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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김관진…층층시하 옥상옥 맞는 군 [취재파일]

돌아온 김관진…층층시하 옥상옥 맞는 군 [취재파일]
▲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으로 위촉하는 윤석열 대통령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돌아왔습니다. 새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위원입니다. 8인의 민간 전문가와 안보실장, 국방장관 등 10인 혁신위원 중 1인이지만 현역의 안보실장과 국방장관보다 권위가 높은 좌장이자 리더입니다. 위원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11일) 출범식에서 김 전 장관을 부위원장이라고 부름으로써 사실상 국방 혁신의 지휘봉을 수여한 것입니다.

여러 유력 매체들은 김관진의 복귀를 영웅의 귀환처럼 미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시작으로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2010년 장관 지휘서신 1호, '선조치 후보고'의 공세적 작전지침까지 소환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끌고 언론이 밀어주니 김 전 장관 나아가는 길에 거침이 없습니다.

국방부와 군이 걱정입니다. 대선 캠프 출신 극소수 퇴역 장군 등쌀에 정권 교체 1년이 다 되도록 고위 장군 인사 한번 제 뜻대로 못 했습니다. 이제는 군 개혁의 키까지 퇴역 장군에게 넘겨줬습니다. 국방부와 군은 퇴역들로 구성된 층층시하 옥상옥에 짓눌린 처지입니다. 이종섭 국방장관과 김승겸 합참의장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글과 펜타곤처럼?…층층시하 옥상옥?

윤 대통령은 출범식에서 "국군 통수권자의 책무를 맡아보니 개혁과 변화가 정말 시급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군의 운영체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에 대해 창군 수준의 대대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작년 하반기에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가 위원장으로 있는 미국의 국방혁신자문위원회를 한번 벤치마킹 해봤다"며 국방혁신위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구글의 DNA를 채용해 혁신을 시도한 펜타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혁신위원 면면을 보면 에릭 슈미트 같은 혁신가는 없습니다. 김관진 전 장관을 필두로 김판규, 정연봉 등 퇴역 군인은 말할 것도 없고, 김승주, 이건완, 이승섭, 하태정, 김인호 등 학자나 과학자도 중대형 조직의 혁신을 이끈 적 없습니다. 무엇보다 국방혁신위가 모델로 삼는다는 펜타곤과 우리 국방부 앞에 놓인 안보와 전구(戰區)의 환경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펜타곤은 중국, 러시아, 중동의 적들과 평원, 산악, 사막, 도심, 대양 등에서 기동 전쟁, 비대칭 전쟁, 사이버 전쟁, 대반란 전쟁 등을 벌이고 있는 반면, 우리 국방부는 오직 한반도와 주변 바다에서 북한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전, 정책, 전략, 전술이 같을 수 없고, 따라서 혁신의 방향과 방법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 국방부와 군은 이번 정부 들어 의욕적으로 국방 혁신 4.0을 추진해왔습니다. 국방부 국방개혁실이 중심이 돼 각 군의 혁신 조직,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 등 산하 기관, 그리고 민간의 신기술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군사 전략·작전 개념, AI 기반 첨단 전력, 국방R&D 등을 새로 짜고 있었습니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김관진을 앞세운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가 주도권을 가져갈 테고, 국방부는 시어머니 한 분 더 모시고 곁방살이하는 꼴로 전락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방 혁신의 옥상옥, 그리고 퇴역과 현역의 층층시하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김관진의 진면목은…

해병대 연평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김관진 국방장관
▲ 해병대 연평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김관진 전 국방장관

김관진 전 장관은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별 넷을 따냈으니 그의 경쟁력은 이미 입증됐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언론들이 칭송하는 정도로 위인급인지는 의문입니다. 김 전 장관은 2005년 6월 김동민 일병이 수류탄과 소총으로 동료 8명을 살해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530 GP 사건의 지휘 책임 대상 중 한 명입니다. 28사단이 속한 당시 3군의 사령관이 김관진 전 장관이었습니다. 국감 회의록을 살펴보면 합참의장 시절에도 북한 방사포 재장전 사격 속도를 안이하게 평가하는 등 몇몇 실책으로 국방위원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김관진 전 장관은 부하들에게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게 함으로써 정치 관여 혐의 유죄가 확정된 바 있습니다. 군인의 정치 개입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명분과 이유를 막론하고 군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 범죄입니다. 김관진 전 장관은 현역들의 반면교사입니다.

김관진의 현재 이미지는 2010년 남북의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국방장관에 임명된 이후 쏟아낸 강성 발언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그때 누가 장관이 됐든 북한에 심한 소리와 행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으로 촉발된 남북의 대립을 해소한 협상의 주역도 김관진 전 장관입니다. 그런데 협상 파트너로 김관진을 선택한 것은 북한입니다. 북한은 박정희 정권 때 이후락을 협상장으로 불러냈듯 협상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 늘 정권의 실세만 상대합니다.
 

퇴역들의 생존력…

우리나라처럼 퇴역 장군들의 정치 활동이 활발한 데도 없습니다. 대선 깃발만 오르면 퇴역 장군들은 이 캠프, 저 캠프로 몰려가고, 운 좋게 정권 잡은 측에 선 이들은 번듯한 기관장에 올라 군의 배후로 활약합니다. "현역 때 저렇게 열심히 뛰었으면 우리 군의 전력과 안보는 차원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현역들은 한숨을 쉽니다. 좀비처럼 죽지 않는 퇴역들을 보는 현역들은 "우리도 미리미리 정치에 줄 대는 연습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합니다.

마침내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국방혁신의 임무도 퇴역 장군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남북 강대강 대치에서 북한을 윽박지르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첨단의 혁신과 퇴역 장군은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김관진의 국방 혁신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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