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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년 5개월의 선물" 어린이날 떠난 아이…"서울 한복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응급실 뺑뺑이 3일간의 행적 ①

[취재파일] "5년 5개월의 선물" 어린이날 떠난 아이…"서울 한복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다섯 번째 어린이날을 맞은 아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아이와 함께한 5년 5개월'을 아버지는 선물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당일, 부검과 화장을 온몸으로 견뎌낸 아이는 작은 함에 담겨 거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밥 한 끼 든든하게 먹이고 싶었다던 아버지는 생전 아이가 쓰던 스테인리스 그릇에 고봉밥과 소고기뭇국을 넉넉히 담아냈습니다. 삶은 두부와 프랑크 소시지 그리고 초콜릿에 푹 담근 막대 과자도 곁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정든 집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끝낸 아이는, 그날 오후 추모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어린이날 연휴 3일,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정리해 봤습니다.

어린이날 연휴 쓰러진 아이 응급실 전전하다 숨져

응급실 뺑뺑이…3일간의 행적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한 펜션을 찾았습니다. 즐겁게 놀던 아이는 밤 10시쯤부터 38도까지 열이 올랐고 기침도 했습니다. 해열제를 먹고 아이는 잠에 들었습니다. 감기치곤 증세가 심했지만, 어머니는 '흔히 걸릴 수 있는 감기' 정도로 여겼습니다.

5월 6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낮 2시쯤 어머니는 아이와 동네 의원을 찾았습니다. 해열제과 기침약을 처방받았습니다.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밤 11시를 넘기자 40도 가까운 고열과 심한 기침, 호흡곤란, 무기력증이 시작됐습니다. 어머니는 119 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119구급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아이를 받아줄 수 있냐"라고 전화로 물었습니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릴 수 있다"라고 난색을 표하자, 다른 대안이 없던 119구급대는 일단 그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겁먹은 아이를 달래던 어머니를 대신해 구급대원은 차에서 내려 병원에 접수했습니다. 병원은 현장에서도 "병상이 모자라다"라며 5시간 가까이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다린다 한들 자리가 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가 시작됐습니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없기에 구급대원들은 다른 병원 세 곳에 전화를 넣었습니다. 다음 병원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다음 병원도, 그다음 병원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같은 이유였습니다. 다섯 번째 문의한 병원, '입원 없이 진료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진단명은 일명 크루프라 불리는 ' 급성 폐쇄성 후두염'. 숨쉬기가 가빠지고 아프고 강한 기침, 일명 개기침(barking cough)이 나오는 게 특징입니다. 3세 이하 유아에겐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기도가 좁은 아이들은 후두(목)가 부을 경우 기도를 막아 질식사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응급실에서 어머니는 아이 곁을 지켰습니다.

5월 7일.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날, 병원에서 가져온 약을 먹였습니다.
-저녁 6시를 넘겨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어머니는 입원이 가능한지 묻기 위해 진료를 받았던 다섯 번째 병원에 다시 전화를 겁니다. 답은 같았습니다. "진료는 가능하나 입원은 불가능합니다."
-진료라도 받기 위해 가족들은 아이를 다시 병원에 데려가기로 마음먹습니다. 할아버지가 잠시 차를 준비하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오줌 누고 출발하자"라며 아이와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엄마, 쉬가 안 나와. 엄마, 목소리가 안 나와. 엄마, 내 목이 왜 이래"하며 쓰러졌습니다.
-놀란 가족은 119구급대에 다시 도움을 요청했고, 들것에 실어 아이를 다른 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도착 40여 분만 아이는 숨졌습니다. 밤 9시 반이었습니다.

7일 이후.
-사망 판정, 경찰 진술조서 작성, 부검, 그리고 화장. 힘든 여정을 주마등처럼 지낸 아이는 작은 유골함에 담겨 잠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16일 오후 3시, 아이는 집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끝냅니다.
 
응급실 병상 부족

진료 가능·입원 불가?"…병원에선 무슨 일이

 
아버지는 "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아이가 문을 두드렸던 병원 다섯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취재진이 확보한 119구급활동일지를 토대로 알아봤습니다.

국내 최대 소아과 응급병상을 갖춘 한 병원은 "대기 환자가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소아 응급실이 따로 없는 두 병원은 "성인 환자로 침상이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한 병원은 "야간에 소아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진료는 가능하나 입원은 불가능하다"라는 조건을 달았던 마지막 병원은 당시 소아과 당직 교수가 정상적으로 진료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엑스레이상 문제가 없던 걸 확인했고, 일명 네블라이저(nebulizer)라 불리는 호흡기 분무 치료도 시행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안정된 걸 확인하고 약을 처방해 퇴원 조치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일부 착오가 있었던 점도 인정했습니다. 입원이 어렵다는 건 안내소 직원의 착각이었다는 겁니다. 다만 '번아웃(지나친 업무 과중으로 탈진하는 상태)' 상황이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12명이던 소아과 전공의가 최근 3명으로 줄었고, 그 상태에서 24시간 일하다 보니 번아웃돼 응급실 운영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 있었다는 겁니다.

