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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갈 수 있도록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안녕, 열여덟 어른' [북적북적]

알아갈 수 있도록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안녕, 열여덟 어른'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81 : 알아갈 수 있도록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안녕, 열여덟 어른'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언제라도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혹시 다가가도 되겠니?"라고 말하며 조심히 다가가 주길 바란다.

'열여덟 어른'은 정확히 4년 전인 2019년 5월부터 자립준비청년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들을 세상에 소개해 오고 있는 캠페인입니다. 자립준비청년. 오래 전부터 무심코 써오던 표현으로는 아동복지시설이나 가정위탁으로 자라다 이제 세상에 홀로 나가야 하는 시기에 놓인, 어른이 된 '고아'.

오늘의 책 [안녕, 열여덟 어른]은 이들이 세상을 향해 '당사자인 제가 먼저 나서서 저를 소개할 테니 들어보실래요'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통로로서의 캠페인을 기획한 아름다운재단 1%나눔팀장 김성식 님이 썼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캠페인 이전에 "이전 회사에서 보육원 아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했음에도, 막상 이들이 어른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책의 앞머리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립보호청년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는 모두가 도우려 했던 보호아동이었는데," 어느 순간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나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범인이나 살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이 책에 실린 4년 간의 의미 있는 발걸음들이 시작됐습니다.
"너 고밍아웃했냐?"

고밍아웃은 고아와 커밍아웃의 합성어로, '보육원에 살았다는 것을 밝히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너 고밍아웃했냐?"라고 물으며 잘 숨기고 살아가는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중략…..) 많은 사람들은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제도가 있는데 왜 지원하지 않아서 미달이 발생하는지 궁금해한다. 용기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어쩌면 아직 덜 고생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섣부른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고밍아웃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들을 위한 실제적인 지원이 일어날 수 없다. 통상적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이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고 면접을 봐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결국 자신이 어떻게 자랐는지 증명하고 보여줘야 하는 절차이다. 세상에서 기껏 힘들여 잘 숨기고 살고 있는데 지원받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들춰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심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서류 통과 후 면접을 하게 되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밝히는 순간이 닥쳐온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의 면접을 담당한 한 심사위원은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자립준비청년들은 "심사위원 님이 해 주신 한마디에 우리 다 울었어요. 수고했다는 말에 마음이 뭉클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자리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한 심사위원의 말 한마디가 이들에게는 '나의 과거가 부끄럽지 않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비밀은 삶을 괴롭게 만든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상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 이제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고밍아웃 때문에 남의 눈을 피해 살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라는 응원 대신, 이들의 삶과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사회로 변화돼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자립준비청년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친절합니다. 정부든, 미디어든, 세상의 편견이든, 자립준비청년에게 다가서는 방법이 잘못될 때가 적지 않은 타자들에게, 오해와 편견에 많이 둘러싸여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포용과 이해를 건네면서 넌지시 일깨워줍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한 것, 지금 부족한 것,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그것들을 함부로 예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시켜 줍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 김성식 팀장이 자신도 여전히 "모르겠다"고 이야기해야 했던 경험에 대해 쓴 부분이었습니다. 보육원 아이들이 개인적인 만남을 그리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 그럼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돼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김성식 팀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마음을 열 수 있는 어른을 만난 당사자들은 위로를 얻고 안정감을 얻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어른이 필요한 것은 맞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게 만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라면서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못 했고, 지금도 여전히 매칭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밑도 끝도 없이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모르시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진정하게 노력하시겠구나. 이 분과 함께, 자기들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기도 하고 무지를 휘두르기도 하는 세상에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한 자립준비청년들도 한 걸음 한 걸음 잘 모르는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에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자주 안긴다. 서로 안기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며 당황해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후기도 종종 보인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들을 자원봉사 내내 안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상황에서 정서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보육원에서는 안아주거나 무릎 위에 앉히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개인 후원자와 관계를 맺고 오래 연락하는 경우에도, 간혹 아이들은 지나친 요구를 하여 후원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보육원으로 놀러오라는 너무 잦은 연락을 하기도 하고, 비싼 물건을 사달라는 당혹스러운 요청도 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낌 없는 사랑만 주리라 다짐했던 자원봉사자들도 생각과 다른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당황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보육원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영악한'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봤다. 그만큼 당돌하고 이기적인 요구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들의 결핍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포함하여 충족돼야 할 많은 욕구들을 채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다. 또한 사소한 요청조차 할 곳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안면이 있는 후원자, 자원봉사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니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립준비청년들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마음을 다치는 아이들도 많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돕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 번 자원봉사를 오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아주 많다 보니 후원자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런 만남이 반복된 후에는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때도 "어차피 오늘만 오고 안 올 거면서, 줄 거 빨리 주고 가세요"라는 마음이 된다고 한다.

좋은 어른들의 선한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만나는 것인데도, 서로의 서투름 때문에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이다.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은 자립준비청년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더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기준과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도움이 됐으며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또 한 사람 사람들을 좀더 준비되어 만날 수 있는 방법들을 앞서서 고민해 준 책입니다. 자립준비청년이든, 누구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게 맞죠. 누군가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는, 당사자의 소개를 신뢰하면서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제대로 알 방법을 몰랐던 세상을 향해 이렇게 친절하게 나서서 스스로들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했습니다.
S는 이런 에피소드를 전해 줬다. 어느 날 S의 윗집에 외국인노동자가 이사를 왔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싶은 마음에 겁이 나서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그 친구는 '미디어의 편견에 대해 문제 제기하더니, 너야말로 모순적이다'라고 꼬집었다고 한다. 솔직한 고백을 전해 준 S는 본인도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반성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부분 무심코 편견이 생기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게 된다. 고아 캐릭터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창작자들이 고아 캐릭터를 사용할 때는, 잠깐이라도 뜨끔한 마음이 생기기를 바랐다. 힘의 논리나 주장 때문이 아니라, 자립준비청년의 생각에 공감되어 어떻게 하면 고아 캐릭터를 사용하면서도 당사자들에게 상처와 편견이 되지 않을지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

고아 캐릭터가 얼마나 많은 드라마, 영화에 사용되고 있는지 알리고자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에 출연한 자립준비청년들은 "비판의 목적보다는 드라마로 인해 저희들의 삶이 좌절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고 어른스럽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해당 영상에는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미디어 속 안일함을 지적하면서도 종사자들의 입장과 마음을 이렇게 배려해 주시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따뜻함이 깃든 지적과 비판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답변이 달렸다.

변화는 작은 공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공감은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손짓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서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하는 따스함이 고아 캐릭터에 대한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안녕, 열여덟 어른'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다면, 유튜브에 이들의 채널 '열여덟어른 TV'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당사자 청년들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같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아마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이제 막 주기 시작한 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5월은 흔히 가족의 달, 이라고 하죠. 살아갈 수록, '가족'이란 말은 참 소중하고 좋은 말이로구나, 마음 깊이 느끼게 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범위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더 넓다는 사실도 더더욱 깨달아 가게 됩니다. 그 중요하고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파지트 출판사의 낭독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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