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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워런 버핏이 어떻게 진보적인 정통성을 거부하게 되었을까

By 로저 로웬스틴 (뉴욕타임스 칼럼)

스프 NYT(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로저 로웬스틴은 금융 전문 기자이자, 워런 버핏의 전기 "워런 버핏: 미국 자본가의 탄생(Buffett: The Making of an American Capitalist)"을 썼다.
 

오마하 출신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오랫동안 진보적인 경영자로 알려져 왔다.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단체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고,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는가 하면, 부자 증세를 꾸준히 주장해 오기도 했다.

버핏은 지난 58년간 자신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 매년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버핏은 자신의 회사가 지난 10년간 32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냈다는 점을 자랑스레 밝혔다. 20세기 초 대공황 시기에 태어나 93세가 된 버핏은 앞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기를 희망한다며 "우리가 나라에 진 빚을 마땅히 갚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버크셔의 주주들이 오는 6일 주주총회 참석차 속속 오마하로 모여드는 와중, 이사회에 등장한 버핏은 기존의 진보적 행보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사회의 정당한 역할은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임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하는 모습이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ESG를 밀어붙이며 기업을 진보적 변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투자해 온 터였다.

지난 몇 년간 많은 기업이 기후 및 다양성 관련 정책을 도입했다. 미국의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은 기업이 일차적으로 주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더는 신봉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공산당이 노동자에 대한 충성이라는 제1원칙을 저버린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이런 경향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깨어있는 인물로 과거 인플레이션에서 핵확산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혀왔지만, 기업의 미션을 하이재킹 하려는 ESG 투사들에게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비판자들은 대부분 기관이다. 뱅가드 같은 뮤추얼펀드사나 래리 핑크, 주 정부 연기금은 다른 사람들의 돈을 관리하는 주체로, 그들이 옹호하는 것은 자신의 의견이지 자신의 지갑이 아니다. 버핏이 더 큰 충성심을 느끼는 쪽은 자신처럼 자기 돈으로 주식을 산 주주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핏이 진보 성향의 기관 투자자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 것은 놀랍지 않다. 작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은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를 통해 버크셔가 기후와 다양성 관련 정책 등 네 가지 새로운 정책을 채택하도록 힘을 썼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버핏이 CEO 자리는 유지하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한 안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었다) 올해도 버핏은 기후, 다양성,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여섯 가지 안을 마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기금 캘퍼스(CalPERS)는 버크셔가 기후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관해 연간 평가서를 발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회 및 환경정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기구 '뿌린 대로(As You Sow)'는 버크셔의 보험업과 "관련된" 배출량 감소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제안했다.

주주들이 받은 위임장 권유서를 보면, '뿌린 대로'는 버크셔가 보험업에서 "기후 발자국을 충분히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버크셔가 "세계 최대 30개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0점을 받을 만큼 뒤처졌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버핏의 입장과 관계없이 그는 이런 부류의 조사와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진 점수표가 태만한 자원 낭비, 즉 좋은 경영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버핏은 주주들에게 여섯 가지 제안 모두에 반대표를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쯤에서 밝히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워런 버핏의 전기 작가일 뿐 아니라 버크셔의 오랜 주주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부유한 진보파가 어쩌다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정치적인 환경이 훨씬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간단한 답일 것이다. 버핏은 보수적인 공화당 4선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사업가 기질을 물려받았지만, 1960년대 민주당이 민권 운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 버핏에게 성과주의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가치다. 그는 차별을 혐오하며, 비슷한 이유로 부모로부터 사업 자금이나 투자금의 종잣돈을 받는 이른바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들도 자격 없이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을 누린다며 비판한다.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작은 정부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을 거부하고, 번영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버핏이 이사회 진보주의자들로부터 회사를 분리하고자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타일, 둘째는 내용과 관계된 것이다. 역발상 투자자라는 점에서 크게 놀랍지 않지만, 버핏은 매우 독립적인 인물이다. 본인의 의제를 관리하는 일에 몹시 공을 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명분에 버핏의 지지 표명을 요청했던 지인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중반에 버핏은 친구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에 크게 기부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 외에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외주 준 일은 없다.

