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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윤 '로이터 인터뷰' 일파만파…왜 굳이 순방 전에

[월드리포트] 윤 '로이터 인터뷰' 일파만파…왜 굳이 순방 전에
대통령 미국 순방 전 외신 인터뷰는 통상적인 관례입니다. 방미 전 한국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환기시키고 주목도를 높여 정상외교의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는 24일 국빈 방문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도 로이터 통신과 여러 현안에 대해 인터뷰했습니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건 전제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겁니다. 가정적 답변임에도 불구하고 '살상 무기 지원은 없다'는 기존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장이 작지 않습니다.
 

러시아 "무기 공급은 전쟁 개입"

러시아, 한국 우크라 무기 지원은 전쟁 개입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러시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우리나라가 서방과 함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자 '비우호적 국가'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렘린궁의 대변인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무기 공급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크렘린궁 측이 상당히 절제된 표현을 쓴 데 반해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반응은 보다 직접적이었습니다. 대사관 측은 "한국은 키이우 정권의 군사 후원 그룹에 참여하고 살상무기를 제공하는 결정이 낳을 즉각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행동이 지난 30년간 양국 이익을 위해 건설적으로 발전해온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를 분명히 망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이런 반응은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이 경우 양국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과 이 방향(군사협력 분야)에서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당신들은 기쁘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무기 지원 가능성…순방 전 공개 왜?

윤석열 대통령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 첫 시사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은 사실 국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적지 않은 사안입니다.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거나 혹은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무기 지원에 찬성하지만, 북한 문제 등 외교 무대에서 러시아의 협조가 절실하고 적지 않은 우리 기업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 파탄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상 무기를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입장도 있습니다. 첨예한 외교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충돌하는 '명분과 실리'의 문제인 셈입니다.

워낙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사안이라 제한된 정보만 갖고 윤 대통령의 발언의 적절성을 언급하는 건 무리입니다. 다만, '발언 내용'보다 '발언 시기'에 대해서는 왜 순방 전이어야 했는지 좀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순방 전 미국 측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북핵 억제 분야에서 나토식 핵공유를 넘어서는 확실한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협상 전략일 수 있단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굳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정상회담 의제는 양국 외교안보 라인을 통해 사전 논의가 철저히 이뤄집니다. 물론 양국 정상 간 마지막 담판이 필요한 사안은 예외이겠지만 그런 현안이라면 더더욱 미리 공개될 리 없습니다. 굳이 공개가 필요했다면 미국 주류 사회를 대상으로 한 여론전 정도 일 텐데 과연 그게 그렇게 절실했던 일이었을까 싶습니다.
 

기밀 문건 의혹 더 키울 수도

155mm 포탄 수십 만 발?폴란드 실제?수출

반면, 공개 발언으로 인한 부작용은 당장 몇 가지 짚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기밀 유출 문건 의혹에 자칫 기름을 더 부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SNS에 유포된 한국 관련 기밀 문건에 따르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 논의했습니다. 이 전 비서관이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변경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공식 천명하는 방안을 거론했고 이에 김 전 실장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렇게 할 경우 회담과 무기 지원을 거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하고, 폴란드가 이를 다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우회 지원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고 문건은 적고 있습니다.

정부는 문건이 공개되자 양국 국방장관 통화 후 내용이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은 없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윤 대통령이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의혹을 갖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이런 일을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말했을 리 없지 않나. 문건 내용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살상 무기 지원을 물밑에서 논의해온 건 사실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출된 기밀 문건 중에는 한국제 155mm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방안도 언급돼 있었는데, 취재결과 1,600억 원이 넘는 155mm 포탄 수십만 발이 폴란드에 수출되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폴란드는 한국 정부 승인 없이 한국산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앞서 미국 언론에서는 미국이 수입한 한국산 포탄은 우크라이나 지원용이란 보도가 나왔던 터여서 우리 정부의 추가 설명이 없는 한 의혹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전제 조건 있다지만…

윤석열, 바이든

다음으로 이런 발언이 자칫 국빈 방문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정도를 넘어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우려는 이미 앞서 언급한 기밀 문건에도 담겨 있습니다. '김 전 실장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렇게(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천명) 할 경우 회담과 무기 지원을 거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초청을 두고 한국이 어떻게 했길래 성사된 거냐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동맹 70주년이란 상징성도 있고 우리 대통령이 국빈으로 미국을 다녀간 지도 12년이나 됐으니 할만 한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정도로 되는 게 아니다', '미국의 국빈 초청에 여러 나라가 줄을 서 있다'는 게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궁금해 한 건 한마디로 '쿼드 프로 쿼' (quid pro qud ∙ 주고 받는 대가)가 뭐였느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은 "만약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으로 여러 전제가 달려 있습니다. '살상 무기 지원 불가'라는 기존 입장에서 지원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입장이 바뀐 건 분명하지만 기밀 문건에 언급된 '공개 천명'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윤 대통령이 말한 이른바 '전제조건'들은 이미 국제사회, 특히 서방에서는 사실상 공인된 거나 다름 없습니다. '대규모'라는 말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러시아군의 민간 시설 공습은 일상화된 지 오래고, 대량 학살은 부차와 돈바스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됐으며, 전쟁법 위반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전쟁 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사실상 우리 정부의 결정만 남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도청 의혹 문건에 담긴 내용, 아니 그 내용대로는 아니더라도 그런 흐름대로 가고 있는 듯 보이는 상황에 국민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방미 전 우리 입장을 먼저 공개한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대한 국익을 지켜낼 협상 전략도 그에 걸맞게 준비 돼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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