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액만 4천6백억 달러로 같은 기간 재정지출의 13%에 달했다. 미국 연준이 제로 수준이었던 기준 금리를 5% 포인트나 인상하면서 국가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미국이 국가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치가 위협받을 것이라면서 장기적인 부채감축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리인상과 함께 더욱 커지는 미국 연방 정부의 부채

달리오는 최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부채협상은 민주당과 공화당, 극단주의자와 온건주의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커서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부채가 늘어나면 미국은 결국 파산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재정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지금 상태로는 빚을 내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고, 결국에는 아무도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더 이상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정부는 달러를 찍어내 부채를 상환할 수밖에 없게 되고, 달러 가치는 폭락할 것이다. 부채를 줄이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분야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 1천5백년대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변천: 레이 달리오

레이 달리오는 자신이 쓴 책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처하는 원칙(Principles for Dealing with The Changing World Order)'에서 "2차 대전 이후 확고해진 세계 최강자로서 미국의 지위는 영원할 수 없다. 미국의 경쟁력은 현재 정점을 지나 쇠퇴기에 진입했다"면서 "미국이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중국에 최강대국의 자리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기 1천5백 년 이후 현대사에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가 네덜란드에서 영국, 그리고 미국으로 변했던 것처럼, 버는 것보다 더 쓰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추락하고 미국은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는 6월 1일로 예고된 미국 부도의 날,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지속가능한 미국 정부의 부채해소 방안을 도출해 합의할 수 있을지 전 세계 금융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한 때 세계 제일의 기축통화였다가 영국의 파운드화에 자리를 내준 네덜란드의 길더화, 미국 달러화에 세계 기축통화 위치를 내준 영국의 파운드화처럼, 장기적으로 미국의 달러화도 중국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새로운 국가의 통화에 세계 최강 기축통화의 지위를 내주게 될 것이라고 레이 달리오는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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