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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보는 사람들 이야기

[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색각 이상

마부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국에 때 이른 초여름 날씨가 찾아와 옷차림이 한껏 가벼워졌습니다. 그래도 아침과 저녁으로는 날씨가 아직 쌀쌀해서 일교차가 큰 만큼 몸 관리는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감기가 유행이잖아요. 마부뉴스 제작진이 이미 지난주에 유행하는 감기에 걸려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콧물도 많이 나고 몸살기도 오래가고요… 독자 여러분 감기 걸리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마부뉴스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힌트를 주자면 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입니다. '더 글로리'에서는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색약을 가지고 있는 전재준과 하예솔이죠. 오늘 마부뉴스 주제는 적록색약을 가지고 있는 전재준과 하예솔처럼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게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색각은 색을 분별하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색각에 '이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말 그대로 색을 분별하는 감각이 정상과는 다르다는 걸 의미하죠. 우리 몸의 시세포는 원추세포와 막대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막대세포는 명암을 인지하고 원추세포는 색을 인지합니다. 색각 이상은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의 기능이 이상해져서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보통은 적색, 녹색, 청색 이렇게 3개의 원추세포가 기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원추세포 중에 기능이 불완전한 원추세포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색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게 되는 건데 이런 경우를 색약이라고 표현합니다. 세 원추세포 중 1개가 아예 없는 경우엔 아예 해당 색깔을 인지할 수 없게 되는 색맹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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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신경에 있는 원추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을 그래프로 나타내봤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520nm의 파장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 경우 비색각 이상자라면 해당 빛을 초록색으로 인지할 겁니다. 그래프에서 녹 원추세포의 활성도는 90% 정도고 적 원추세포는 55% 정도거든요. 하지만 색각 이상자의 경우엔 원추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의 영역이 특정 원추세포 쪽으로 쏠려있어서 다르게 인식될 수 있어요. 가령 적색약의 경우엔 빨간색 선으로 표현된 적 원추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의 영역이 녹 원추세포(녹색 그래프)에 쏠려있고, 녹색약은 녹색 그래프가 빨간 그래프에 치우쳐 있죠.

적색약의 경우엔 520nm의 파장의 빛을 인지할 때 적 원추세포의 활성도가 75%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비색각 이상자랑 비교해 보면 20%P나 차이가 나죠.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초록색에 붉은 기가 더 섞여 있는 갈색이나 호박색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녹색약의 경우엔 녹 원추세포의 활성도가 비색각 이상자보다 낮아서 초록색이 덜 느껴지는 노란색이나 올리브색에 가까운 색을 보게 되죠. 색약이 발현되는 구조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색각 패턴이 나오는 탓에 적색약, 녹색약을 구분 없이 적녹색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색각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될까요?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색각 이상 유병률을 살펴본 2019년 논문이 있더라고요. 논문을 보면 한국인의 색각 이상 유병률은 3.9% 정도였습니다. 남성이 6.5%, 여성이 1.1%로 남성이 더 많습니다. 2023년 3월 현재 인구로 따져보면 142만 4천 명 정도의 남성과 24만 5천 명 정도의 여성이 색각 이상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색각 이상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찰


비색각 이상자들이 손쉽게 색으로 구분하는 수많은 것들이 색각 이상자들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무언가를 구분 짓는 게 뭐가 있는지 독자 여러분은 떠오르는 것 있나요? 일단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운전을 할 때 보는 신호등이 있을 테고요, 또 공사장이나 안전시설에서 위험 표시를 하는 경우와 안전함을 표시하는 경우에도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구분 지을 겁니다.

그렇다면 색각 이상자들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 짓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색을 구분 짓지 못하는 완전 색맹은 색각 이상자들 중에서도 0.01% 정도거든요. 완전 색맹 유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28,000명 중 1명꼴로 알려져 있어요. 대부분의 색각 이상자들은 색 구분의 차이가 다르게 느껴질 뿐입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살펴봤지만 원추세포가 인지하는 영역에 차이가 있어서 색이 다르게 보일 뿐 일상생활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거죠. 실제 운전면허도 신호등 색을 구분할 수 있으면 문제없이 취득할 수 있어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색각 이상자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경찰, 소방, 항공, 해운, 철도 등 분야에서 색각 이상자들에게 고용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죠. 특히 경찰의 경우엔 인권위에서 끊임없이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의 신체검사 기준표를 살펴보면 색약과 색맹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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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당 법이 제정되었을 때는 신체검사 기준에 "색맹이 아니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색맹의 경우에만 취업 제한을 두었어요. 그러다가 1999년 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색약도 취업 제한에 포함시켰죠. 그래도 다행인 건 2006년에 정도가 약한 색약의 경우에는 취업 통로를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도, 강도 색각 이상자에 대한 채용 기회는 전면 배제되고 있죠.