이러한 내부 지향적 스타일은 버크셔의 기업색에도 잘 묻어난다. 다른 CEO들과 달리 버핏은 참모나 대변인을 두지 않으며, 전화는 바로바로 받는다. 버크셔의 위임장 권유서 역시 버핏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반영해, 단 19페이지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의 위임장 권유서는 두꺼운 책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버크셔는 임직원이 무려 38만 3천 명에, 에너지, 제조, 부동산, 고급 캔디 브랜드 등 다양한 부문의 60개 계열사로 이루어진 대기업이지만, 본부 직원은 단 26명뿐이다. 기업 전체를 관장하는 지시 사항이나 절차를 지양하고, 모든 계열사에 거의 완벽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계열사 가운데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와 'BNSF 철도'가 버크셔 전체 화석연료 소비의 90%를 차지한다. 두 회사 모두 탄소 발자국 감소 계획을 공개하고 있다. 1,200만 고객을 보유한 버크셔 에너지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비탄소 연료에서 얻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전력의 약 40%가 탄소 배출 없는 연료로 만들어진다.) 버크셔 에너지는 지금까지 신재생에너지, 특히 (버핏의 표현에 따르면 바람이 부는 곳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져가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석탄을 사용하는 시설은 폐쇄하는 추세다.

그러나 버핏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배출 절감 기한을 거부하며, "옛 질서의 수호자들"과 "즉각적인 신세계를 꿈꾸는 현실성 떨어지는 선지자들"을 공평하게 비판한다. 이를테면 보험회사가 회사 고객들의 탄소 사용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는 반대하는 것이다. 위임장 권유서에 따르면 버크셔의 보험사는 리스크를 계산하는 사업이다. 증권 공시의 이유이기도 한 수익에 대한 잠재적인 영향을 계산함에 있어, 버핏은 기후와 같은 정치적 카테고리를 다른 리스크와 다르게 보지 않는다. 에너지 프로필이 다양한 버크셔의 계열사들이 하나의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버핏은 동의하지 않는다.

버핏은 과거 한 회의 석상에서 "보고서를 많이 준비하거나 60개 계열사에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길 원치 않는다"며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의 직원들이 질문지에 답변하고 누군가 매기는 점수표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시간을 쓰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기업들은 활동가들이 불을 지필 논란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자신이 의결권 주식의 31.6%를 소유한 버크셔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는 버크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기업 공시를 읽어보지도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버크셔가 다양성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지만, 실제로는 규정에 따라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에 수많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공개 정보다. (버크셔 보험사 인력의 58%가 여성이며, 서비스/소매/유통업 종사자의 45%는 스스로 다양성 집단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노동자다.) 그러나 버크셔는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기업 활동과 관련해 별도의 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으며, 다양성이라는 요소가 이사 후보 고려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방침이 없다"고 밝힌 몇 안 되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이사회 구성원 중 4명이 여성이고 2명이 인종적, 또는 민족적으로 소수자에 속하므로, 해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버핏과 그를 공격하는 진보 진영 인사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버핏의 리버럴리즘은 고전적인 애덤 스미스식 자유주의다. 적절한 규제만 있다면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과거에는 대부분 이런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오늘날 기업의 이사회는 정치 플랫폼처럼 조직되어 다양한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버크셔의 이사 선정 기준은 "사업 능력"이며, (주주가 아닌) 오너 성향이다. 요컨대 버핏은 여전히 이사회가 주주를 대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인물이다.

2021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버핏은 자신이 고전하던 직물 제조업체 버크셔를 인수하기 전까지 버크셔는 고작 하루에 연방정부에 세금 100달러를 내는 "한심한" 신세였음을 언급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성장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직물 제조업은 오래전에 접었다) 버크셔는 매일 정부에 900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는 기업이 됐다. 버핏의 계산에 따르면 이는 미국 내 개인 및 기업 연방세 전체의 1/1000에 해당하는 액수다. 기업의 수익성이 곧 사회적인 선이며, 이것이 "종종 간과되는 정부와 기업의 재정적 파트너십을 보여준다"는 것이 버핏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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