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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년 후 지금도 "부를 땐 국가의 아들, 아플 땐 당신의 아들?"

[취재파일] 4년 후 지금도 "부를 땐 국가의 아들, 아플 땐 당신의 아들?"
"군대 갈 땐 국가의 아들, 아플 땐 당신의 아들." 4년 전, 이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뉴스 속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2018년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를 만나 세상을 떠난 당신의 아들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군 복무 중 갑자기 발병한 급성 백혈병과 뇌출혈로 홍정기 일병은 민간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들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에서 눈물지었던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렵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어머니는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 병역비리 계속 나오더라고요. 저는 어떤 면에선 그 부모님 잘하신다고 응원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자괴감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은 볼 수 있는 거잖아요."
병역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도리어 응원하고 싶다는, 얼핏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말, 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2018년 SBS의 첫 보도 이후 국방부는 군 의료시스템을 개편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는데 어머니는 왜 아직도 법원으로 국회로 뛰어다니며 국가와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7년 전 군복무 중 무슨 일이

군 의료체계로 인해 숨진 故 홍정기 일병

먼저 고 홍정기 일병이 지난 2016년 겪었던 일들을 다시 짚어 보겠습니다. 입대 이후 체력검정 당시 3km 달리기 1급,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각 특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했던 홍 일병 이야기입니다.

2015년 홍 일병은 제102보충대대로 입대했고 같은 해 10월 수송대 운전병으로 전속됐다 12월 인사행정병으로 보직을 변경하며 군 복무를 이어갔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3월 홍 일병은 사랑니 통증을 호소했고 연대 의무중대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았습니다. 치과가 있는 사단 의무대로 가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환자가 너무 많이 밀려 있다고 해서 읍내에 있는 민간 치과의원에서 사랑니를 뽑았습니다. 다음날인 3월 13일 홍 일병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사단 의무대에선 두드러기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같은 날 밤 홍 일병은 생활관 동료들에게 '부딪힌 적도 없는데 멍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3월 14일, 홍 일병은 다시 치과를 찾아 약 처방을 바꿔 받고 부대로 복귀했고 이후 3일 동안 사단 훈련 중 두통, 무기력증,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증상 등을 겪으며 잔류 병력으로 지냈습니다. 3월 20일, 홍 일병은 행정보급관에게 온몸에 멍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인 21일, 연대 의무중대에서 A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A 군의관은 홍 일병에게 혈소판 감소 질환 검사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체온과 맥박 등이 안정적인 것 등을 고려해 응급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인 22일로 국군춘천병원 외진을 예약해줬습니다. 21일 오후 부대 밖 민간 의원을 들른 홍 일병은 '혈액암 가능성이 있어 즉각적인 혈액내과 내원 필요함'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다시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군인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22일 새벽 2시쯤, 홍 일병은 두통을 호소하고 구토를 거듭하다 사단 의무대로 갔습니다. 사단 의무대 당직이었던 B 군의관은 멍을 확인하고 유달리 피부와 눈 흰자위가 하얗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혈액학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다른 조치가 있었는지를 물었고, 홍 일병은 외진이 예정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B 군의관도 응급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사단 의무대에 입실시켜 지켜보기엔 다른 환자들로 인원이 너무 많아 수용이 불가능해 연대 의무중대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새벽 내내 홍 일병은 침대에서 구토를 하고, 바닥에 쓰러져 넘어있고, 책상에 엎드려 있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9시가 돼서야 국군춘천병원에 외진을 받으러 가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습니다. 누군가 부축해야 걸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이때 홍 일병 가족이 처음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전 10시쯤 국군춘천병원에 도착해 혈액검사를 하니 백혈병 가능성이 높다, 뇌 CT 촬영을 해보니 뇌내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와 응급상황이라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이곳도 수용이 제한됐고 결국 민간병원인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으로 오전 11시 반쯤 이송됐습니다. 이미 뇌압이 너무 높았다는 홍 일병은 결국 당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24일 밤 11시 20분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이 사건 경위는 제2보병사단 보통검찰부의 수사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2018년 SBS가 이 사안을 취재했을 때 홍 일병의 의료기록과 군 검찰의 조사보고서 등 자료를 검토했던 서울대 의대 유성호 법의학교실 교수는 "의사라면 이 정도의 꽤 오랫동안의 두통, 창백함, 여러 전신의 출혈, 그러면 두려운 진단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왜 (상급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갑자기 멍이 들어요' 이러면 (민간 병원이었다면) 식겁하죠. 빨리 큰 병원에 가라. 갔으면 지금쯤 항암 치료를 받고 있겠죠." 어머니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왜 21일 민간 의원에서 '즉각적인 혈액내과 내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대로 부대로 복귀했는지, 그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 내내 구토를 하고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는데 왜 큰 병원으로 이송조차 되지 못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이었던 건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소송이 시작된 이유입니다.
 