인권위에서는 경찰 업무별로 색각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채용 차별에 대한 개선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것을 지금까지 4번이나 권고했지만 경찰청은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죠. 경찰청에서는 대부분의 외국에서도 색각 이상자는 경찰 채용에서 제외하거나 약도 색각 이상자만 채용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영국의 사례를 살펴볼게요. 2016년 개정된 경찰법규를 살펴보면, 영국에서는 강도 색약의 경우에도 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색을 다르게 인지하는 만큼 대처 방법을 교육하고 있죠. 일본도 강도 색약은 취업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중도 색약의 경우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찰청의 이야기와 다르게 다른 나라에선 색각 이상이라고 취업을 원천적으로 막는 사회적 장애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가장 안 지켜지는 웹 접근성 원칙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등… 스마트, 디지털 기기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양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시각 정보가 많은 만큼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불편한 지점도 많을 거예요. 이런 부분을 없애 나가기 위해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 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이라는 게 있습니다.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고령자 가릴 것 없이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거죠.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에는 색상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웹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대비가 강한 색상을 사용해 색약이나 색맹도 충분히 웹 정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제도가 갖춰진 만큼 모니터링도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죠. 매년 전 세계 트래픽 상위 100만 개의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WCAG를 지키고 있는지 체크하고 어떤 부분이 가장 부족한지 보고서를 만들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상황에 맞게 이른바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KWCSG)'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죠. 예전 <시각장애인이 온라인에서 마스크 사는 법> 레터에서 이야기했었는데 독자 여러분 기억나시나요? 웹 접근성 지침의 큰 원칙은 크게 4가지입니다. ①웹 콘텐츠를 사용자가 인식할 수 있는지, ②웹 콘텐츠 운용이 용이한지, ③또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④오류 없이 견고한지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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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원칙을 잘 따르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 매년 조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각 원칙을 준수하기 위한 세부 24가지 항목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오고 있는데, 보고서를 살펴보면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아요. 2022년 우리나라 웹페이지의 웹 접근성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9점. 2019년엔 53.7점이었던 점수가 2020년에는 7점이나 올라서 60.7점이 되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나 했는데… 그 이후엔 매년 0.1점씩만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콘텐츠 명도 대비 점수가 제일 낮습니다. 지침에서는 사용자가 웹 콘텐츠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5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거든요. 저시력자와 색각 이상자를 위해 텍스트 콘텐츠와 배경 간의 명도 대비는 4.5대 1 이상이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준수율은 34.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항목들은 거의 100%에 가까운 준수율을 기록하고 있어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오죠.

색각 이상을 배려한 제도가 필요하다


웹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색각 이상자를 위한 제도와 법안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볼 수 있는 의안정보시스템에 2000년 이래로 '색맹', '색약'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오는 법안은 단 8개뿐입니다. 그마저도 가장 최근인 21대 국회에서 김민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뿐이더라고요.

주요 법안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적색 계통과 녹색 계통이 섞여 있는 지도나 도면을 색각 이상자들도 구별하기 편하도록 하자는 법안. 색각 이상자를 고려한 안내판이나 안전표지, 재난 보호시설 설치가 필요하다는 법안. 또 색각 이상자를 고려한 투표용지 색까지… 비색각 이상자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생활 속 색상 정보에서 색각 이상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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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처럼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사용할 경우에 색으로 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2022년 논문 중에 지방선거 투표용지를 가지고 색각 이상자들에게 실험을 진행한 자료가 있어서 가져와 봤어요. 현행 규정에 따라 7가지 색깔의 투표용지를 한꺼번에 교부했을 때 실험 대상이었던 10명의 색각 이상자들 모두가 계란색과 연미색을 구분하기 어려워했더라고요. 청회색과 연분홍색의 구분도 어려워 한만큼 여러 표가 한꺼번에 배부되는 선거에서는 색각 이상자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안전표지 같은 경우엔 서울시에서 따로 색각 이상자를 배려한 '서울 표준형 안전 디자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공사장 같은 산업현장은 여러 위험 요인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안전과 직결되는 긴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요. 하지만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제작되는 안전표지에는 일관된 기준이 없는 상황입니다.

서울시에선 비색각 이상자, 색각 이상자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안전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안전 색을 선정했습니다. 기존에 법적으로 규정된 안전 색이 있긴 하지만 색약자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색상이 포함되어 있는지라 정보전달에 혼선을 줄 우려가 있거든요. 실제 색약자들의 테스트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완성시킨 안전 색을 활용해서 조금 더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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