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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1만 5천 원짜리 티셔츠 만드는 데 드는 진짜 비용은

By E. 벤자민 스키너 (뉴욕타임스 칼럼)

스프 NYT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 벤자민 스키너는 책 "거대한 범죄: 현대판 노예제의 민낯(A Crime So Monstrous: Face-to-Face With Modern-Day Slavery.)"의 저자다.
 

현대판 '인민의 아편'은 따로 있었다. 바로 패션이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중산층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모두가 걱정하지만, 사실 미국인이 자고 나면 값이 오를까 절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재가 하나 있다. 바로 옷이다. 미국에서 옷값은 싸도 너무 싸다. 30년 전,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데 13달러가 들었다. 그 돈으로 옷을 사면, 티셔츠를 한 장 살 수 있었다. 지금은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려면 아무리 싼 데 가도 40달러는 내야 한다. 티셔츠 한 장 가격은 얼마가 됐을까? 12.74달러. 30년 전보다 더 싸졌다.

사실 우리는 옷값이 이렇게 싸게 유지된 비결이 다름 아닌 사람의 목숨값 덕분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0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재앙과도 같은 사고를 다들 기억할 거다. 4월이지만 이미 무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Rana Plaza) 의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공장 건물에 심각한 균열을 발견하고, 이를 사측에 알렸다. 사측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다음날 출근하지 않으면 한 달 치 월급을 못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튿날 공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가동됐고, 건물은 무너졌다. 1,134명이 죽고, 2,500명 넘는 사람이 다쳤다.

이후 노동조합과 몇몇 의류 회사 사이에 방글라데시 제조업 공장 등 건물 안전을 강화하는 협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협약은 말 그대로 발등에 떨어진 문제, 즉 건물 안전 문제만 급한 대로 처리한 데 불과했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바로 의류 업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복지 전반에 관한 문제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의류, 섬유 산업에 종사하는 7,500만 노동자의 목소리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옷값처럼 갈수록 평가절하되고, 무시됐다.

늘 이런 식이었던 건 아니다. 산업혁명부터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의류 산업은 인류의 발전을 이끈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19세기 중반 영국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섬유 산업이 융성했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노동자들의 임금은 높아졌고, 높은 생산성 덕분에 옷값은 획기적으로 내렸다.

20세기 들어 섬유 산업의 중심지는 바다 건너 미국으로 옮겨왔다. 미국에서도 뉴욕 맨해튼 남동쪽 의류 지구(garment district)가 가장 앞서 나갔다.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을 비롯한 다양한 이민자들은 이곳에서 일하며 부를 창출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자각하고 지키기 위한 노동 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1960년대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섬유 산업은 전쟁 이후 피폐한 국가 경제를 일으킨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이어 아시아 여러 나라가 섬유 산업을 유치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기조에 맞춰 중국은 섬유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수많은 중국인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건 생계형 농사에서 벗어날 기회이자 유망한 탈출구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의류 산업의 엔진은 오래전부터 삐그덕거렸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 임금은 적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액수의 절반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다.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최저 임금은 월 75달러로, 하루 급여로 환산하면 3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모자란 돈이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끔찍한 환경에서 일하게 된 원인으로 많은 사람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꼽는다. 패스트 패션은 의류 브랜드 자라(Zara)의 창업자이자,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14번째 부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 같은 사람들이 주창한 사업 모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시로 바뀌는 패션 트렌드를 그에 못지않게 빠른 생산 속도로 따라잡는 거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만들어서 싸게 팔고, 유행이 바뀌면 곧바로 새 디자인에 맞춘 옷을 생산해 파는 식이다. 쉬인(Shein)과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실제로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공급망을 거쳐 들여온 옷을 놀랍도록 싼값에 판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은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에 가깝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습관도 문제를 악화하는 데 한몫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기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덜 윤택한 삶을 살게 되리라는 전망 속에 30대를 맞이한 밀레니얼 세대는 대학에서,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막 첫 직장을 구하던 2008년에 금융 위기로 인한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었고,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적잖은 학자금 빚에 허덕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탓에 집이며 에너지, 식품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이 부담 없이 사기 어려운 사치재가 돼 버렸다. 그 결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데 돈을 쓰지 못하고 있다.

1조 5천억 달러 규모의 의류 산업은 결국, 계속되는 가격 하락 압박과 약화된 노동자의 협상력이 맞물리면서 산업화 초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수준의 광범위한 학대가 버젓이 횡행하는 업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제 노역 등 불법 노동으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법으로 금지하는 미국에선 해당 제품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적발하고 압류한다. 지난해 관세국경보호청이 압류한 제품의 가치는 총 8억 1,650만 달러어치에 이른다. 2020년 5,500만 달러보다 15배나 증가했는데, 불법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 가운데는 의류도 상당수 포함됐다. 내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 트랜스패런텀(Transparentem)은 그동안 강제 노역, 어린이 노동, 심하게 오염된 작업 환경 등 불법 노동을 개선하지 않은 채 버젓이 영업하는 수많은 의류 공장과 공급망을 폭로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의류, 섬유를 생산하는 많은 나라의 공장과 공급망을 조사했는데, 여기서 드러난 열악한 노동 실태, 엄연한 인권 유린과 학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많은 경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알선해 주겠다는 중개인에게 속아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내고, 그 탓에 지게 된 빚의 굴레에 갇혀 사실상 인질이 돼버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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