이례적 화해권고 "국가는 책임을 통감"

군 의료체계 -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를 포함한 홍 일병의 유족들은 201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진단이 잘못됐고 대처가 늦어졌다, 그래서 국가가 직무집행과 관련해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원고인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입니다. 유족들이 홍 일병을 떠나보내며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성격으로, 홍 일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 5천만 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각 2천만 원, 형은 1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3년 2월,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재판부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화해권고란 재판부가 '이 정도면 어떻겠느냐'며 원고와 피고 양측에 말 그대로 화해를 권고하면서 특정한 안을 제시하는 겁니다. 끝까지 싸우지 말고 양측이 조금씩 양보를 해서 합의를 하도록 하는 거라고 보면 되는데, 이걸 양측이 받아들이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과가 발생합니다.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엔 이런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1. 가. 피고 대한민국은 망 홍정기(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의 사망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망인의 유족인 원고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
나. 피고 대한민국은 향후 망인의 사망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원고들에게 약속한다.

재판부는 가족들이 청구했던 도합 1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금 액수를 전부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화해권고에는 국가가 이 가운데 2천 5백만 원만을 배상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어머니는 가족들과 회의를 거친 끝에 이 화해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앞 두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애도와 위로를 진심으로 전해 달라', 유족이 느낄 수 있게끔. 그리고 '최소한 원고들에게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한다'. 애 목숨으로 2천 5백만 원 금액 표시해 준 거요? 2천 5백 조를 줘도 저는 우리 정기하고 안 바꿔요. 이건 그냥 우리한테 하는, 국가에서 어떤 책임을 인정하는 부분을 안 해줄 수 없으니까. (중략) 판사님이 (법정에서) 앉혀놓고 물어봤어요. '이거는 대법원까지 갈 일이 아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릴 테니까 받겠느냐'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전 받겠다고 했어요. 결정문은 그 이후로 나와서 가족들한테 다 물어보래서... 그만 싸우고 싶지 싸우고 싶은 유족이 어디 있겠어요."
지난 2월 10일 나온 화해권고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시한은 3월 6일이었습니다. 이날까지 유족과 국가가 이의신청을 모두 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내놓은 화해권고는 그대로 확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월 6일, 국가는 이의신청 시한 마지막 날 결국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의신청 이유는? "군의관 과실 없다, 이중배상이다"

국방부

어머니는 국가가 이의신청을 했다는 말에 헛웃음만 났다고 했습니다. "어이도 없고 뭐라고 할까, 이게 진짜 나라가 맞나.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눈물도 아까웠어요. 국가가 이렇구나, 국가가 이런 모습인데 어떻게 애들은 자꾸 군 복무 얘기를 하면서 데리고 가려고…"

왜 이의신청을 했느냐는 기자 질의에 국방부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법률상 대표자인 대한민국(법무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 후 결정한 사안"이라고만 짧게 답변해 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설훈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이의신청 의견서를 입수해 확인해봤습니다. 이의신청 이유는 크게 2가지였습니다. 먼저, 당시 홍 일병을 진료한 군의관들에게 명백한 의료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홍 일병 몸에서 멍을 봤다고 주변 사람들이 증언을 했는데 몇 년 지난 증인들의 기억보다는 사망 시점 가까울 당시 작성된 군의관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고, 홍 일병이 사망했단 이유만으로 군의관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재판이 시작되고 홍 일병 사망 관련 의료기록을 전문가들에게 촉탁해 감정을 맡겼을 때에도 명확하게 군의관 처방이 문제였다고 지적한 감정 회신이 오지 않았단 것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제2보병사단 보통검찰부 수사기록상에도 홍 일병 몸에 있었다는 멍에 대한 언급은 등장합니다. 사건 발생 몇 년 뒤에 주변 사람들이 멍 얘기를 처음 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사건 발생 이후, 국방부는 홍 일병을 연대 의무중대에서 진료했던 A 군의관, 그리고 사단 의무대에서 당직을 서다 홍 일병을 봤던 B 군의관에 대해서 이미 징계를 한 바 있습니다. 역시 설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들의 징계 사유서에 따르면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 안에서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하여야"하는 이들은, "혈소판 감소 등 혈액관련 질환을 의심하면서도 활력 징후 등에 큰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즉시 상급 의료기관으로 후송하여 추가 검사 및 진료를 받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단순히 약 처방 및 다음 날 국군춘천병원 외진을 예약하고 진료를 마무리"했다는 이유에서, 또 "같은 날 오전 외진이 예약되어 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연대 의무중대로 돌려보내"었다는 이유에서 징계를 받았음이 명시돼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매우 중하여 응급상황이었음에도 단순히 약 처방 및 외진 예약만 하고 즉각 상급 의료기관에 후송하여 추가 검사 및 진료를 받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내부적으로는 징계를 했는데도 지금 법정에선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왜 군의관 징계를 하고도 이의신청을 하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하는지에 대한 기자 질의에 국방부는 "징계사실 및 수준에 대한 사실은 개인정보보호법 제17·18조에 따라 사실확인 및 답변이 불가"하다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국가가 제시한 또 하나의 이의신청 사유는 홍 일병이 이미 순직 처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홍 일병이 순직 처리되었고 유족들이 관련 연금 등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국가배상법에 따라 이중배상금지의 원칙이 적용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를 살펴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이 전투ㆍ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하여 전사ㆍ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ㆍ유족연금ㆍ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또 헌법에도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헌법 제29조 ②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ㆍ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홍 일병은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 순직해 가족들이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를 애초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해당 국가배상법 조항은 위헌 소지가 있는 독소 조항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조항이기도 합니다. 이 조항이 만들어진 연원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 이후 국가배상 소송이 늘어나고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자 국가배상법에 이런 조항을 만들어졌는데, 대법원은 1971년 이 조항이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며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1972년 유신헌법에 국가배상법 조항과 동일한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위헌 논란을 피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이 이 조항 때문에 생겨났단 주장도 나오는데, 지난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내놓았던 개헌안에는 군인의 이중배상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을뿐더러, 유족 측 변호인은 해당 조항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이번 손해배상 청구는 연금 등 순직에 함께 지급되는 보상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기에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홍 일병의 사망 그 자체로 인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유족들이 가지는, 위자료에 대한 청구권이기 때문에 이를 법정에서 다퉈보겠다고 유족 측 변호인은 전했습니다.
 

