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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소나무, 타버린 산에 또 심다니 [더스페셜리스트]

지금 보시는 이 나무, 지난주 강릉 산불 현장에서 쓰러진 나무인데요.

100년이 훌쩍 넘은 소나무인데 보시는 것처럼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쓰러져 있습니다.

이 소나무류는 겨울철 숲을 건조하게 하는 데다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송진까지 있어서 이렇게 산불이 날 때마다 피해를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매년 산불로 시름하고 있는 동해안에서는 잿더미가 된 산불 현장에 또다시 소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년 전 산불로 잿더미가 됐던 산골짜기.

벌겋게 토사가 드러난 산등성이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나무 심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심어진 건 하나같이 어린 소나무 묘목.

전체 14만 그루 중 70% 이상이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숲이라 산불 피해가 더 컸던 이 사유림에 정부 보조금을 들여서 또다시 소나무숲을 만든다는 겁니다.

산불로 쓰러진 나무

[박대웅/산불 지역 주민 : 단시간에 좀 많이 소득을 올릴 수가 있으니까 송이 때문에 소나무를 많이 원하는 거죠.]

하지만, 산림청 실험 결과 활엽수인 참나무는 불길이 일정하게 타들어 가는 반면, 소나무는 초기 진화가 된 후에도 재 속에 남은 불씨 때문에 재발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소나무 산불 피해가 심각했던 강원과 경북 두 지역에서 지난 5년간 나무 심기 내역을 확인한 결과, 모두 53종의 나무가 식재됐는데 이중 소나무가 전체의 17%, 낙엽송에 이어 2번째로 많았습니다.

중요한 건, 사유림이라도 나무 심는 비용을 거의 대부분 정부가 댄다는 겁니다.

현행 조림 보조금 제도상 사유림 조림 비용의 90%는 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하고, 산주가 내는 몫은 10%에 그칩니다.

정부는 연간 보조금 1300억 원을 쓰면서도 어떤 나무를 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겁니다.

[윤여창/자연과 공생 연구소장 : (현행 조림 보조금은) 빨리 베고 빨리 심고 하는 그런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해안 같은 경우는 소나무가 선정이 되는 경우가 많죠.]

1970년대 산림녹화가 시급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사유림 지원책인데, 조림, 벌목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겁니다.

해외의 경우 단순히 나무 심었다고 돈 주는 게 아니라, 조림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 실제 공익적 생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숲에만 보조금을 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소나무

방금 보신 것처럼 공익적 생태적 숲을 가꾸려면, 송이버섯이나 소나무 목재 등을 얻기 어려워질 테니 사유림 산주들이 반기지 않겠죠.

이럴 경우 소득 보전을 얼마나 해줘야 생태숲에 참여하겠냐고 산주들한테 물었더니, 지금 보시는 이 크기가 1ha인데요.

1ha 당 매년 18만 원을 보조해 줘야 참여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무 심은 뒤 벌채할 때까지 기간을 50년으로 치면, 총 900만 원 꼴이죠.

그런데 현재 정부가 소나무 심기 대가로 산주들한테 주는 보조금이 ha 당 905만 원씩입니다.

이쪽저쪽 액수는 비슷한데, 산불 키우는 소나무 심는데 보조금 줄 거냐, 아니면 산림의 공익적 기능도 키우고 산불에도 강한 숲을 만들 때 지원할 거냐는 원칙의 차이입니다.

산불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기후 위기 시대,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조림 보조금의 구조 개선이 시급합니다.

(기획 : 이호건, 구성 : 박정현, 영상취재 : 전경배·유동혁·조창현, 영상편집 : 하성원·이승희, CG : 임찬혁·김문성, 헬기조종 : 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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