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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홀로코스트 생존자 자녀들이 전하는 '간접흡연 효과'와 역사의 증언

By 다프네 칼로테이 (뉴욕타임스 칼럼)

뉴욕타임스
 
*다프네 칼로테이는 단편 모음집 "기록하는 이들(The Archivists.)"로 여러 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현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 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대부분인 오찬 행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쓴 단편 소설 " 상대성(Relativity)"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상대성"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돕는 한 사회복지사가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또 듣다가 자연히 살아있는 홀로코스트 이야기 보관소가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할머니와 큰이모, 큰아버지 등 우리 집 어른들은 오랫동안 틈만 나면 내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이야기들을 엮어서 글을 쓰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시절을 살았다고 모두가 생생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는 전쟁통에 태어나셨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고작 네 살이었다. 너무 어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나이라서 기억도 흐릿하다. 반대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고모는 최근에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자기 경험과 기억을 증언하고 오셨다.

작가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홀로코스트라는 소재, 주제와 애써 거리를 두려 했다. 예를 들어, 내 소설 " 러시아의 겨울(Russian Winter)" 속 '행복한 강제 노역자(Happy Forced Laborer)'는 조지 삼촌이 실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겪은 일화들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다. 행복한 강제 노역자는 조지 삼촌의 실제 별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우리 가족 안에서도 험한 시절을 몸소 겪고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분들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들의 기억, 목소리, 증언, 경험을 점점 더 내 작품 속에 분명히 녹여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너무 직접적으로 다루는 건 피하고 있는데, 그건 생존자들의 증언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특징이다. 즉 자기 경험을 어디서든 전부 다 풀어내지 않는 거다. 그래서 나도 어떤 주제나 일화를 다른 이야기들 속에 일부만 슬쩍 끼워 넣는 식으로 글을 쓴다.

물론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전후 세대라는 말은 곧 내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기억이 실은 남의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처럼 전쟁을 이야기하는 전후 세대들은 늘 나라는 존재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무언가를 막연히 느끼며 자랐다. 내 사촌, 그러니까 '행복한 강제 노역자'였던 조지 삼촌의 딸은 그 무언가를 가리켜 "간접흡연"이라고 부른다. 직접 피우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해로운 담배처럼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 역시 전해 듣는데도 끔찍하고 아프다.

게다가 내가 소설가라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며, 과거를 부정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문제가 커진다. 오찬 행사에서 만난 생존자 중 한 명은 내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귀띔했다. 사람들은 소설가가 택한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거라 믿는다는 거다.

2006년 엘리 위젤이 쓴 책 "밤(Night)"이 오프라 북클럽의 추천 도서로 선정됐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 책은 허구를 다룬 소설과 회고록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여느 회고록처럼 작가 자기 경험을 뼈대로 하되, 모든 기억이 그렇듯 조각이 맞지 않는 부분이나 오류를 다듬고 재구성한 글이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이 책을 두고 소설이라면 허구라서 진실하지 않다며, 또 회고록이라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가장 오래 지속되는 문헌은 사실 허구를 다룬 소설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임레 케르테츠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은 일, 그리고 홀로코스트 이후의 삶에 관해 썼는데, 전체주의 정권의 비인간성과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여기저기 허구를 가미했다. 나처럼 부모 세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경험을 전하는 걸 책무로 여기게 된 다음 세대 '간접 흡연자'들은 신시아 오지크가 한 다음 말에 대부분 공감할 거다. 오지크는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소설 " 목도리(The Shawl)"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역사적 사건과 장면을 철저히 고증할 수 있는 문서와 사료가 충분하면 좋겠죠. 사실을 비틀거나 새로 만들거나 상상으로 그려내기 좋아하는 작가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이 자주 그렇게 하게 돼요. 안 할 수가 없다고 할까요. 결국에는 매번 하게 됩니다."

게다가 문서만 있어서는 사람들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퓨리서치 센터와 미국 유대인 협회, 유대인 전쟁 피해 손해배상청구위원회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모든 연령대에서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명예훼손 방지위원회는 설문조사 결과 "반유대주의 사상과 주장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2023년 첫 두 달 동안 미국에 있는 유대교 회당을 향한 혐오 공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나 증가했다. 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에선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던 유대인 두 명이 근거리 총격을 받았다. 상징과 표식을 동원한 공격도 급증했다. 유대교 회당 간판 위에다가 나치의 깃발을 걸거나 노골적으로 유대인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는 일, 아예 '혐오의 날'을 정해놓고 폭력을 부추기는 일도 있었다. 선출직으로 뽑힌 유대인 정치인을 향한 살해 위협이나 폭력을 예고하는 경고장도 잦아졌다. 이런 일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혐오와 공격을 버텨내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수배 대상이 되고 도망자로 전락해야 했던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어르신들로부터 더는 직접 듣지 못하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막다 고모가 랑겐비엘라우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과 나치가 패전해 달아난 걸 깨달은 순간의 감정을 이야기해 주는 걸 넋 놓고 듣던 14살 부다페스트의 기억을 선명히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직접 들려줄 생존자를 아는 어린이가 많지 않다.

나와 같은 2세, 3세 혹은 생존자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전하는 책무를 이고 사는 이들은 역사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생존자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왔다. 영원히 떨쳐 낼 수 없는 트라우마를 기본적인 내러티브로 삼는 경건하고 역사적인 홀로코스트 소설도 물론 계속해서 나오지만, 짐 셰퍼드의 " 애런의 책(The Book of Aron)" 같은 작품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당시 유대인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윤리적 딜레마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바꾼 작가들도 있다. 니콜 크라우스는 " 사랑의 역사(The History of Love)"에서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냈고, 샬롬 어슬란더는 제목부터 다소 도발적인 "비극이라는 희망(Hope: A Tragedy)"에서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며 비틀어 희화화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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