 

'번아웃'된 의사들…"소아과 지원? 잔인한 이야기"

 
"안내소 직원의 착각이었다"라는 해명은 마뜩하지 않지만, '번아웃'이라는 설명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 가용 병상 부족'을 소아 응급실 구조가 왜곡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제시합니다. 응급실의 전체 병상이 줄어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가용 병상이 줄었다는 겁니다.

응급실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은 바로 ' 전공의'입니다. 의사 시험을 통과해 면허를 딴 일반의들이 각자 전공 분야에서 인턴 1년·레지던트 4년을 거치며 임상 수련하는 시기를 전공의라 부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응급실 평수를 확장하고 최신 장비를 구입하고 침대를 더 들여온다 한들 교수를 보조해 당직과 환자 감시를 분담할 인력, 전공의가 없다면 껍데기뿐인 병원일 겁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이번 사례와 관련된 병원들만 하더라도 소아과 전공의가 아예 없는 병원이 있었고 많아 봐야 4명 정도였습니다. 이 인원들로 24시간 365일 응급실 당직 일정표를 짜는 건 불가능합니다.

전공의를 그나마 확보하고 있는 병원들도 대부분 '4년 차' 전공의라는 것. 즉 조금 있으면 전공의 과정을 끝내고 빠져나갈 의사들이라는 겁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병원은 1~2년 차 전공의를 많이 뽑아뒀어야 하지만 소아과에 지원하는 전공의는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소아과 전공의 정원이 159명인데 반해, 지원자는 32명에 불과했습니다. 대학병원 50개 중 38곳에서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사명감이 부족하다. 왜 필수 진료과가 아닌 돈 되는 진료과만 가려고 하느냐." 몇몇 의사들의 사명감이나 무책임을 탓할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전 관둔 한 소아과 전문의는 "돈 못 버는 건 애당초 알았는데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라고 답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업무 강도. 낮은 페이는 둘째치고 목을 조여오는 개인적·법적 위협.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이 상태가 악화될 경우 부모 항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부담감. 더 이상 참다못해 사표를 꺼내는 동료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의 착잡함. 실제 조사에서도 소아과 기피 이유 1위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한 전문가는 "개원의들의 유턴(대학병원으로 돌아오는 일)을 바라며 버티고 있지만, 이런 희망조차 현장에선 잔인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소아전용응급실

부족한 인력 유도, 공허한 병원 확대

 
높은 업무 강도·낮은 처우·개인적 법적 위협. 잔인한 삼중고가 빚어낸 '응급 의료 인력 부족'.

핵심은 전문가의 바람처럼 유턴 유도 정책을 정교하게 짜는 겁니다. 업무 강도를 당장 완화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면 처우를 보장하거나 정부가 여러 위협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돼줘야 합니다.

문제는 정부가 시설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에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현재 8개소에서 12개소로 확충한다고 밝혔습니다. 진료 시간 연장도 포함됐습니다. 경증 소아환자를 위해 야간과 휴일에 외래진료를 제공하는 일명 달빛어린이병원을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 개선의 필요성을 모른다거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현장까지 가 닿진 않고 있습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월급이 오르면 그래도 의료진이 돌아오는데, 그러려면 국가가 병원들에게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 해줘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또 "현재는 비보험 체계도 없고 입원료와 기본 수가로 운영을 해야 하니 병원이 추가 인력을 채용할 이유도 여력도 없다"라고 덧붙입니다.

총체적 난국 속에 대다수가 소아 응급실을 떠나는 사이, 몇몇만이 남아 무거운 짐을 몰아 짊어지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의사 개개인의 치료가 잘 진행됐는지 지엽적으로 따지는 것을 넘어선 문젭니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고통으로 가두는 현재 응급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아이는 결코 줄어들 수 없습니다.

어린이날 연휴 응급실 전전하다 숨진 아이

"꿈 꾸다 깨어난 것 같아요"

 
지병도 딱히 없이 건강했던 아들. 또래에 비해 참을성도 많던 아들. 호기심이 많아 "하늘 너머 구름 위에 무엇이 있냐"라며 늘 물었다던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한 5년 5개월이 꿈같다고, 아이가 떠난 지금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소아과 의사 부족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당사자가 돼 처한 현실은 더욱 냉혹했습니다. 진료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예상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한 구급대원, 다른 병원을 찾아보자며 서둘러 전화기를 휘둘렀을 또 다른 구급대원. 그런 그들을 구급차 뒷자리서 아이 손을 잡고 숨죽여 지켜봤을 어머니의 조바심을, 저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설렘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난 어린이날 연휴. 어느 가엾은 '남의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했던 '우리 아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복지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설명자료를 냈습니다. 본래 하나의 취재파일로 엮어 내려 했으나, 복지부 해명에서 짚어봐야 할 점이 많습니다. 복지부 자료에 대한 반박은 별도의 취재파일 < "응급실 뺑뺑이 아니다" 복지부의 반박…기자의 재반박>으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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