진상규명위 "적기 진단 및 치료 부재로 사망"

군대, 군인

어머니는 이렇게 재판이 길어질지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진정으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선 홍 일병의 사망에 대해 2019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이런 공식 결정을 내렸습니다. "망 홍정기는 군 복무 중 발생한 급성골수성백혈병에 대한 적기 진단 및 치료의 부재로 위 병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인정한다." 해당 조사보고서에 이런 결정의 근거가 된 참고인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인 C "당시 사단 의무대나 의무중대는 어떠한 검사시설이나 전문의료인이 없었고, 감기약이나 이런 간단한 처방 정도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만약 당시 지휘관들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서 외부 병원에 빨리 데려갔거나 훈련기간 내에라도 검사를 실시했더라면 정기가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인 D "부대가 복지시설이나 의료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던 실정이라 안타까운 것은 당시 군에서 피검사라든가 응급환자 후송 등 훈련기간에 발생했던 환자들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있었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왜 이런 진상규명위의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국방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정 다툼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선진국 됐다고 엄청 떠들더라고요. 저희는 뒤에서 울고 있어요. 선진국 됐으면 국가 수호를 위해서 입대한 아이들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 규명을 했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아이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게 국가가 저희들한테 해줘야 할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요. 더 바라지도 않아요."

당시 취재 중 SBS가 만났던, 홍 일병을 진료했던 군의관 2명은 당직을 서면서 모든 증상을 진단하기엔 시설과 장비 등이 충분하지 않다, 또 외진이 필요하단 판단 하에 여럿을 보내면 상부에서 안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군의관 개인의 과실로 치부하기엔 군 내에서 장병들이 진료를 받고 이송을 보내는 시스템 전부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국방부는 2018년 SBS 보도 이후 대대적으로 군 의료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2018년 11월엔 군 의료시스템 개편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고, 이듬해 5월엔 "나라를 지키다 부상당한 장병들에게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확고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군 의료시스템을 혁신해 나갈 것이다"라며 전문가들을 모아 발전추진위원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6월엔 국방개혁 2.0 일환으로 군 의료시스템 개혁을 추진한다며 군 병원 군의관의 진료 및 진단서 발급 없이 부대 내 군의관 진단서 발급만으로도 민간병원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전문과별 의료진과 검사 장비를 갖춘 사단의무대에서 1차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체계를 개편하겠다 등 대대적인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출발점이 됐던 홍 일병 사건에 대해서는 군의관의 과실 여부에 초점을 맞추며, 시스템에 대한 언급은 없이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재개된 재판, 이어지는 싸움

헌법재판소

3월 6일 국가가 이의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재판은 재개됐습니다. 접수 이후 열린 첫 재판은 4월 21일이었습니다. 국가 측은 위에서 언급된 이중배상금지 원칙을 설명하며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하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족 측은 반론을 하는 한편, 이제껏 재판에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었던, 군의관 징계내용을 담은 징계처분서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국가 측에서 임의제출이 어렵다고 해 유족 측은 재판부에 이를 제출해달라고 명령해달라는 문서제출명령 신청서를 어제 제출했습니다. 화해권고 결정이 내려진 이후 법관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바뀌면서, 이제 새로운 재판장과 함께 유족들은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 중환자실에서 버티다가 사망했잖아요. 그때 군의관이라고 데리고 왔어요. 우리 정기 같은 애 데리고 왔다고 그랬죠. (중략) (군의관을) 거기 갖다 놓은 게 대한민국 국방부 아닌가요. 제가 걔를 미워해야 하나요? 그때 국방개혁 2.0에서 의료 바꾼다고 하고 시스템 바꾼다고 우리 의견 청취하고 그랬던 것 아니에요. 그랬는데 이제 와서 잘못이 없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유족이 있을까요?" 다음 재판은 6월, 어머니는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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