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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168명 살해한 테러리스트의 꿈이 어느덧 현실이 됐다

By 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폭파 추모 기념관. By 뉴욕타임의 닉 옥스포드
 
*미셸 골드버그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정부 청사에 폭탄 테러를 일으켜 168명을 살해한 우파 테러리스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가장 집착했던 이슈는 총기였다. 맥베이에게 총은 곧 자유의 다른 말이었다. 총기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그 어떤 시도도 그의 눈엔 압제의 싹으로 보일 뿐이었다.

제프리 투빈이 오클라호마시티 테러에 관해 쓴 새 책 "홈그로운(Homegrown)"에는 맥베이가 총기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설명이 나온다.

"맥베이의 총기를 향한 열정은 단지 총기를 소지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권리를 지키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새롭게 떠오른 정치 단체에 가입했는데, 이 단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극단주의 성향을 띠게 된다."

투빈의 책을 읽다 보면, 맥베이가 2001년 처형당한 뒤로 세상이 얼마나 그가 꿈꾸던 방향으로 변모해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백인 우월주의 테러단체인 K.K.K. 단원이던 맥베이는 마음속 깊이 여성을 향한 분노를 간직한 극단주의자였다. 그는 오클라호마시티 정부 청사를 폭파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영감을 받아 마침내 정부와의 전쟁에 나설 거라 믿었다.

정부와의 전면전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역사가 캐슬린 빌리우의 설명에 따르면, 맥베이가 자행한 폭탄 테러 이후 한동안 민병대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폭동이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오늘날 맥베이와 생각이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이 벌이는 초기 단계 운동을 보면, 이들은 대개 사회의 나머지를 전부 적으로 돌리는 작은 반란을 꿈꾸는 듯하다.

모든 총기난사 사건이 정치적인 동기로 일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그러나 전체 총기 사건 중 드물게 정치적인 동기로 촉발된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 대개 범인은 극우 성향 이데올로기에 경도돼 있다.

지난 2월 명예훼손반대연맹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22년 미국에서 일어난 극단주의 계열 살인사건의 범인은 전부 다 극우 성향이었다. 극단주의자가 일으킨 살인 사건 희생자의 60%가 두 차례 총기난사 사건( 뉴욕주 버팔로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 총기난사 사건)에서 나왔다. (역자: 버팔로 총기난사 사건은 주로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마트에서 총기를 난사해 모든 희생자가 흑인이었고, 콜로라도 스프링 총기난사 사건은 성소수자들이 찾는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모두 소수 인종,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벌인 공격으로 극우 혐오범죄의 전형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지난 주말 텍사스주 알렌에서는 또 한 차례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범인의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건 직후 나온 보도에 따르면 범인은 우익암살단을 뜻하는 RWDS(right wing death squad) 완장을 차고 있었다. 우익암살단은 칠레의 파시스트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아래서 실제로 활개 치며, 피노체트의 정적들을 공격하고 살해하던 극우 테러단체다.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 같은 극우 단체들이 우익암살단을 공개적으로 찬양하곤 한다. 수사 당국은 총기를 난사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조사하고 있는데, 이 계정에는 히틀러를 향한 찬양과 "여성, 흑인을 향한 분노와 혐오 발언"이 넘쳐났다.

이번 총격 사건으로 8명이 목숨을 잃었고, 희생자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은 어린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모든 뉴스 채널은 정규 뉴스를 중단했고, 정치인들은 서둘러 성명을 냈다.

2015년,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Dylann Roof)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교회에서 예배드리러 온 흑인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9명이 숨졌다. 이 사건이 준 충격은 너무 커서 당시 니키 헤일리 주지사는 주의회 건물에서 남부 연합군 깃발을 내려야 했다. 불과 8년 전에 말이다.

미국 사회에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은 이따금 일어나는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걸핏하면 일어나다 보니, 이제는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 사회의 기본 배경 화면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최근에 일어난 잇단 총기난사 사건이 더 늦기 전에 규제를 강화하자거나 정치적인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논의를 촉발한 적은 없다.

반대로 총기를 더 쉽게 소지하고, 자유롭게 마음대로 쓰겠다는 우파의 노력이 지금처럼 별 제재를 받지 않는 한, 총기난사 사건은 점점 더 미국인에게 일상이 될 거다.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유난히 총기 사고와 폭력에 둔감하고,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무기력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당수 정치인이 총기에 관한 한 티모비 맥베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미 라스킨(민주, 메릴랜드) 하원의원이 지적했듯, 맥베이가 품고 있던 정부 전복 이론을 그대로 읊는 공화당 정치인을 우리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극우 성향의 정부 전복 이론은 미국인에게는 독재에 맞서 정부를 전복하고자 싸워야 하는 때를 대비해 총기와 무기를 쌓아둘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에게는 그래서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언급한 수정헌법 2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트럼프 성향의 로렌 보버(공화, 콜로라도) 하원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총기를 소지할 권리)는 사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물론 독재자를 사냥해 제거하는 싸움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공화당 지지자들의 총기와 정부 전복을 향한 숭배에 가까운 집착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위험한 집착은 트럼프 집권 4년을 거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무장 반란을 일으켜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세상에서 총기는 그들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총기를 더욱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화당은 정반대로 총기를 더 널리,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테네시주 내쉬빌의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난 뒤 테네시주 의회는 의사당 내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을 개진하며, 평화 시위를 벌이던 젊은 흑인 하원의원 두 명을 제명해 버렸다. 테네시주 의회의 구성을 보면 공화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역자: 제명된 하원의원 두 명의 지역구는 각각 테네시주에서 가장 큰 도시 내쉬빌과 멤피스다.) 며칠 뒤 주 상원은 총기 회사를 보호하는 을 통과시켰다. 총기난사 사건이 나도 피해자나 희생자 유족이 총기 회사들에 소송을 걸기 어렵게 만드는 법이다.

텍사스주 의회에서도 아마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총기난사 사건 직후 주의회 안에서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해 AR-15 같은 자동소총을 살 수 있는 최소 연령을 현재 18세에서 21세로 높이는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이 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 하원은 몰라도 주 상원 표결까지 통과해야 법이 제정되는데, 주 상원은 총기 소지권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댄 패트릭 부지사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화당은 총기를 신봉하는 이들이 살상용 무기를 사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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