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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응급실 뺑뺑이 아니다" 복지부의 반박…기자의 재반박

응급실 뺑뺑이 3일간의 행적 ②

[취재파일] "응급실 뺑뺑이 아니다" 복지부의 반박…기자의 재반박
어린이날 연휴, 5살 아이가 진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끝내 숨졌다는 SBS 기사가 지난 16일 나가고, 보건복지부가 18일 설명자료를 냈습니다. 이번 사안에 대한 관계당국의 첫 공식 입장입니다. 요약하면 이번 사례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는 건데, 사실관계부터 틀렸고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안이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당사자든 아니든, 짚어봐야 할 점이 많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취재파일 <5년 5개월의 선물> (▶[취재파일] "5년 5개월의 선물" 어린이날 떠난 아이…"서울 한복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16일 저희 방송 기사 (▶어린이날 연휴에 쓰러진 5살 아이…"병실 없다" "진료만") 그리고 복지부 설명자료를 먼저 읽고 이번 취재파일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취재파일과 방송 기사는 링크로, 복지부 설명자료는 아래에 싣습니다.
□ 관련 보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서울시, 서울 소방재난본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통해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해당 소아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한 것은 아님을 확인하였음

□ 2023년 5월 6일 22시 16분 만 5세 소아에게 고열이 발생하여 119에 신고하였으며, 119구급대가 현장 출동 후 5곳의 응급실(A, B, C, D, E) 유선으로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음

○ 23시 6분 E 응급실에 도착하여 진료 및 검사 등을 실시하였으며, 증상이 호전되어 다음날 새벽(5월 7일 1시 42분) 귀가하였음

□ 다만, 5월 7일 20시 31분 자택에서 머물다 상태가 악화되어 119에 다시 신고하였으며, 119구급대 현장 출동 후 A로 즉시 이송(20시 46분 도착)하여 응급실에서 CPR 시행하였으나 사망함

□ 현재까지 파악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추가 조사 필요 여부 등을 검토하고, 법령 위반 사항 등이 발견될 경우, 서울시,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계획임

"유선으로 문의했으니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다"

어린이날 연휴 쓰러진 아이 응급실 전전하다 숨져

보건복지부는 119구급대가 5곳 응급실에 ' 유선'으로 물었으니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한 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와 119구급대가 발품을 팔아가며 물리적으로 응급실을 직접 방문한 게 아니라 '전화'로만 확인했으니, 응급실 뺑뺑이는 아니라는 취집니다.

사실관계부터 틀립니다. 유선으로만 문의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119구급대는 응급실을 두 곳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느냐" 전화하면서 이동한 건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시간과 동선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급대가 수용 가능 여부를 전화로 묻지도 않고 무턱대고 찾아가진 않습니다.)

유선 상으로 해당 병원은 난색을 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 병원 응급실로 향한 겁니다. 직접 방문해서도 같은 답이 돌아오자 그 자리에서 다른 응급실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돌렸고 '진료만 가능하고 입원은 안 된다'라는 조건을 단 마지막 병원을 찾아 그곳으로 이동한 겁니다. 즉 응급실 두 곳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오류 인정하고 일부 수정…"뺑뺑이는 그래도 아냐"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사실관계를 설명자료에 누락했습니다. SBS가 119구급활동일지, 첫 방문 병원 접수 기록, 유족 증언 등을 토대로 "실제 병원에 방문한 것이 맞으며 유선만으로 문의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하자, 복지부는 첫 설명자료를 낸 지 4시간 반에 정정 자료를 냈습니다. 모든 내용은 동일하며 아랫부분만 붉은 글씨로 추가됐습니다.

* A병원에 유선 수용 문의 결과 대기가 길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으나, 우선 A병원으로 출발하여 응급실 진료 접수. 이후 대기 중 D, E 병원에 수용 문의 후 E병원으로 최종 이송

누락한 이유를 문의하자,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그런 사실을 보고받긴 했는데 굳이 그런 내용까지 넣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그런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기사로 바뀌어 국민에게 전달될 정부의 설명자료를 부처 내부에서 제대로 소통조차 하지 않고 작성한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실제로 정부 자료를 받아쓴 기사가 나왔는데, 이러한 전후 맥락을 기자가 직접 확인하고도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쓴 건지도 의문입니다.

잘못된 사실을 고의로 기재하거나 억지로 수정하는 것만 왜곡이 아닙니다. 국민에게 투명하게 제공해야 하는 전후 맥락을 누락하는 것도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분명 보건복지부는 설명 자료에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라고 했지만 정작 정말 중요한 사실관계는 빠뜨린 겁니다.

보건복지부 또 다른 관계자는 응급실 뺑뺑이를 돈 건 5월 6일이고, 아이가 사망한 건 그다음 날인 7일이기 때문에 "응급실 뺑뺑이는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같은 설명을 과연 부모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소아전용응급실

복지부의 주장에 일일이 반박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중요한 큰 그림을 놓치게 되는 겁니다. 한 발짝 물러서 생각해 보면 저런 디테일 하나하나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소아 응급 의료진 수 부족이 초래한 응급 구조체계 왜곡'입니다.

아이를 돌봐줄 의사와 병상이 부족해 다섯 군데 병원에서 반려하거나 조건부 수용한 건 팩트입니다. (1)전화로 물었느냐 직접 갔느냐, (2)그 날 숨졌느냐 다음 날 숨졌느냐 (3)몇 군데를 돌았느냐 (4)아이가 차 안에서 숨졌느냐 병원에서 숨졌느냐, 이런 세부 사항을 다투는 행위는, 단언컨대 문제의 본질을 하나도 바꾸지 못합니다.

병상이 부족해 거절당한 명백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주장대로 전화로 돌다가 숨졌으면 상관없는 겁니까.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핵심은 가용 병상이 모자라 의료 기관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겁니다. 직접 방문하고 전화를 돌리다가 "아이를 받아줄 수 있으니 오셔도 좋다"라는 답을 들었으면 다섯 번째 병원까지 가지 않았을 일 아닙니까.

큰 그림에 대한 해명과 정부 부처로서의 안타까움은 없습니다. 응급실 밖으로 나간 의사들을 다시 끌어오겠다는 식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책임감도 없습니다. 사실 관계를 누락한 걸로 모자라 응급실 전전하다 죽은 건 아니며 유선으로만 물었으니 뺑뺑이가 아니라는 식의 해명은 곱씹어 볼수록 황망합니다. 책임의 무게만 줄이려는 무책임함은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들이 아니라 저런 식의 해명을 늘어놓은 정부 당국자에게서 느껴야 할 듯합니다. 더욱이 지엽적인 사실관계 다투기로 문제의 본질을 축소시키려는 듯한 오해마저 느낍니다.

"물론 이런다고 우리 아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어린이날 연휴에 쓰러진 아이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설명 자료 한 장은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안이한 의식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은 한 대학병원을 방문해 "소아 의료체계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한 10대 아이가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한 후 보건복지부는 현장조사까지 벌여가며 당시 아이를 받지 않았던 병원에 대해 보조금을 중단하는 처분까지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응급 의사 부족'. 지난한 문제이니만큼 단기간에 풀 수 있는 왕도 같은 건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보건복지부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작 비슷한 일이 다시 터지자 보건복지부는 선을 긋는 모양샙니다.

부모님은 "물론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한다고 아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아이를 계기로 뭐라도 하나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 발표를 듣고 "허탈했다"라는 부모님에게 달리 뭐라 전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번 설명 자료에 새어 나온 그런 식의 안이한 인식으로는, 죄송하지만,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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