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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당 가입에 후원금 강요"

2020년 총선 불법 정치후원금 의혹…이전 선거도 수사 가능성

텔레그램방 '쪼개기 후원금' 정황…"민중당 가입 강요"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1 (8리캡쳐)

"000팀, 10만 원, 10만 원, 3만 원, 3만 원… 총 83만 원 후원 입금 완료"
지난 2020년 3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한 지대 텔레그램방에서 오고 간 대화 캡쳐본들을 입수했습니다. 팀별로 조합원들이 총 얼마씩 냈는지 잇따라 인증을 하는데, 팀당 적게는 40만 원대 많게는 1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캡쳐본 10여 장에 나온 금액만 계산해보니 740만 원이었습니다.

다 어디로 가는 돈이었을까요. 모두 진보당의 전신인 민중당의 21대 총선 자금이 될 돈들이었습니다. 2020년 4월 총선 직전, 민중당은 당원들로부터 특별당비를 걷었습니다. 특별당비란 선거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당원들에게 걷는 당비입니다. 물론 당원들이 자율적으로 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특별당비를 낼까요? SBS와 만난 당시 후원금을 납부했던 전 조합원 A 씨는 "노조에 가입하려면 무조건 민중당을 가입해야했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일거리를 얻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는데, 개인의 정치성향이 어떻든 간에 민중당 가입서도 같이 적어내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SBS가 확보한 건설노조 2019년도 내부 회의록을 보면, 조합원들에게 정당 가입을 의무화한 것이 법 위반 소지가 있으니 "당 가입을 의무화한다 → 적극 권유한다"로 바꾸자는 취지의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한 간부급 조합원은 "당시 회의에서만 내용이 공유되고, 실질적으로 변한 건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신규 조합원을 받을 때 계속 당 가입을 시켰다는 말입니다.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2 (아리 캡쳐)

따라서 특이하게도 당시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대개 민중당원이었습니다. 그러니 특별당비를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죠. 단, 전제 조건은 '자발적', '개별적'이어야합니다. 정치자금법은 법인이나 단체의 명의로 정당에 후원금을 기부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노조의 자금으로, 노조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전달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조합원 개인이 원해서 내는 경우는 괜찮지만, 수금 과정에 강제성이 있다면 위법 소지가 있습니다.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3 (아리 캡쳐)

이때 건설노조 텔레그램방 공지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000팀처럼 개별 후원 당부 드립니다. 팀별로 모금 후 합계로 후원 송금 자제 부탁드립니다". 일괄적으로 팀별로 당비를 걷긴 했는데, 다시 또 개별적으로 후원하라고 지시가 내려온 겁니다. 법을 의식해서였을까요. 조합원 A 씨는 "당원 2명 정도가 대표로해서 후원계좌에 이체를 했다"며 "때론 아예 현찰로 직접 후보에게 갖다 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합원 B 씨도 "당에 가입 안하면 노조원으로 인정을 안하다보니까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야했다"고 말했습니다. 무늬만 바꾼다고 불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실제로 지도부의 지시와 강요에 의해 조합원들이 후원금을 납부한건 지, 혹은 다른 단체 등 제3의 경로를 통해 후원금이 전달됐는지 등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A 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20년 4월 총선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20년 총선 당시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지부 조합원은 2-3천 명, 경기지부는 1천500명 정도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B 씨는 "조합원 규모가 총선 때보다 작긴 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 때도 현찰로 조합원들에게 후원금을 걷었었다"며 "지대별로 다르지만 팀장이 팀원들한테 돈을 걷어 일괄적으로 계좌에 입금한 경우도 있었고, (법에) 걸리지 않게끔 후보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지난 3월 24일, 약 6500만 원을 민중당에 불법 후원한 혐의로 노조 간부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2020년 4월 총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선거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후원금이 전달됐는지, 또 특별당비 외에도 투쟁비, 지대비 등 노조 자금이 흘러갔는지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수사결과에 따라 불법후원금 액수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석기 석방 문화제 동원…"반발하면 바로 노조 퇴출"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4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5

또 다른 정치활동 강요 정황도 있습니다. 정당 가입은 사실상 정치 활동의 시작입니다. 조합원들 일부는 당 행사 등 활동에도 불려가는 일들이 잦았다고 말했습니다. 5년간 노조 활동을 하다 그만 둔 C 씨는 조합원들이 현장 일과는 상관없이 '이석기 석방 문화제'에 동원됐다고 증언했습니다. 문화제를 대비해 팀별로 모여서 합창, 구호 연습을 하고 실제 문화제에 참석했다는 겁니다. 정치 성향과 맞지 않다면 거부할 수 있지 않냐는 취재진 질문에 "반발하면 바로 퇴출 시켜 버리니까 사람들이 실업자 될까 봐 시키는대로 하곤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김보미 취재파일 생계권 쥔 건설노조_6

또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당 지지 활동을 이어가야 했단 증언도 나왔습니다. 2019년도 9월 건설노조 회의록 속에는 '민중당 지지자카드'라는 게 나와있습니다. 이름, 성별, 나이, 연락처, 주소, 직업 등 개인정보를 기재하는 카드 형식입니다. 당시 조합원들은 최소 지인 10명씩 데려와 이 지지자 카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A 씨는 "지도부가 조합원들이 작성해온 카드를 토대로 전화를 걸어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민중당 지지를 독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지자를 늘리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가욋일을 시켰단 겁니다. C 씨도 "이미 내 주변 사람은 다 써먹어서 어디에 부탁할 데가 없어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써가면서 부탁해 작성해갔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당 차원에서는 당원을 늘리고 표심을 얻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생계가 중요한 조합원들한테 강요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지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밥줄 쥐고 있는 건설 노조…"불법행위는 근절해야"


조합원들이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건설 노조가 조합원들의 '생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는 최근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 중인 건설노조 불법행위와도 이어집니다. 비조합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건설현장에 찾아가 조합원을 채용시킬 것을 강요하며 업무방해를 하는 행위들, 최근에 정부가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고 선포하며 언론 보도에 많이 나온 바 있습니다.

물론 노조의 활동 방향과 자신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조합원들도 없지 않을 겁니다. 조합원으로서 소속감을 느껴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또 노동자들이 정당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이런 정치활동이 불가피하단 시선도 존재합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대변 활동을 하는 정당 활동하고도 연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말한 가욋일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일이 옳다고만 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병훈 교수는 "조합원들의 이해를 소홀히 하고 외부의 정치 활동으로 치중하다 보면 조합원 입장에서는 좀 달갑지 않거나 노동조합 간부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치우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며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균형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뿌리 뽑겠다"
지난해 12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설현장에서 이뤄지는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이런 행위들은 수년 전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2016년에도 기업에 민주노총 노조원을 채용하도록 협박한 지도부 15명이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고 나서 관련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각에선 '표적수사'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SBS와 만난 전 조합원들은 "어떻게 됐든 간에 묵인된 관행들, 잘못된 문화만이라도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지킬 건 지키되, 고칠 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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